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속이야기22화]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 - 스트레스 날리는 방법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기를 바라는 때는 많다. 생각한 것처럼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타인에게서 전해들은 어떤 말이 내게 자극이 되어 신경이 쓰일 때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나를 고민에 빠지게 할 때도 있고, 개인적인 업무나 공적인 일로 엮인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풀릴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뭔가 체한 것 같아서 가슴이 답답할 때나 막힌 것 같아서 뚫고 싶을 때, 아니 그 정도까지 아니어도 심심하고 무료할 때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 자기에게 불편함을 줄 때 자신도 모르게 하는 습관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스트레스 푸는 방법은 저마다 다 다르다. 나 같은 경우는 빨래를 하며 풀어버린다.

보통은 땀에 찌들어 얼룩 진 옷가지, 구김이 많이 간 바지, 발가락 모양이 그대로 찍혀 더러워진 양말들이 모아져 빨래 바구니가 어느 정도 채워지면 세탁기를 돌리는데 스트레스가 있거나 답답함이 몰려오면 나는 빨래를 하면서 시원해지기를 바란다. 이렇게 빨래로 스트레스를 풀기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 부터였다. 중간고사가 일주일 남기면 밤을 세워 공부를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나는 이틀은 시험공부 계획세우고 시험 2~3일 전에는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빨래를 했다. 그것도 세탁기를 돌리면 될 것을 커다란 빨간 통에 빨래를 담고 발로 밟아 시꺼먼 땟 국물이 나오면 시원해지는 마음이 들어 좋았다. 더구나 엄마는 딸의 시험이 며칠 남지 않지 않은 것도 모르고 계시다가 바쁜 엄마를 도와주는 큰 딸을 칭찬하며 좋아하셨다. 그렇게 시험에 대한 압박을 빨래로 풀었다. 시험 성적은 나중 문제였다. 그 때는 그랬다.


사춘기 시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빨래를 하던 습관이 스무 살이 넘어서는 청소로 바뀌었다. 갑자기 주방 정리, 책상을 정리하면서 나도 모르게 심리적 갈등을 풀었다. 모양만 바뀌었지 스트레스 푸는 방법은 비슷했다. 그러다 결혼 이후 다시 빨래로 돌아왔다. 이젠 이불빨래로.

빨래를 하며 즐거워지는 시간을 일부러라도 만드는 나와 비슷 한 사람이 있다. 사토 와키코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 그림책에서 보면 예전에는 이 그림책에서 도깨비 등장하고, 엄마가 도깨비를 혼내주는 모습이 신기하고 유쾌하게만 봤다. 지금 다시 보니 엄마가 두 자녀를 키우면서 받는 육아 스트레스와 엄마의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빨래를 시원하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시선으로 다시 보게 된다. 내가 나의 무거운 마음을 덜고자, 스트레스를 날리고자 하는 것 처럼.

여전히 나의 스트레스 풀기는 빨래다. 옷가지에서 커다란 이불로 넘어간 것 말고는 여전히 빨래인데 부피가 큰 이불을 수시로 빨았다. 사실 난 빨래를 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스트레스가 풀리고 기분이 좋아진다. 빨래를 구분하며 세탁망의 크기를 골라 담아 세탁기에 넣고 세제를 넣는 순간부터 스트레스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물에 닿아 피어오르는 세제의 비눗방울이 마치 나의 묶은 감정 찌꺼기를 없애러 온 비눗방울병정 같이 든든하고 좋았다.

본격적으로 스트레스가 풀리는 시작하는 때는 더러워진 빨래가 하얗게 되어 나와서 건조대에 널어주기를 바라는 세탁물들을 볼 때다. 건조대 앞에 널 가지들, 빨래 크기별로 골라서 건조대에 널기 시작하면서 점점 개운해지는 마음이 햇볕에 말리고 뽀송한 빨래를 차곡차곡 개며 자기 자리에 넣을 때 비로소 완전 해소되어 그 전에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르고 잊고 만다.


엉뚱하게 둘릴지 모르지만 이불을 넌 그 아래 공간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무척이나 즐겼다. 너비 1미터가 채 되지 않는 건조대 아래에 돗자리를 펴고 앉으면 세상이 다 시원했다. 커피 한 잔과 읽을 시집 한 권 들고 양 쪽으로 축 쳐진 이불의 날개들이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또 확실한 나만의 공간에서 누구에게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무겁고 두꺼웠던 이불이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점차 가볍고 얇아지는 동안 나는 차를 마시고, 시집의 싯구절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낭만을 즐겼다. 이불이 마르는 동안 잠시 집안의 다른 볼일을 보고 다시 이불 밑으로 들어간다. 처음에 빨래를 널 때는 시원하고 향긋한 빨래 냄새가 나고 올려다 본 하늘은 아직 잘 보이지 않는다. 이불이 최고로 얇아지는 시간 쯤에 다시 이불 밑에서 들어가 위를 올려다보면 처음에 보이지 않던 햇살이 살짝 비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뽀송한 냄새, 너풀너풀 춤추는 빨래 사이로 햇살이 비치면서 내 마음도 맑아져 좋아진다. 그렇게 하루 바짝 말린 커다란 이불을 땅에 끌리지 않게 머리에 이고 들어오거나 어깨에 둘둘 말아 거실로 가직 들어올 때도 콧노래를 부르고, 이불을 개면서 장롱에 넣을 때는 콧노래가 흥얼거리는 노래로 바뀌어 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면 된 거다.

빨래하기 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나의 고민과 나의 힘듦은 세탁기의 세제와 거품이 되어 하수구로 빠져 없어진 거고, 햇볕을 쬐어 세균이 박멸되어 사라진 거다. 그리고 장롱에, 서랍에 널면서 원래의 모습과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다시 나의 일상은 평화와 소소한 하루로 리셋 된다.


인생은 그렇다.

지금 현재 그것이 나의 모든 것을 짊어질까 두렵고, 그것이 나의 미래까지 삼켜버릴까 두려워서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바로 과거의 나였고, 미래의 나일 것이다. 지금의 것을 억지로 지우려 애쓰기보다 지금의 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 이해하고, 나만의 방법으로 편안하게 즐기며 극복하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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