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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살롱 김은정 Mar 23. 2022

아이를 찾은 맞벌이 엄마

그림책 육아상담 <오른발 왼발>

아이와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와 멀어지기 쉽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엄마는 건강도 챙기고 일도 챙기면서 슈퍼우먼 처럼 살아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출산 후 회복되지 않은 건강과 맞벌이로 육아에 전념할 수 없었던 엄마가 다시 아이를 자신의 찾아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사례입니다.


오늘은 엄마의 상황으로 할머니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를 다시 엄마품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에 대해 <오른발 왼발> 그림책 육아로 다룬 그림책심리상담했던 사례입니다. (15년 전의 사례이고, 주인공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상민이를 만난 것은 J대학교에서 유아교육학과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였다. 수강생 중에 한 여학생의 조카가 걱정스럽다며 상담할 곳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가까운 지역의 상담센터를 소개해주었는데 여학생은 얼마 후 내게 의뢰를 해왔다. 내가 추천한 곳은 아이를 직접 센터로 데리고 가야 하는 곳이었다. 조카가 워낙 할머니를 좋아해서 한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할머니와 상민이를 비롯한 가족들은 상담자가 직접 집에 방문해서 상담해주기를 원했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 여학생으로부터 상민이에 대한 정보를 간단히 전해 들었다. 여학생의 설명에는 상민이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가득했다. 첫 조카이기도 하지만 이모로서 더 이상 지켜보기가 힘들다고 했다. 상민이의 엄마, 즉 여학생의 언니는 현재 상민이를 전적으로 돌봐줄 수가 없어서 이모인 자신이 돌봐주어야 하는데, 아직 학생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럽다. 그나마 할머니가 엄마 역할을 하고 있는데, 상민이는 엄마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고 오로지 할머니의 일거수일투족에만 안테나를 세운다. 안테나만 세우는 게 아니라 하루 종일 할머니 꽁무니만 쫓아다녀서 보는 사람이 답답할 정도다. 할머니는 오죽하겠냐고.    

 

상민이 엄마는 직장을 다니면서 결혼 5년 만에 어렵게 상민이를 임신하고 낳았다. 임신중독증 때문에 자연분만을 고집하다 결국 제왕절개를 했는데 출혈이 심했다. 어쩔 수 없이 건강 악화로 병원에 석 달 동안 입원해 있었다. 이때 어린 상민이가 할머니 집에서 먹고 자며 지내게 되었다. 상민이 엄마는 퇴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 복직했다.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복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쉬는 동안 부서가 서울이 아닌 지방으로 발령 났다. 아파트 융자도 갚아야 하고 결혼 전 빚도 같아야 했기에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남편의 도움으로 그나마 부부가 함께 지방에서 일할 수 있었지만 상민이를 돌볼 상황도 아니었고, 상민이를 맡아줄 기관이나 사람을 찾는 것도 낯선 지방에서는 힘들었다. 다시 할머니 손에 맡기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어떨결에 할머니는 상민이 보모 역할을 하면서 엄마 노릇도 톡톡히 해야 했다. 상민이는 엄마의 존재를 모른 채,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면서 지냈다.   

  

상민이의 똥오줌을 받아주고 기저귀를 갈아준 사람도 할머니, 젖병 물리고 이유식 먹인 사람도 할머니, 하루 종일 쫓아다니며 뒤치다꺼리 한 사람도 할머니였다. 상민이는 주말에 올라오는 부모님 얼굴을 볼 때마다 낯설어하며 울면서 할머니 품에 안겼다. 만 3년 동안 상민이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종일 함께 있었던 사람은 엄마가 아닌 할머니였던 것. 상민에게는 엄마의 존재가 곧 할머니 존재였고, 할머니 존재가 훨씬 컸다.


엄마가 주말에 올라와서 상민이와 놀아주려고 다가서면 상민이는 이내 할머니 옆으로 갔다. 잘 놀던 장난감을 집어던지며 울 때 조금이라도 훈육하려고 하면 상민이는 어느새 할머니 등에 바짝 엎드려 피했다. 이런 상민이를 바라보는 엄마는 속이 탔다. 주 5일 동안 한시도 잊지 않고 그리워하고 자주 전화했건만 친부모, 심지어 엄마한테조차 곁을 주지 않는 상민이가 미웠다. 상민이에게 너무 잘해준 외할머니도 원망스러웠다. 한번은 이런 경우도 있었다. 상민이가 골목에서 뛰어 놀다가 넘어져서 무릎에 피가 나 울고 있기에 약 바르러 집에 가자고 했는데, “할머니한테 발라달라고 할거야!”하면서 엄마를 지나 집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사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상민이를 데리고 함께 자려고 하면 할머니 젖을 만져야 잠이 온다며 엄마와 같이 자는 것을 싫어했다. 이러한 상민이를 볼 때마다 엄마는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서울로 올라올 수 있게 되었다. 지방에서의 회사 일이 마무리되면 사직서를 낸 뒤 상민이를 전념해서 키울 작정이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야무지게 일 잘하는 상민이 엄마를 놓치고 싶지 않다며 좋은 조건을 내걸었다. 상민이가 마음에 걸렸지만 고민 끝에 서울로 올라와서도 회사를 다녔다. 아무래도 아직 상민이가 어려서 친정 도움이 절실했다.     


