엄마의 변신은 무죄
자식은 성장하면서 순한 양으로 자라기도 하지만 벼락을 맞아 제정신이 아닐 때도 있다. 아이만 그러는 게 아니라 자녀를 키우는 엄마는 더 하다. 순한 양이었다가, 동네 싸움닭이 되었다가, 잡아먹을 듯한 여우가 되었다가, 무시무시한 악녀가 되었다가, 변화무쌍한 카멜리온이 되기를 반복하는 것이 자녀양육의 과정에서 겪는 최소한의 변화다. 하루에도 열두 번 이상 변하는 사건과 감정에서 서로가 한 뼘씩, 두 뼘씩 자라서 서로를 이해하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두꺼워지는지도 모른다. 딸의 학창시절 안에서 엄마의 변신 중 많은 변신 중 첫 변신과 중간, 그리고 마지막 변신은 언제였을까?
나의 첫 분노의 화신으로 변신한 건 울 딸 2학년 7월 초였다.
딸아이 초등학교 2학년 1학기 끝 무렵에 이사를 왔다. 토요일 오전 작은 방에서 아이가 인형놀이를 하고 있는데 언뜻 들으니 “얘! 전학 온 너희들은 저기 가있어.”, “엄마 혼자 있는 친구, 아빠 혼자 있는 친구들도 저~기 가 있고.” 나는 책을 보다 말고 아이가 작은 인형들과 노는 모습을 유심히 봤다. 가장 큰 인형은 선생님인 듯 하고, 아주 작은 인형 두 개와 딸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인형이 다른 인형보다 멀리 떨어져 따로 놀고 있다. 석사를 졸업한 뒤라 딸이 노는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셀프놀이치료를 하고 있는 셈이라 조심스레 가서 물어보았다. “인형 중에 가장 큰 인형이 담임선생님?” “응 선생님. 힘이 세고 무섭따!”. “힘이 쎄서?”, “응. 전에 다니던 선생님은 친구들과 친한데, 여기 선생님은 우리들을 싫어해.”, “우리들이 누군데?” 아까 본 작은 인형 두 개 중 하나는 같은 시기에 전학 온 남자 아이였고 다른 작은 인형은 그 학교에 다니던 아인데 말이 없는 아이란다. 그리고 울 딸아이.
아이랑 같이 인형놀이를 하면서 학교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어떤 차별대우를 받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학교에서 적응을 잘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나의 오산에도 화가 났지만 무엇보다 ‘아빠, 엄마 혼자 있는 친구’라는 표현에 화가 올라 미치는 줄 알았다. 주말을 보내고 또 며칠 고민하다가 담임선생님한테서 받을 차별에 마음에 상처를 입고 위축된 아이로 자랄 까 결심했다. 그 때 나는 대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전문상담사로 일할 때라 그리 바쁘지 않을 때였기도 했지만, 상대방 전화에 나의 근무지가 뜨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웃기게 들리겠지만 가진 것 하나 없는 내가 위협을 주고 싶은 유치찬란한 바람이었다. 그 선생님의 생각과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마음먹고 전화를 했다.
행정실에 전화를 했으나 ‘담임선생님 전화는 안 가르쳐준다, 교감선생님한테 말해라, 무슨 일이냐...’ 교감선생님과 통화가 되어 딸아이 인형놀이 때 했던 말들을 했고, 한부모가정이라 혼자 아이를 열심히 키우고 있는데 교실 아이들 앞에서 대 놓고 그렇게 이혼가정에 대한 차별대우를 해도 되는지, 전학 온 아이가 학교 적응을 잘하게 해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기죽이는 말과 행동이 교사로서 할 도리인지를 따졌다. 교감선생님은 그 담임선생님이 1년 뒤 정년퇴임이니까 학교에서도 그냥 쉬쉬한다는 말과 잘 전달하겠으니 노여움을 풀라고 하셨다. 참내. 참으라면 참아야지.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갑자기 다음날 가정통신문이 왔는데 파주 영어마을 캠프동의서였다. 반대표나 녹색어머니 회원들 중심으로만 신청을 받는 거라 비용이 만만치 않은 캠프에 무료로 보내준단다, 여름방학 행사 어디어디에 우선 참여할 수 있으니 체크하라는 등의 신청서가 일주일 동안 몇 개나 받았는지 모른다. 사실 그 전 받은 가정통신문에는 예방접종 관련 말고는 없었기에 어이없었다. 이렇게 우아하게(?)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엄마의 분노의 화신 첫 변신은 무죄다.
