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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살롱 김은정 Mar 21. 2022

물건 훔치는 버릇이 왜 생겼을까?

그림책 육아상담 <노란 양동이>

아이에게 사랑과 관심의 표현 등이 적절하다면 동기부여가 됩니다. 그러나 지나친 보상은 아이를 망치게 합니다. 일관성 없는 보상과 훈육은 아이를 자기 중심적으로 하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아이를 바르게 바로 세우는 방법은 부모의 규칙이 아닌 아이와 조율된 규칙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오늘은 왜 아이가 훔치는 버릇이 생겼는지에 대해 <노란 양동이> 그림책 육아로 다룬 그림책심리상담했던 사례입니다. (15년 전의 사례이고, 주인공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상담사가 반드시 기관에서 상담해주기를 바라는 부모가 있는 반면에, 상담사가 내담자 집에 직접 방문하여 상담해주기를 바라는 부모도 있다. 후자의 경우 개인정보유출을 염려하거나, 가족이 상담받는 것 자체를 꺼리는 경우일 때도 있다. 또는 아이가 센터보다 자신의 집을 편하게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상담받는 사람이 편하게 여기는 장소를 우선으로 고려하여 상담을 진행하는 편이다.     


이번 상담사례는 성호 집으로 직접 가서 상담한 경우다. 성호가 학원을 많이 다니느라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고, 집에서 상담하면 성호가 마음 편히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4교시 수업반 있는 수요일에 그나마 성호가 여유가 있다고 해서 나는 수요일에 성호를 만나러 갔다.    

 

서오는 초등학교 3학년인데 연필 수집을 하는 취미를 가졌는데 단순 취미 정도가 아니라 수집광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대단하다. 성호 어머니는 성호의 이런 연필 수집을 걱정했다. 이대로 자라도 되는지, 이상한 어른으로 자라서 어른 구실, 남자구실 못할까 봐 걱정이었다. 성호는 엄마 걱정을 하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연필을 사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성호 어머니는 성호와 함께 대형 마트나 백화점에 가는 것을 꺼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성호는 “언제 마트 가?”를 묻기 일쑤였다. 만약 약속 시간에 가지 않으면 신경질을 내면서 물건을 던지기까지 했다. ‘마트=문구점’이라고 생각하는 성호는 마트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달려드는 성호를 보면서 엄마는 혀끝을 내둘렀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연필’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번쩍 뜬다는 아이. 처음에는 부모 마음에 연필을 좋아하는 성호가 대견하기도 했다. 연필 좋아하니까 공부도 잘 하겠거니 생각했고, 성호가 사달라고 조를 때마다 기분 좋게 사줬다. 어느 날은 한 자루, 어느 날은 한 다스를 사줬다. 성호는 어느 날엔 연필을 고를지도 않고 바로 사는가 하면, 어느 날엔 한 시간을 둘러보면서 진지하게 골랐다. 성호 어머니는 그런 아이가 밉지 않았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지나치다 싶을 만큼 많이 샀고, 이젠 부모로서 제지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 온 가족이 대형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성호가 화장실 간다고 사라지더니 한참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장을 다 볼 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아 안내방송을 했지만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1층에서 3층까지 샅샅이 뒤진 끝에 성호를 발견한 곳은 다름 아닌 문구 코너~ 멀리서 소리소리 지르며 달려들어도 성호는 듣지 못했다. 엄마는 그런 성호에게 화가 났다, 또 몇 시간 동안 이곳에서 넋 놓고 구경했을 모습을 상상하니 더욱 화가 치솟았다. 엄마는 성호를 보자마자 있는 힘껏 머리를 쥐어박고 사정없이 엉덩이를 때렸다. 영문도 모른 채 말똥말똥 바라만 보는 성호의 눈이 너무나 미웠다. 성호 아빠가 다가오자 성호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여보, 얘 좀 내 눈에서 사라지게 해 줘요. 내가 미쳤지. 미쳤어. 조것 낳고 미역국 먹고 돌잡이로 연필을 잡아서 좋아한 내가 미쳤지.”     

요즘에는 성호가 용돈을 달라고 하면 매몰차게 거절했다. 성호에게 작은 심부름을 시키지 않고 엄마가 직접 준비물을 챙긴다. 엄마는 가끔 이렇게까지 하는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가만 지켜보니 그나마 성호가 작년에 비해 연필에 대한 집착을 덜 보이는 것 같았고, 남의 물건도 덜 가지고 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마음이 놓여 다시 용돈을 주기 시작했는데 또 속상한 일이 생겼다.     


