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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살롱 김은정 Feb 17. 2020

[그림책태교9] 가만히 들어 주었어

곁에서 체온으로 가만히 들어주세요

[그림책태교9] 가만히 들어 주었어    

상대방의 말이 잘 들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내 말을 잘 듣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내가 상대방의 말을 잘 듣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내말이 상대방에게 잘 들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위 말들이 어떻게 들리시나요? 다른 말처럼 들리지만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체가 누구냐가 중요하게 아니라 상대가 누가되더라도 자신이 하는 말을 어떻게 들어주느냐에 중점을 두고 있거든요.    

 

결혼한 배우자 사이에서도 나의 말을 잘 들어주길 바라며 대화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바쁘다는 이유와 야근으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가끔은, 때때로, 종종 우리는 상대방의 말에 귀담아 듣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듣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듣고 싶은데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든 들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귀담아 들어주지만 상대방이 바라는 위로나 격려가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말로 위로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주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제가 결혼 후 남편이 좋아하는 갈비찜 요리를 처음 했는데 쫄여지고 질겨져서 맛이 없어져 속상했습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이라 야심차게 요리책을 보면서 양념 하나하나에도 신중을 기울여 맛나게 준비를 했습니다. 남편이 오기 전에 짜잔~ 내 놓으려 무척 신경쓰면서 요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요리를 해보니 보기좋게 나온 요리책 사진과 거리가 멀었고 질기고 딱딱해서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그런 요리가 되었습니다. 요리 못하는 내가 너무 밉고 속상해서 친구들에게 위로 받고 싶어 전화를 했지요. A친구는 “한 번도 해 보지 않을 걸 왜 했느냐, 익숙한 걸 하지 않은 네가 잘못했네.‘ B친구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걸 애 사서 고생하니‘, ’진짜 속상하겠다. 그런데 너 요리 처음 한 건데 그럴 수 있다 생각하고 빨리 잊어버려. 별것도 아니네‘, ’그럴 줄 알았어. 네가 갈비찜 한다고 할 때부터 알아 봤다고. 망할 요리가 될 거라고‘. 위로 받고자 전화한 친구들 반응에 오히려 더 속상해지고 위축되어서 기대하고 퇴근 할 남편을 생각하니 더 자존감이 떨어져 풀이 죽어있었어요. 그럴 때 한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했어요. 내가 하는 말을 중간에 자르거나 내가 훌쩍일 때 다그치거나 어설픈 위로하려 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들어주었어요.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하지 않고 말이지요. 가만히 들어준 친구에게 ”나 이제 어떻게 하지?“ 라고 물었을 때 그 친구가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라고 물어주었습니다. 솔직히 남편에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고 했더니 저더러 네가 하고 싶은 말을 고스란히 해 보라고 해주었어요. 그런데 그 말이 다른 그 어떤 말  보다도 용기와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남들이 보기엔 별거 아닌 일이고, 다들 잘 하는 것이라 아무것도 아닌 요리가 될지 모르지만 사랑하는 남편을 위한 나의 마음이 요리로 표현하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무척이나 속상하지만 나를 평가하거나 상황을 비난하지 않고 나의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읽어준 친구가 고마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거나 조금은 달라도 비슷한 실수의 경험 스토리 하나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럴 때 온전히 체중을 실어 내 마음을 알아준 사람이 있었는지 떠 올려보세요.     

오늘 당신께 소개해드릴 그림책은 코리 도어펠드 글, 그림 <가만히 들어 주었어>입니다.

블록을 쌓고 놀던 테일러가 난데없이 날아온 새들로 블록이 무너졌는데 테일러는 ‘모든 게 무너지고 말았다’며 생각하며 울고 있습니다. 닭이 나타나 호들갑 스럽게 맞장구를 치며 이유를 캐묻고 시끄럽게 합니다. 말하고 싶어 하지 않자 그냥 가버리는 닭 뒤에는 곰이 왔습니다. 화나겠다며 오히려 더 크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코끼리는 고쳐주겠다고 귀찮게 생각을 묻습니다. 하이에나, 타조, 캥거루, 뱀까지 나타나 테일러의 마음을 자기식으로 위로했습니다.

테일러가 꼼짝도 않고 동물들에게 반응을 보이지 않자 동물들은 가버립니다. 테일러는 여전히 혼자 힘들어 합니다. 그럴 때 토끼 한 마리가 조용히 다가옵니다. 그러고는 테일러 곁에 따뜻한 체온으로 머물며 말없이 앉아 있어주었습니다. 오래도록 곁에 떠나지 않으며 테일러를 말없이 응원해주었습니다. 토끼 식으로 하지 않고 테일러가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해 내서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있어주었습니다. 테일러 혼자 멋지게 더 멋지게 해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해 볼래”라고 자기를 믿습니다.    


“나랑 같이 있어줄래”
토끼는 테일러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었어.
토끼는 테일러가 소리 지르는 것도 가만히 들어주었어.
...
그러는 내내, 토끼는 테일러 곁을 떠나지 않았어.
“다시 해 볼래, 지금 당장!” 테일러가 말했어.  

  

자기 기준으로 상대방의 말을 자르거나 판단하려 실수를 할 때가 많습니다. 타인이 나를 판단하거나 이해를 구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그 상황에서,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충고나 평가, 비판하는 말이 아닌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주는 들어주기를 원할 때가 진정한 소통입니다. 소통의 시작은 말하기가 아니라 듣기부터가 시작입니다.     

결혼은 새롭고 다채롭고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겪습니다. 겪으면서 자신이 부족하고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원하던 임신이든, 원치 않든 임신이든 결혼함과 동시에 임신이 되었든, 기다리는데 임신 소식이 늦어 조바심나서 다른 사람들의 말들이 원치 않게 들립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나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기울여주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가까운 남편에게, 남편이 내게, 아내에게, 아내가 내게 말이지요. 낯선 상황에서 익숙해지는 상황이 될때 까지 조금 더 가만히 들어주는 우리가 되어 간답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을테니까요. 주인공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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