엄마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기엔 그 이상이 담긴 그림책이 있다. 다 잘할 것 같은 엄마가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 그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아이가 바라보는 엄마는 어떤 엄마일까? 15년 전에 출간되었지만 여전히 사랑받는 앤서니 브라운 ⌜우리 엄마⌟는 그림책태교 할 때와 학부모 강의할 때 인기 있는 책이다. 특히 자녀가 어릴수록 이 책에 더 관심이 많은데 자녀를 키우면서 버리고, 잃고, 잊고 살아야 했던 것들에 대한 생각과 복잡한 마음, 그러면서도 언제까지나 사랑하는 마음이 잘 표현된 엄마이야기.
또 다른 변신은, 딸아이 고등학교1학년 때다.
평범하게 키우면서 사랑하는 마음 가득으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수시로 마음 뚝딱 변화하고 째려보고,짜증내고,화내고,오락가락 하는 말과 마음의 변화는 무지무지 많았다.부족한 엄마지만 잘 자라게 도와주려는 마음으로 부족함을 채워나가는 노력형인 나는 가장 성공적인 변신이 있었다.나의 본업인 상담사로서 아이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읽고 기다려 준 그 때.
중학교 때 까지 공부 잘 하던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치르고서 큰 충격을 받았다. 기말고사 보기 전 날까지 하루 4시간도 채 자지 않고 고시생처럼 공부를 하였으나 일대일 밀착 과외와 부모님의 완전한 지원을 받는 친구들과 일찍부터 멀찍이 떨어져 버린 실력이 한 달로 잡히는 건 턱없는 무리였다. 기말고사 기간 마지막 시험을 치르기 전에 갑자기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또래관계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그간 모르던 일들이 있었는지 탐색에 들어갔으나 다행히 기우였다. 고 1학년 임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에 들어오니 중학교와 완전히 다른 입시에 대한 분위기, 불안과 압박감이 컸나 보다. 가장 힘든 게 무엇이냐고 물으니 ‘공부!’란다. 일주일 간 서로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했고, 서로의 절충선을 제시했다. <즐겁게 학교생활하기, 성적에 대해 일절 서로 말하지 않기, 자퇴하지 않기, 수능은 보기>
딸아이 학창시절 엄마의 마지막 변신은, 작년11월, 2020대학수능을 치를 때다.
고사장에 딸의 부모인 아빠와 나는 같이 갔다.부모가 자녀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었고,딸도 일반적인 경험을 하며 자라게 하고 싶었다.아이 아빠에게 문자를 했고 아주 흔쾌히 수능이 마칠 무렵 고사장 앞에서 만났다.수능을 마친 딸을 태우고 멀지 않고 한적한 곳에서 가족이 한 곳에 모여 즐겁고 멋들어지게 이른 저녁을 함께 먹었다.서로의 안부를 묻고,편하게 식사를 했다.그게 딸을 위하는 마음이니까.이 때 나의 변신은 한 쪽짜리 부모가 아니라 사랑해서 낳은 사랑스런 존재를 자랑스러워하는 양쪽 부모로서의 변신이었다.딸 아이 학창시절에서 마지막 엄마의 변신은 무죄이고 최상의 변신이다.
작년12월에 딸에게서 들은 한 마디.
엄마, 난 엄마 같은 사람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