성호가 준비물 사야 한다며 5천 원을 받아 갔다. 아파트 앞 문구점에 들어갔는데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단지 내 문구점이라 돌아올 때가 지났는데 오지 않아 성호를 찾으러 갔다. 문구점 사장님이 성호가 와서 연필만 몽땅 사서 갔다고 했다. 처음에는 들어오면 혼낼 생각을 하고 기다렸는데 저녁 시간이 다 되도록 아이가 돌아오지 않아 걱정되었다. 남편에게 전화하고 성호 친구들에게도 전화를 돌려보았지만 헛수고였다. 무슨 일이 터진 건 아닌지, 실종신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걱정하고 있는데 성호가 겁에 잔뜩 질린 모습으로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들어왔다. 엄마는 일단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성호를 안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이어진 성호의 말은 엄마의 심정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성호의 말은 이랬다. 문구점에서 연필을 보자 마자 엄마와의 약속을 잊었다, 그리고는 연필 세트를 다 사버렸다, 이대로 가면 엄마가 혼내고 다른 걸로 바꿔오라고 할 것 같았다. 연필 세트 안에는 연필깎이가 함께 들어 있었다. 다른 아파트 놀이터에 가서 연필을 한 자로 한 자루 다 깎았다. 기분이 좋았다. 이제는 엄마가 바꿔오라고 할 수 없을 것이고, 이제 이 연필들은 내 것이 되었다. 다 깎은 후 그네를 타며 놀았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호랑이 얼굴을 하고는 냉장고 위에 숨겨둔 회초리를 꺼내 때릴 게 분명했다, 그런 생각이 드니까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어두워지자 저 멀리서 엄마가 나를 찾는 모습이 보였다, 덜컥 겁이 났다.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피아노 학원이나 영어학원에 가면 성호는 필통을 안 가져왔다며 매번 친구 연필을 빌려 썼다. 그러나 빌린 연필을 돌려주지 않은 적이 많았다. 처음엔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면서 아이들도 여러 차례 빌려주었으나 언젠가부터는 성호는 친구의 연필을 빌리는 척하면서 필통을 집에 가지고 와 버렸다. 필통이나 연필이 없어질 때마다 친구들이 성호를 지목했고, 학원 선생님은 성호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어 사건을 전달했다. 하지만 성호 어머니는 성호가 집에서만 그러는 줄 알았지, 학원에서도 그러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중에 학원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기피하는 친구가 성호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주변 친구들의 연필을 보면서 성호의 눈은 반짝였다. 연필에 관심을 보이는 성호를 친구들은 경계의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성호에게 못 보던 연필이 있어서 어디서 났느냐고 물어보면, 친구가 줬다고 하거나 선물 받았다고 할 뿐이었다.   

   

성호를 상담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다룬 부분은 성호가 가장 힘들어하는 ‘소유 개념’에 대한 것이었다. 자신의 물건에 이름 쓰기, 타인의 것 인정해주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있듯 타인도 좋아하는 것이 있음을 인정하기, 또한 자신이 소중하다고 느끼는 것에 대한 마음 나누기와 타인의 물건을 가지고 싶을 때 자제하기 등의 상담을 하며 그림책도 함께 읽어주는 그림책 독서치료 상담을 했다.


나는 여러 그림책을 성호에게 읽어주었는데, 그중에서도 성호가 가장 좋아했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노란 양동이> 모리야마 미야코(글), 쓰치다 요시하루(그림), 양선하(옮긴이). 현암사.

아기 여우가 외나무다리 끝에서 노란 양동이를 발견했다. 너무나 예뻐서 예전부터 가지고 싶었던 양동이였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하나씩 가지고 있는 양동이였다. 너구리는 까만색, 돼지는 초록색,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야동이지만 아기 여우는 아직 없었다. 아기 여우는 양동이와 까꿍 놀이도 하고 물고기 잡는 시늉도 하면서 한참을 재미나게 가지고 놀았다. 새 양동이에는 이름도 없었다. 양동이 주인을 기다렸는데 나타나지 않았다. 정말 가지고 싶은 물건이었지만 아기 여우는 함부로 집에 가지고 갈 수 없었다. 빨간 양동이를 가지고 있는 아기 토끼, 파란 양동이를 가지고 있는 아기곰 친구와 함께 양동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는 누가 주인일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보았다. 친구들은 노란 양동이를 들고 서 있는 아기 여우에게 일주일만 기다려보자고 했다. 오늘이 월요일이니까 다음 주 월요일까지 기다려도 노란 양동이가 그래도 그 자리에 있으면 그때 아기 여우가 가져도 좋겠다고 했다. 아기 여우는 매일 그 장소에 가서 노란 양동이가 잘 있는지 확인했고, 즐겁게 놀다가 집에 돌아왔다. 그렇게 일주일을 기다렸다. 어느덧 일요일이 되었다. 내일이면 아기 여우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보니 노란 양동이가 없었다. 주인이 가지고 간 것인지 바람에 날아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기 여우는 실망하지 않았다. 비록 일주일 동안이었지만 주인을 기다리면서 노란 양동이와 재미나게 놀았고, 가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설렘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기 여우는 스스로 만족하면서 “괜찮아.”라고 위로했다.      


