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속이야기20화]

나 때문에 - 그럴리가!

by 그림책살롱 김은정

아이들은 부모님이 다투는 것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생각이 다르거나 상황이 어려워 의견을 조율하다 보면 다툴 수도 있다. 다투지 말고 살라는 게 아니라, 다투는 모습을 보였다면 화해하는 모습도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지 않으면 어린아이들은 이유도 모른 채 죄책감을 느낄 수 있다. 확실하게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받아들이는 화해의 모습을 보여줄 자신이 없다면 아이들 앞에서 부부가 다투는 일은 조심해야 하며, 말과 몸으로 싸워 아이들 마음에 생채기를 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릴 적에 부모님이 이혼한다, 못한다 하며 거친 말을 주고받으면 '내가 공부를 좀 더 잘 할걸', '내가 방 정리를 잘했으면 좋았을걸', '엄마가 바쁘니까 설거지를 미리 해두고 엄마를 기다릴걸', 하면서 부모님의 싸움이 마치 내 탓인 양 생각했다. 그러면서 같은 여자로서 엄마를 안쓰러워했다. 엄마를 힘들지 않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고, 7 살 때부터 설거지하는 법을,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곤로에 밥하는 법을 익혀가며 어색한 맏딸 노릇에 애쓰면서 자랐다.


어린이집에 다니던 일곱 살 딸이 "엄마, 나는 왜 아빠가 집에 없어?"라고 물은 적이 있다. 깜짝 놀랐지만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었을 뿐, 조금 성장한 딸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무렵에 내게 다시 물었다. “엄마, 나 때문에 아빠랑 이혼한 거야?” 난 단호히 “너 때문이 아니야.”라고 대답했다. “아빠랑 엄마랑 있으면 매일 싸웠고, 엄마 가슴과 몸이 아파서 이혼한 거야. 더 이상 아프지 않으려고. 너 때문이 아니란다.” 그 이후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몇 번은 비슷한 질문을 들었던 것 같다. 구체적인 내용은 그때그때 달랐지만 언제나 “너 때문이 아니야.”라고 확실히 말해주었다.


우리 어른들은 관계가 좋을 때는 좋은 감정과 말을 주고받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비난 섞인 말, 가슴을 후벼 파는 말로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다. 어린아이들은 부모님이 언성을 높이고 힘겨루기 하는 모습을 보면서 불안해한다. 또 다음날이면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어리석은 질문을 하곤 한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만약 이혼하면 너는 누구랑 살래?” 말도 안 되는 편 가르기다. 그렇잖아도 불안한 아이에게 이분법적 사고를 강요하면서 더욱 불안을 자극하는 행동이니, 조심해야 한다.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경우는 살면서 무수히 많다. 박현주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그림책 『나 때문에』를 보면, 아주 사소한 이유로 부부가 싸우는 동안 어쩔 줄 모르는 아이들은 고양이와 부모님 사이를 오가며 가슴을 졸인다. 고양이가 뛰어오르고, 화분이 깨지고, 결국엔 예쁜 고양이를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이어진다. 그러면서도 어른들은 "너 때문에"라는 말로 아이들을 기죽이고 눈치를 보게 만든다.


누구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화분이 깨진 것도, 아빠가 발을 다친 것도, 애초에 부모님이 다툰 것도 모두 '누구 때문에'라는 이유를 달고 있다. 그림책을 앞에서 보면 '고양이, 나 때문에'로, 뒤에서 보면 '우리들 때문에'로 보인다. 그때 그 상황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건데, 힘없는 어린 자녀는 모든 일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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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뒤표지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엄마 아빠, 이것 좀 보세요!
꽃이 활짝 피었어요. 나 때문에요.”

힘든 마음에 '너 때문'이라고 할 게 아니라, 긍정적인 마음을 담아 '나 때문'이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아름다운 일들은 '네 덕분에' 일어났다고 마음을 전해야 한다.


살다 보면 '무엇' 때문에 일이 터지고 커지기도 하지만 그 '무엇' 덕분에 한층 단단해져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힘든 일을 겪다 보면 내면에 그림자가, 콤플렉스가 생길 수 있다. 콤플렉스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억누르기보다는 딛고 일어서려 노력한다면 그 자체로 다른 길을 찾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 경험은 잊고 버리라고 있는 게 아니라, 채우고 엮어서 스스로를 이끌며 하나의 인생을 멋지게 완성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너 때문'이라는 말만큼이나 '나 때문'이라는 말도 조심해야 한다. 인생의 쓴맛이든 단맛이든, 영원히 경험하고 싶지 않은 맛이든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겪을 법한 일이든, 무엇이든 간에 ‘네 덕분에’와 ‘나 덕분에’라는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상황에 섣불리 부정적인 낙인을 찍지 않고 한발 물러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지금 겪는 일들이 더 좋은 일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 제시라고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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