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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넷플연가 May 16. 2016

'안개 속의 성좌'
박세준 작가

Artist Interview

알 수 없음의 안개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나는 별처럼 아주 사소하고 우연한 계기들에 의해 그 무거운 어떤 것이라도 굴러가기 마련이다내게 해보다 달과 별이 아름다운 이유는그것들이 어둠 속에서 빛나기 때문이다.”


박세준 작가 노트 


안개 속의 성좌, 91.0 x 116.8cm, Mixed media on canvas, 2016


다소 이질적인 공간에서 무언가 ‘부유’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수많은 매체들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요즈음의 미디어 현상과 이미지들의 폭발적 소비(가령, 인터넷 뉴스나 SNS의 이미지, UCC영상, 넷플릭스와 같은 콘텐츠 등의 생산과 소비 흐름)를 지켜보다 보면 저도 모르게 자꾸 그 ‘끝’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버릇 같은게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괜시리 ‘이게 다 뭘까?’, ‘이건 다 무슨 의미일까?’ 같은 의문과 느낌이 들곤 하는데, 그러한 지점에서 저는 불안을 경험하곤 합니다. 이미지들의 범람은 바로 그 지점에서, 마치 잿빛으로 변하는 것처럼 전반적인 것들이 모노톤으로 느껴집니다. 이는 작업에 대한 과정과도 연관이 되는데요. 구상적 이미지들의 중첩이 모노톤으로 어렴풋하게 그려지는 것은 위와 같은 느낌을 전달하려고 한 것입니다.


추상적인 배경의 색감들과 다각면, 구체로 표현된 물체들이 서로 뚜렷이 나뉘어져 있다.

모노톤으로 중첩된 구상 이미지들의 레이어 위에, 그것과는 대비되는 추상 작업을 합니다. 제게 있어서 추상 작업은, 일종의 ‘불가지성’을 받아들이기 위한 과정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던 제가 느끼는 불안은, 부질없이 ‘끝’에 대해 생각하고 알 수 없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 혹은 ‘이미지들의 범람’이라는 거대함 앞에서 느끼는 개인의 무력감이나 의미 상실의 허무함과 같은 통제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일종의 소화불량과 같은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진행하는 추상 작업의 과정은 브러쉬, 스프레이, 스퀴즈 등의 도구를 통해 그려내고 그것을 물이나 헝겊 등으로 다시 지우면서 만들어내는, 에스키스를 통해 미리 어느 정도 계획하고 들어가는 구상 작업과는 반대로, 무질서하고 스스로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행위의 반복입니다. 이를 통해서 제가 느꼈던 것은 저 스스로가 미래에 대한 ‘모호함’과 ‘불가지성’에 대해 표현하고, 그것을 재수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불가지성’을 표현함으로써 확인하고 그것을 수용한다는 것은 불안을 꽤나 잠재워 줍니다. 공감하실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그래,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더 나아가 보자’ 하는 마음을 먹게 해줍니다. 다면체로 표현되는 요소들 또한 즉흥적으로 들어가는 형태들인데요. 어떤 ‘결정(crystal)’이라든지 별처럼 느껴지는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러한 형태로 드러냈습니다. 그림의 전반적인 것이 제가 작가노트에서 이야기하였던 것과 같이, 가까이서 대하는 삶이 합리적이고 이성적, 계획적으로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멀리서 보면 볼수록 별자리와 같이 사이와 사이의 인과관계가 모호하고 어쩐지 알 수 없는, 그런 추상처럼 굴러가는 구석에 대해, 저의 ‘세상에 대한 느낌’을 전달하고자 하였습니다. 다만 적극적 추상 작업은 제가 도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지금 좀 실험하고 시도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작업과정이 궁금하다. 물체들의 위치나 색을 입힐 때 미리 생각한대로 캔버스를 채워가는 지, 아니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작업을 하는 것인지 알고 싶다.