이 그림책은 성호와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기 편했다. 나는 성호에게 그림책을 읽고 나서 무엇을 느꼈는지 물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죄책감 때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가슴이 아팠다. 주인공 아기 여우가 몇 살인지는 나타나지 않아 나이를 모르지만, 자신보다 어린 애 같은데 의젓해서 놀랐다고 했다, 아기 여우 친구들도 참 좋았다고 이야기했다. 자신에겐 그런 친구도 없고 자신은 아기 여우처럼 참을성도 없다고 하면서 울었다. 꺼이꺼이 우는 성호와 더 이야기를 나누는 건 무리일 것 같았다. 나는 성호가 좋아하는 치즈스틱 두 개를 주면서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어린아이 상담일 경우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다 보면 상담이 지연되거나 어려워질 수 있다. 넉넉하게 아이의 마음을 받아주고 기다려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아이가 평소 좋아하는 인형이나 과자 등을 비치애 주는 것도 좋다.) 잠시 후 마음이 풀렸는지 성호는 갑자기 내게 질문을 쏟았다. 난 일일이 대답을 할 수 없어 틈을 주고 기다렸다. 어쩌면 그 질문은 성호가 자신에게 하고 싶은 질무일 수도 있었다. 그 질문의 답은 성호가 스스로 찾아야 했다.


“아기 여우는 왜 기다렸어요? 그냥 가지면 되는데?”

“아기 여우는 하루만 기다려도 되는데 왜 일주일 동안이나 기다렸어요?”

“친구들이 다 양동이를 가지고 있는데 왜 아기 여우는 없었어요?”

“그렇게 가지고 싶으면 엄마한테 사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멍청이처럼 말도 못 하는, 바보!”
 “아니면 친구들한테 빌려달라고 하고서 주지 않아도 되는데.”     

“성호는 만약 아기 여우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저여? 전 아기 여우처럼 하지 않아요. 이름도 없고, 또 주인고 없는 것 같은데 그냥 가지면 되잖아요.”

“이름 없으면 주인이 없는 건가?”

“그건 아니지만, 일주일 기다렸잖아요. 그러니까 가져도 되는 거죠!”

“일주일 기다리는 동안 성호라면 어떤 마음일 것 같은데?”

“한 번 두리번거리고 조금 기다려도 주인이 없으면 근처에서 노는 거죠. 잃어버렸다면 주인이 올 거고, 그렇게 놀다가 찾으러 오는 사람 없으면 내가 …‥.”

“만약에 성호가 좋아하는 연필을 가지고 놀다가 이곳에서 잃어버렸어. 피아노 학원 갈 시간이 다 되어서 학원 마치고 찾으러 와야 한다면 어떨까?”

“학원 가기 전에 꼭 반드시 찾을 거예요. 기필코!”

“학원에 늦으면 혼나거나 벌을 받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찾을 거예요.”

“만약에 도저히 학원에 빠지면 안 되어서 수업을 다 듣고 가야 한다면?”

“그래야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이따가 가야죠…‥.”

“성호가 학원에 있는 내내 마음을 졸이면서 학원 마칠 시간을 기다렸어. 마치자마자 연필 잃어버린 곳에 왔는데, 그 연필이 그대로 있는 거야. 그럴 때 기분이 어떨까?”

“당연히 좋죠. 째지죠. 잃어버리지 않았네!!!”

“그렇구나. 시간이 없어서 바로 찾지 못했는데도 연필이 그대로 있다니 다행이다. 그치? 한참 뒤에 갔는데도 없어지지 않았다니 정말 운이 좋은가 봐!”

“운이 좋은 게 아니라 그건 당연한 거예요.”

“당연한 거구나.”

“당근이죠. 자기 것도 아닌데 가져가면 안 되죠!”

“그럼, 아까 성호가 그림책 읽고 나서 선생님한테 질문했던 것 중에서 다시 질문하고 싶은 게 있니?”

