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속이야기21화]

고구마구마 – 사이다

[그림책 속 이야기 21화]


갓 찌어져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를 손으로 호호 불면서 먹을 때 더 맛나다. 뜨거운 고구마를 이 손 저 손으로 굴리며 먹다가 입천장이 데일 것 같으면 슬쩍 뱉었다가 식혀서 먹기도 한다. 너무 맛있어서 정신 업이 먹다가 목구멍이 꽉 막혀 숨이 막힐 거 같을 때 물 한 모금이 정신을 돌아오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옛 어른은 삶은 달걀, 감자나 고구마를 내올 때 물김치를 같이 상위에 놓는 이유가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속담처럼 급하게 먹으면 체하니까 퍽퍽한 음식에 시원한 물, 섬유질 풍부한 김치를 곁에 두는 삶의 지혜를 작은 데서 나타난다. 이런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특히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2월 갑작스런 코로나의 등장으로 바이러스의 전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로 제한이 되면서 따뜻한 봄나들이도 못가며 집에만 있게 되었다. 새로운 출발점이 되는 3월, 4월이 일년중 가장 바쁘고, 가정의 달 5월은 굵직 굵직한 행사강의가 많아 상반기의 빼곡한 일정이 무기한 연기되거나 줄줄이 취소되었다. 처음엔 실감나지 않았고, 한두 달 지나고 나면 괜찮아질 줄 알고 심각하게 절감하지 못하고 좋아질 날을 기다렸다. 그러나 한 달, 두 달, 그리고 석 달이 지나고 바이러스 치료제 연구가 한창이고 백신은 나오지 않았다.


일주일을 작게, 더 작게 나누어서 부지런히, 내일이 없을 것처럼 최선을 다해서 살아온 내게 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한 휴식이라 즐거웠다. 그러나 무급휴가가 길어지면서 게을러지고 무기력해지면서 삶의 경계가 무너진 듯 하루의 연장선이 불안해졌다. 그러다 우연히 서점에 갔다가 평소 보는 심리나 감정에 관한 그림책이 아닌 그림책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에 고구마와 우유 한 잔을 먹고 와서 더 시선을 끌었는지 모르겠으나 저자 이름이 시원한 ‘사이다’ 작가의 ⌜고구마구마⌟그림책이 상큼한 노란색에 못생긴 고구마가 웃고 있는 표지가 신선하다.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하며 살든 현재의 삶에서는 다들 일상의 모습도 다르고 생김새, 하는 일, 하는 상황은 모두 다르다. 고구마 잎줄기를 잡아당기면 크고 작고, 길쭉하고 뚱뚱하고, 울퉁불퉁하고 가냘프고 모양이 다 다른 고구마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이것이 인생이라는 거 안다.


그러나 지금의 고민이 내 것이 가장 크고 일의 종착지가 보이지 않는 나의 답답함이 가장 어렵게 느껴진다. 나만의 고통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기 위해 연일 보도되는 코로나 뉴스를 시청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나아지는건 아니지만 고통을 절감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보거나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을 견디어 내는 과정이다. 이렇게 답답하고 세상이 어지럽고 난관을 극복한 틈도 보이지 않을 때 발견한 그림책이 나에게 사이다 같았다. 지인을 기다리다 우연히 발견한 그림책의 고구마구마가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조금 버티니 조금씩 줄어들고 일상생활이 조금은 나아졌다. 아니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도 익숙하고 이게 현실이니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마침 2주일 전부터는 공공기관의 입출, 도서관의 열람실 이용이 제한적이라지만 조금 완화되었다. 다행히 미뤄졌던 교육청과 도서관 강의 의뢰가 다시 들어와 하반기 일정이 차곡차곡 쌓여 기대되는 9월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광복절에 광화문에서, 교회에서 확진자가 급속하게 번져 전국이 시끄러워졌다. 뉴스 특보, 속보도 세 자리수가 넘어선 확진자와 부족한 음압병실 등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다시 낙담했다. 어제 하루만 집단상담과 강의가 5개 취소되었다. 예상은 했으나 오전 10시부터 하반기 강의 취소 전화가 왔다. 3시간 특강, 6시간 집단상담, 매주 8번을 만나 그림책으로 이야기를 나눌 도서관 프로그램들이 연이어 취소되고 또 미뤄졌다. 보통 12월 첫 주엔 올 강의가 마무리 되어야 하기 때문에 더 정 안 되면 내년으로 하자는 전화를 받았다.


어제는 늦은 저녁 혼자 꺼이 꺼이 울었다.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의 절망감을 넘어서 어떻게 올 해를 견디며 살아야 하는지, 아니 이렇게 살아온 것을 하루 아침에 바꿔야 할 것 같은 당위성은 알지만 어디서 어떻게 손을 봐야 할지 모르는 절망감이 나의 극한의 불안으로 몰고 갔다. 이렇게 살 수 없을 것 같은 공포감 마져 들다 보니 대안을 찾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괴로웠다. 그나마 비대면 온라인 수업 두 개만 살아있으니 다행이라고 나를 위로하는 자신을 보면서 또 슬퍼 울었다. 누구를 원망할 수 없는 팬데믹 상황이 이렇게 내게도 오는 지금의 현실이 무겁고 또 버겁다.


힘들 때 나는 그림책을 펼져 보며 위로를 받는다. 내가 경험한 자가치유적 그림책테라피가 더욱 좋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림책으로 심리상담도 하고 심리치유강의를 하면 더 편안해지는 느낌을 전하는 일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제의 그 감정에 함몰되기 싫어서 오늘 다시 그림책을 읽었는데 <고구마구마>의 한 줄 할 줄이 나를 위로한다. 특히 그림책 한 가운데에 양면에 펼쳐져 있는 그림과 글,

고구마구마2.png

‘모든 속이 빛나구마’


내겐 이 책이 목마름의 갈증과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삶의 여유를 주었다. 꺼져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부채질을 해서 숨구멍에 공기를 넣는 준비를 해야 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가장 힘들 때 사람에게 힘을 주는 것이 위트이고 유머니까, 웃으며 준비하고 나의 빛을 발산시켜야 겠다.

오늘은 의지를 담은 날! 사이다 같이 톡! 쏘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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