저는 평소에 여러 매체 등을 통해 제가 접하는 이미지나 영상 등을 저장해 놓습니다. 그리고 작업을 할 때 그것들을 활용 하는데요. 우선 구상 이미지들을 모노톤으로 중첩시키는데, 이 과정에서는 우선 에스키스를 통해 어느 정도 계획을 가지고 들어갑니다. 그렇게 적게는 3개에서 많게는 5~7개 정도의 이미지들의 레이어를 중첩시키고요. 그 위에는 특정한 계획이나 스케치 없이, 모노톤과 대비되는 색감과 질감의 추상 작업을 덧씌웁니다. 추상 작업의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계획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중간 중간 물과 미디움을 통해 지우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하고, 브러쉬나 스퀴즈, 헝겊 등을 써서 밀어버리곤 합니다. 이 것 또한 계획이 아니냐고 한다면 제가 할말은 없겠지만 저는 그냥 이 부분에서는 최대한 무의식적으로 작업하려 애씁니다.


작업 과정


나에게도 낮에 뜨는 해보다 까만 밤에 뜨는 별과 달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컴컴한 밤의 별과 달처럼 작가님의 삶 속에서 의미 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듣고 싶다.

딱 한가지를 꼽아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말씀 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경험하듯이 저에게도, 한 시기를 마감하고 넘어가는 시점 들에서, 스스로가 산산조각 나는 듯한 시기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 같고요. 자기 부정이나 자기 의심에 시달리는 시간들이 상당히 고달픕니다. 아마도 미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이들보다 비교적 자신이나 세상에 대해 민감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성향도 한 몫 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러한 무거운 굴레와 같은 어두운 시기 속에 있더라도 항상 별과 같은 출구가 존재한다는 것이 제겐 큰 위안입니다. 그것은 사람, 물체, 날씨, 꿈, 시간, 느낌, 존재, 지식, 색 등 모든 게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학부 시절 디자인을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디자인과 회화 어떻게 보면 조금은 다른 장르를 병행하면서 좋은 점, 혹은 다른 작가와의 차별점이 있을까?

글쎄요. 디자인과 회화 작업은 비슷해 보일지 모르고, 겹치는 부분도 많이 있지만, 상당히 다르기도 합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아무래도 의도의 중점적인 발화 지점이 클라이언트에게서 비롯되는지 본인으로부터 비롯되는지 하는 차이이겠지요. 학부 시절 시각디자인을 전공하였고 그 중에서도 영상디자인 쪽에 관심을 많이 가졌었습니다. 그 덕분에 영상 매체와 컴퓨터 작업의 기술적인 측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또한 디자인적인 관점에서의 시각적 소통 방식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제게 어떤 차별점이 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어딘지 모르게 해체적인 충동도 있기 때문에, 디자인에서 강조되곤 하는 효과적이고 실용적인 시각적 소통 방식을 해제하고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마음 한 구석에 있습니다. 그런 점은 제가 저의 작업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기도 하고 상당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아무튼 종종 하게 되는 디자인 작업들은 저에게 여러 가지 의문과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하고, 개인 작업과는 또 다른 면에서 보람도 느끼게 해줍니다.


작품 활동 이외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도 듣고 싶다.

작업을 하는 시간 외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취미 활동이나 개인적인 관심사를 탐구하기도 하고, 사람들을 가능한 많이 만나며 지냅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아무래도 많다 보니 그런 시간에서 생기는 불균형감이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조금 하는 편입니다. 그런 시간에서 발생하게 되는 복잡하고 많은 상념들을 글을 쓰며 해소하기도 하고, 반대로 책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운동도 가능한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요. 친한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도 정말 소중합니다.


그럼 앞으로도 작가님의 작품들도 지금까지와 비슷하게 작업되는 것인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해나가고 싶은지 궁금하다.

네, 최근에 작업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더 심화시키고 가다듬어서 연작으로 해나갈 생각입니다. 다른 매체로도 실험해보고 싶고요, 최대한 많이 만들어서, 내년 쯤에 개인전을 열고 싶습니다. 궁극적인 지향점은 없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서 지속가능 하게끔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이 저의 지향점입니다.




박세준 작가님의 작품은 '꼰띠고 방배점'에서 5월 10일 화요일부터 6월 6일 월요일까지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작품은 직접 보는 감동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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