“…‥.”

“지금도 혹시 아기 여우가 멍청하다고 생각하니?”

“아니요. 그건 아니구요…‥.”

“그게 아니면 뭘까?”

“아기 여우가, 마음이 착하다고 생각해요. 나 같으면, 아니 저 같으면 벌써 가지고 와서 내 이름 썼을 거예요.”

“양동이에 이름을 쓰면 자기 것이 될까?”

“그래야 내 꺼 같잖아요. 훔친 티도 안 나고. 또 이 세상에 같은 거 많으니까 다 자기 거라고 말해도 상관없잖아요.”

“과연 모를까? 어떤 물건의 주인이 자기 것과 남의 것을 구분 못 할까?”

“알긴 알죠. 저도 아는데. 그래도 그렇게 해야 마음이 놓이니까.”

“혹시 성호야. 혹시, 여기 필통에 잇는 연필 중에서 부모님이 사주신 것 말고 성호가 몰래 가지고 온 연필도 있니?”

“네. 있어요…‥. 여기 말고 저기에도 있어요. 저기! 책상 밑에 있는 상자 있잖아요. 그 밑에 있어요. 근데 선생님, 처음엔 아기 여우가 멍청하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속상해요. 멍청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자꾸 싫어져요.”

“왜 성호가 싫어져?”

“왜냐하면…‥ 착한 아기 여우가 …‥ 나보다 어린데 …‥ 가지고 싶은데 잘 참잖아요. 근데 저는 잘 못 참아요. 연필만 보면 엄마도 생각나고 자꾸 갖고 싶어져요. 선생님, 저 병신이죠? 병신 새끼.”

그러면서 갑자기 성호는 자기 머리를 쥐어박으며 울기 시작했다.      


성호의 이런 행동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나는 무척 당황했다. 나는 이렇듯 조금은 어렵게 성호의 상담을 진행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성호 어머니로부터 반가운 소식 하나를 들었다. 성호가 스스로 기쁨을 찾았다는 소식이었다.     


성호가 친구들에게 자신이 가장 아끼는 연필을 하나씩 선물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것을 무척이나 아끼는 아이, 더구나 연필은 절대로 줄 수 없는 물건이었음에도 성호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연필을 나눠주며 행복해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대화를 주고받은 뒤 성호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상담할 때 감정을 쓰는 글쓰기 치료를 했는데, 아마도 그 글쓰기 치료의 효과가 아니었나 싶었다.     

 

성호와 진행했던 글쓰기 치료는 이런 것이었다. 먼저 나는 성호에게 손바닥 크기의 작은 노트를 선물했다. 성호에게 직접 고르라고 했더니 성호는 자동차 그림이 있는 노트를 골랐다. 내가 성호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 성호는 그 노트에 생각을 적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면, 첫 번째로 학원 바닥에 떨어진 연필을 보았을 때의 느낌을 한 줄로 써보게 했다.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연필과 비교해보면 어떤지, 갖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등. 두 번째는 주인을 찾아주도록 하고 그때의 느낌, 또는 친구가 한 말 등을 써보게 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물건을 며칠 동안 기다려보게 하고 그때의 마음을 표현해 보게 했다. 그림책 속에서 아기 여우가 한 것처럼 기다림에 동참시켰고, 기다림에 대한 느낌을 그리게 하거나 메모 형식으로라도 꼭 글로 남기게 했다.


처음에 성호는 짧게 표현했다. ‘갖고 싶다’, ‘누굴까? 주인이?’, ‘딱 일주일이다. 난 아기 여우!’ 이렇게 시작한 글들이 점차 달라졌다. ‘힘들었다. 주인을 기다리는 게. 아기 여우는 대단하다. 어떻게 기다렸을까?’, ‘지후는 나더러 멋지다고 했다. 기분 좋다. 킥킥.’ 등 다양한 표현을 썼다.      