걱정이 생겼다. 누가 보면 단순한 걱정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상민이와 엄마, 그리고 할머니와의 삼각관계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이 그냥 웃고 넘길 단순한 문제만은 아니었다. 결국은 이 문제 때문에 내게 상담을 의뢰했다. 엄마가 상민이와 같이 자려고 할 때마다 상민이가 했던 말은


 “난 할머니랑 잘래!”, “엄마 싫어!”, “엄마 저리가!”


상민이 엄마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뼈가 사무칠 정도로 가슴이 시려왔다. 아무리 떨어져 지냈다 하더라도 어떻게 엄마에게 싫다고 하는지, 저리 가라고 하는지, 엄마가 같이 코~ 자자고 하면 반기면서 안기는 게 아닌 거부라니, 난감했다. 엄마 역할도 잘 못하면서 엄마라고 부르라는 것도 싫었고, 직장 때문에 자식을 잃는 것 같아서 속상했다. ‘자식 잘 키워보려고 일한 거지, 자신이 엄마를 멀리하라고 열심히 일한 게 아닌데.’라는 후회로 우울증까지 왔다. 아이와 가정 모두가 행복해지도록, 더불어 상민이가 엄마와 함께 자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해달라는 호소의 상담이었다.   

  

상민이를 처음 만난 날, 상민이는 할머니 가슴을 만지며 놀고 있었다. 할머니가 그 돈에 도박이어서 집에는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상민이는 집에 누가 오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할머니 옆에 꼭 붙어 있기만 했다. 마치 원숭이 새끼처럼, 내가 가서 먼저 인사를 해도 이모 친구이거니, 할머니 아는 사람이려니 하며 아무 반응이 없었다.     


상민이 엄마는 상민이가 부모와 함께 자도록 도와달라고 했지만 그 전에 해야 할 밑 작업이 있다. 그중에서도 상민이가 할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을 엄마가 이해하는 것, 그리고 진정으로 할머니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민이가 알게 한 뒤 스스로 방법을 찾게 하는 것이다. 그후 서서히 부모의 존재감을 키우고 부모에 대한 애착을 강하게 하는 것으로 마무리라는 것으로 상담 구조화를 세웠다. 그러고 나면 자연스럽게 엄마와 상민이와의 모자간 부드러운 상봉이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상민이와 대화를 시도했다.

“상민아, 할머니 젖꼭지 만지니까 기분이 좋아?”

“응. 좋아.”

“상민이는 할머니 좋아해?”

“응. 다 좋아해.”

(중간 생략)

“그런데 상민아! 상민이가 할머니 젖 만질 때 할머니 배꼽이 보이네? 지금 겨울인데 배꼽이 춥겠다.”

“난 배꼽 안 보여. 할머니 배꼽 보요. 할머니 추워?”

할머니는 내 의도를 아셨는지 금방 추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할머니 안 추워야 돼.”

그러면서 상민이는 할머니 조끼를 여며주면서 할머니 옷 위로 손을 얹었다. 그런 상민이 모습을 보고 할머니와 이모는 깜짝 놀랐다. 밥 먹을 때나 친구들과 놀 때도 거의 종일 할머니 옷 속에 손을 넣고 가슴을 만졌던 상민이가 처음으로 손을 뗀 것이다. 물론 아주 잠시였지만, 처음이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알 것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어떻게든 떼려고 윽박지르거나 혼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해내는 동기를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소중히 다루는 방법은 잘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알고,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민이에게 할머니는 누구보다 소중하기 때문에 잠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가 아프거나 다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난 이러한 점을 상담에 이용했다. 할머니에 대한 상민이의 사랑을 먼저 확인한 뒤, 할머니가 어던 점이 힘든지 상민이가 스스로 깨닫게끔 했다. 나는 “할머니 가슴 아프겠다.”, “할머니 빨리 늙는다.” 등으로 상민이 행동이 지나치면 결국 본인이 아쉬울 것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하며 회유의 밑 작업하는 대화를 늘려갔다.    