서서히 성호가 마음을 잡아가고 있을 때, 성호가 왜 연필에 집착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성호가 초등학교 1학년 조금 지났을 때였나? 그 무렵에 받아쓰기 시험을 봤는데 다들 잘 받아오는 백 점을 성호는 못 받아오는 거예요. 속상하고 창피했어요. 어느 날 문구점에 찰흙을 사러 갔다가 연필을 보고는 이런 생각이 들었죠. ‘성호가 평소 연필에 관심이 많았으니까 연필을 사주면서 받아쓰기 백 점 맞으면 또 사준다고 하면 잘하겠지?’ 그래서 열 자루를 사 왔어요. 그랬더니 정말 다음 시험에서 백 점을 받았어요. 얼마나 기쁜지. 남들은 다 받는 까짓 꺼, 받아쓰기 백 점 하나 받았다고 하겠지만 난 무척 기뻤어요. 저녁 식사 시간에 남편한테 자랑할 때도 좋았고요. 그래서 아이에게 또 백 점 받아오면 다양한 모양으로 더 사주겠다고 하면서 문구점 구경을 시켜주기도 했어요. 그렇게 두세 번 했는데 엄마인 제가 신경을 안 써서 그런지 갑자기 30범을 맞아 오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연필 선물을 안 줬는데 아이는 자꾸 연필을 달라고 했어요. 보채도 저는 시험을 다 맞기 전까지 주지 않는다고 버텼어요. 성호가 다시 백 점을 받아 온 거예요. 그리고는 연필 열 자루를 사달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남들 다 받아오는 점수를 생색내며 연필 열 자루 사달라고 하는 성호가 우스워서…‥.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했는데, 그래서 안 주고 버럭 소리를 질렀죠. 다른 친구들 좀 보라고. 연필 없이도 공부 잘하고 있지 않느냐고. 그게 성호는 한이 된 건 아닌지, 아이면 엄마가 지키지 않은 약속에 화가 난 건지…‥.그때부터 연필만 보면 훔치고 숨기고, 또 훔치고 그랬어요.”   

성호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또한 자식 키우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어느 날 아이가 시험 성적을 잘 받아 깡충깡충 뛰어오면 나 또한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그럴 때면 아이에게 맛있는 간식을 해줬다. 어느 날엔 아이가 시험 성적을 잘 못 받아 어깨가 축 처져 오면 못 본 체하기도 했다. 아이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게 두렵기도 했거니와, 아이의 마음을 그대로 헤아리기 전에 부모 마음으로 성적을 운운하는 게 싫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참 우습다. 상담하는 사람인 나도 자식 성적 앞에서는 고개를 들었다 내렸다 하니 말이다.     


성호 이야기를 들은 나는 성호의 글쓰기 치료를 다른 각도의 글쓰기를 했다. 부모 마음을 헤아리고 알아차림에 대한 글쓰기가 아니라 성호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한 글쓰기 치료로 했다. 성호는 받아쓰기 시간이 무척 괴로웠으며, 엄마가 미웠고, 연필을 동강동강 부러뜨리고 싶었다고 묶은 감정 이야기를 쏟아냈다. 처음에는 대화로 풀어가다가 다음에는 메모로 풀어갔고, 마지막으로 일기를 쓰게 했다. 그림일기였다. 성호에게 긴 일기는 아직 버거웠기 때문이다.


엄마가 싫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난 정말 싫었다.

받아쓰기 공책만 보면 화내는 엄마.

연필 준다고 하면서 주지도 않는 거짓말쟁이 엄마다.

엄마가 싫어서 더 연필을 훔쳤다.

지금은 안 훔친다.


상담하는 동안 성호가 왜 그렇게 연필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또 연필이 가지고 싶을 때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이유도 알았다. 엄마가 성호를 칭찬해줄 때 준 것이 바로 연필이었다. 성호는 엄마의 칭찬이 좋았다. 받아쓰기 시험 성적이 좋을 때마다 칭찬을 받았다. 그 좋은 감정의 기억을 잃는 건 힘들었다. 엄마가 칭찬해줄 때마다 받은 연필들이 성호에겐 하나의 상장처럼 소중했다. 하지만 상장과 마찬가지였던 연필이 점점 줄어들자 상실감과 서운함이 느껴져서 싫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연필을 모았다. 모으는 방법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도 고치지 못 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성호는 물건 훔치는 것이 잘못임을 빨리 깨우쳤다. 중요한 것은, 물질적 보상이나 체벌로 깨우친 것이 아닌 마음의 헤아림이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성호는 성호 어머니가 발 빠르게 움직여 상담을 신청한데다 성호가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줘서 상담 효과가 바쁘게 좋게 나타났다. 오래 묵은 상담보다 발효가 되기 전의 고민이 빠르게 상담 효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 글은

제가 2010년에 쓴 <엄마랑 아이랑 책에서 해답찾기> 책이 2020년 계약만료로 절판되었습니다. 책 내용을 목차별로 원고 수정 및 재작성하여 쓴 글입니다.

2월부터 1주일에 책의 한 꼭지씩을 올리고 있어요. 아이를 육아하고 계시는 양육자 분들, 상담현장에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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