 

이렇게 말로 하는 방법 외에 또래와의 놀이 시간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면서 점차 사회성을 키우는 작업이다. 다른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통해 자기의 행동과 타인의 행동이 다름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또래와 논다고 해서 금방 타인 조망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민이 경우 젖을 만지고 노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친구들이 상민이를 놀리면 자존심이 상해서 멈출 수도 있지만 따라서는 부정적 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히, 신중히 기다리는 시간과 애씀이 필요하다.


또래 이들과의 놀이 시간을 늘린 뒤 상민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다.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도 처음엔 두 시간, 이후에는 점심 먹고 귀가 하는 식으로 떨어지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조금씩 늘렸다. 할머니 젖을 만지지 못하는 것도 스트레스일 텐데 갑자기 종일 떨어져 지내면 더 불안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점점 시간을 늘려 어린이집에서 낮잠도 잤다. 할머니 젖을 만지지 않고도 친구들과 어린이집에서 함께 잠을 잘 수 있게 됐다. 

     

차츰 시간을 늘려가던 상민이는 이제 엄마가 퇴근 후 데리러 가도 될 정도로 적응이 되었다. 이때 나는 할머니가 아닌 엄마가 직접 데리러 가게끔 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다가 보고 싶었던 엄마를 만나는 순간의 소중함을 맛보기 위함이었다. 이때 집에 오는 길에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잠시 놀아주고 오는 센스도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친자식 이상으로 애정과 정성을 다해 키운 손자가 갑자기 엄마를 따를 때 할머니가 느낄 공허감과 아쉬움을 알아주어야 한다. 할머니 입장에서는 소중한 손주를 잃거나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들 수 있다. 그동안 좋았던 부모 자식 간의 사이를 해칠 수 있으므로 잘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긴 시간 동안 아이를 돌봐주셔서 아이가 엄마에게 다가오는 것을 힘들어한다는 것을 표현하면서 할머니의 공을 인정해 보자. 이제는 자신이 아이를 돌봐줄 상황이 되었음을 설명 드리고, 자주 왕래랄 수 있는 거리인 만큼 아이가 자연스럽게 두 집을 드나들도록 도와달라고 해 보는 것이다. 아직은 엄마가 전적으로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상황이므로 할머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과 부모와 정 붙이는 것도 꼭 필요하다는 것을 지혜롭게 표현해야 한다.     


어느 정도 상민이와 엄마가 친해진 것 같아서 나는 함께 자는 것을 시도해 보았다. 그런데 상민이는 할머니 집이 아닌 부모님 집에서 자시는 것을 할머니와 헤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난 할머니랑 살거야. 할머니 젖, 할머니 젖.”

“할머니 없으면 잠 안 와!”     

어린아이일수록 상담자만이 아닌 가족 모두의 몫이 크다. 당사자도 노력해야 하지만 그와 연관된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상담에서 할머니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상민이를 비롯하여 할머니, 상민이 부모님, 이모까지 모두 한마음이 되어 상민이가 다치지 않는 선에서 마음의 분리 과정을 거쳐야 했다. 깊은 그리움을 미움잉 나닌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이 무엇보다 어려웠다.    

 

상민이와 할머니와의 분리작업이 어느 정도는 이루어졌으나 밤에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지금까지 해 왔던 할머니 역할을 단번에 엄마나 아빠로 대체하는 것은 부작용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한 번 실패했다고 바로 원상복귀 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초래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럴 때는 단계적 둔감화 방법을 사용하면 효과적이다.     


예를 들면, 할머니가 상민이 집에 찾아가 상민이와 함께 재워주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다시 상민이 집에 찾아가 상민이가 잠에서 깼을 때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옆에서 지켜봐 준다. 그렇게 일주일가량 진해하고, 그 후부터는 사흘에 한 번꼴로 엄마가 재워준다. 아이에게는 할머니가 졸려서 주무시러 가셨다고, 할머니가 체력이 떨어져 피곤해서 엄마가 대신 재워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방법으로 상민이가 잠잘 때 할머니를 찾는 빈도를 낮추는 것이다. 할머니가 안 계셔서 상민이가 슬퍼할 때 부모님이 따스하고 기분 좋게 다가와 위로해 주어야 한다.     


또 다른 각도에서 방법을 찾는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상민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한다. 이 또래의 아이들은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 독립과 자립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다. 흘리는 게 절반이어도 혼자 밥 먹겠다고 우기는 시기며, 신발 오른쪽 왼쪽이 바뀌는 것도 모르고 혼자 신발을 신겠다고 우기는 시기다. 이런 점을 이용하여, 할머니도 잔깐씩 쉬어야 한다는 것을 상민이가 인식할 수 있도록 주변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도와주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책을 한 권씩 읽어주며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아이에게 좋아하는 책을 직접 고르도록 해서 읽어주고, 때론 엄마가 골라서 읽어주면서 아이가 책을 가깝게 느끼도록 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상민이 같은 경우 활동적인 놀이에 익숙해진 터라 자칫 책을 싫어하거나 흥미없어 하는 아이가 될 수 있다. 책 읽기가 습관이 되려면 유아 때부터 재미있는 책 놀이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책을 읽어주며 아이의 관심을 끌면 이후에 엄마와 즐거운 시간을 만드는 것도 수월해진다. 상민이가 유독 좋아하던 책을 소개해 본다. 할아버지와 손자 간의 사랑을 담은 그림책이다.


⌜오른발, 왼발⌟토미 드 파올라 글, 그림, 정해왕 옮김, 비룡소

보브 할아버지는 보비라는 손자가 있다. 보비가 가장 먼저 한 말은 ‘엄마’라는 말이 아니라 할어버지 이름인 ‘보브’였다. 그만큼 보브 할아버지와 손자 보비는 서로 각별했다. 보비에게 말을 가르쳐 준 사람도 보브 할아버지였고, 걸음마를 가르쳐 준 사람도 보브 할아버지였다. ‘오른발, 왼발’하면서. 둘은 주로 오래된 나무 블록 쌓기 놀이를 즐겼다. 서른 개의 블록에는 숫자와 동물 그림이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코끼리 블록만 보면 일부러 재채기를 하며 즐겁게 보비와 놀아주었다. 보비는 할아버지와 가장 오랜 시간 함께 놀았고, 다양한 놀이를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갑자기 아파서 팔다리도 꼼짝 못하고 말도 못하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병원에 있는 동안 보비는 밥맛도 잃어버렸고 밤에 잠도 오지 않았다. 몇 달 뒤 할아버지는 퇴원했지만 여전히 아팠고, 그렇게 친했던 보비도 알아보지 못했다. 심심해서 할아버지랑 놀고 싶었지만 점점 이상한 소리를 내는 할아버지가 무섭기까지 했다. 할아버지가 무섭다며 할아버지 앞에서 보비가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본 보비가 할아버지에게 말을 건넸다. 가족들은 할아버지가 의사 표현도 못하고 사람들도 못 알아본다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보비가 말할 때 눈을 깜빡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할아버지 병이 낫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할아버지와 미소를 주고받는 보비는 할아버지가 나아질 것을 확신했다. “할아버지, 이제 코끼리 블록만 남았어요.”라고 하면 할아버지는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옛날 할아버지의 재채기 모습을 보였다. 서로 다시 의사 표현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보비는 할아버지에게 이름을 가르쳐주었고, 숟가락으로 밥을 떠 먹여주었다. 점점 할아버지는 손가락과 발가락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보비는 할아버지에게 걸음마를 가르쳐주었다. 보미가 아주 어릴 적에 할아버지에게 처음 걸음마를 배운 것처럼. ‘오른발, 왼발.’     


이 책을 읽어주자 상민이의 표정은 다양하게 바뀌었다. 웃다가 찡그렸다가 갸우뚱했다가 하면서 자꾸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나 할머니 좋아. 할머니 아프면 나도 아파.”

“보비? 보브? 할아버지? 난 할머니…‥.”

어린 상민이의 표정은 진지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할머니자 이 책의 보브 할아버지처럼 아픈 것도 싫거니와, 할머니랑 떨어져 지낸다는 것을 미리 아는 슬픔처럼.     


아이들을 대할 때, 특히 어릴수록 아이에게 다가갈 때 친숙하고 편안하게 다가가야 한다. 친구처럼 대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아주 사소한 것에서 단서를 잡을 수 있고, 그 단서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때가 많다. 마냥 끼고 있을 수도, 기다릴 수도 없는 것이 아동 상담! 그러나 진지하고 재미나게, 즐겁게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여주고 지켜본다면 사실 변화는 확실하게 눈에 확연하게 나는 효과는 볼 수 있다.     


상민에게 첫 엄마는 낳은 엄마가 아니라 길러준 엄마라는 사실을 염두해 주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무섭다는 말처럼, 어느 날 갑자기 하루종일 자신을 돌보겠다고 나타난 엄마를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을까? 아무리 어린아이여도 하나부터, 처음부터 가르쳐주고 자신을 예뻐해준 사람이 할머니임을 몸소 알았을 상민이. “난 네 엄마니까 내 말 들어!” 식으로 윽박지른다면 역반응이 오는 건 당연하다. 하나씩, 하루씩, 한걸음 씩, 천천히 다가가고 알아가자.     



이 글은

제가 2010년에 쓴 <엄마랑 아이랑 책에서 해답찾기> 책이 2020년 계약만료로 절판되었습니다. 책 내용을 목차별로 원고 수정 및 재작성하여 쓴 글입니다.

2월부터 1주일에 책의 한 꼭지씩을 올리고 있어요. 아이를 육아하고 계시는 양육자 분들, 상담현장에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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