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Interview
끝없는 고통으로 뒤덮여 보이는 세계에서 새로움과 세상을 다시 만들어 가려는 의지를 가진 초인(ubermensh)의 모습과아포리아의 상황에 놓인 자신을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필연적인 운명을 긍정함으로서 주체로 존재한다는 아모르파티(amor-fati)의 개념은 나의 작업의 키이다.
우리는 기나긴 어둠 속에서 침전하는 존재가 아닌 어둠을 새벽의 빛으로 바꾸는 존재다.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긴 겨울 속에 있을 수도, 어디에 던져졌는지도 몰라 지도를 보지 못할 상황에 놓여져 있을 수도, 그리고 눈앞의 어딘가를 쫒아 뛰어갈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잊지말아야한다. 이는 가지 끝까지 피어나 만개하는 꽃으로 실재할것이며, 긴 겨울을 끝낼 수 있을 힘을 주며, 지도가 필요없이 원하는 곳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고, 눈앞의 목적지에 다다르게 할 것이다.
- 윤지원 작가 노트 中
제 손목에는 ‘demian’이라는 타투가 있습니다. 지워지지 않는 타투로 새길 정도로 저에게 아주 큰 의미가 있는 한 권의 책입니다. 소설 데미안에서 보여지는 인격 완성체는 우리 개개인 각자는 스스로의 운명의 짊을 스스로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모든 운명은 결국 우리 스스로가 되는데 있다는 것인데, 이 개념은 당시 주어진 상황을 회피하고 불안해하고 우울해 하면서 살아온 저에게 큰 돌덩이를 던진 것 처럼 깊게 박혔왔어요. 이 책을 몇번이나 읽었는지 생각도 안날 정도로요. 데미안이라는 책을 읽다보니 저자인 헤르만헤세는 어떻게 이책을 쓰게 되었는지 궁금했고, 자연스럽게 헤르만헤세에게 영향을 준 니체의 철학에 빠져들게 되었어요.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고독감, 미래의 모호함, 현실, 작업의 당위성, 인간관계,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저에게 큰 걸림돌이였습니다.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고민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현재 하고 있는 것마저도 잘 해내지 못하는 상황 속에 있었죠. 그때 데미안과 니체의 말은 기존의 ‘나에게 던지는 물음=두려움’을 기나긴 어둠 속에서 침전하는 존재가 아닌 어둠을 새벽의 빛으로 받아 들일 줄 아는 존재라는 것으로 바꾸어 생각할 수 있다는 해답을 제시해 주었어요. 우리는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긴 겨울 속에 있을 수도, 어디에 던져졌는지도 몰라 지도를 보지 못할 상황에 놓여져 있을 수도, 그리고 눈앞의 어딘가를 쫒아 뛰어갈때도 있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잊지말아야함을 기억해야 하고 이 사실은 어둠 속에서 가지 끝까지 피어날 수 있게 한다고. 책과 철학은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니체의 초인과 같이,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와 데미안같이 긴 겨울을 끝낼 수 있을 힘을, 지도가 필요없이 원하는 곳에 다다를 수 있을 것임을, 이렇게 니체의 가치관은 저에게 있어서 모토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이어지게 되었어요.
‘일반적으로 보여지는 아름다움에 상반된 미의 추구’와 ‘우리는 모든 것을 설명하고 정의 할 수 있는가=회의’에서 소재가 선택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여겨졌던 관념들, 내가 정말로 잘 알고 있다고 여긴 사실들,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 내가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나를 움켜쥐었고, 절망감으로 이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니체의 가치관을 접한 후 생각은 전환되었고, 이는 기존의 것을 재해석 하고 새로움을 만들어 내고 싶다는 의지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꽃은 미학적으로 가장 하위의 단계에 있는 것이라 여겨지며, ‘아름다운 존재, 밝고 날씨 좋은 날 피어나는 것’이라는 통념이 있습니다. 이 통념에서 ‘상반된 상황에선 피어나지 못하는 걸까.’라는 물음은 지금의 작업소재로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언어적 관점에서 소재선택이 고려되었는데요, 시각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작업을 보고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담고있는지 궁금해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절망 속에서도 피어난다’는 문맥상 쓰여집니다. 작업에 절망 속 운명애를 표현하기 위해 ‘피어난다’는 동사의 다의성은 소재를 꽃으로 잡게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우울함을 직시하고 대면하는 것은 만개의 첫번째 단계이기에 이 감정은 제 작업에서 배제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회의하는 길이 지혜를 소유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해요. 즉, 우울함과 문제상황을 직시한다 해서 그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지혜를 소유했다면 그것은 사유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주장하는 태도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전개될지 결론이 날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앞날은 모호하고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서 득도하듯이 다른 모든 것을 깨닫고 해결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고요.
하지만 모든 것은 새롭게 의심되어야하고 새롭게 해명되어야 함은 변하지 않는 명제라고 생각해요. 진리를 찾아가는 이유는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고 진리가 나를 해방시켜줌을 믿는 것, 즉 주어진 잘못된 생각을 묵인할수 없음은 생각과 삶에서 주체로서 존재함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런 생각을 제 작업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어요. 운명은 모든 사람에게 필연적으로 다가오지만, 여기에 묵묵히 순종하는 삶에서는 창조성을 찾아볼 수 없어요. 운명의 필연성은 긍정하되 적극적이고 사랑할때 자기만의 새로운 삶을 이룰 수 있는 것이고 바로 여기서 새로움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검은색은 동양이론에서 모든 존재를 가장 진실하게 표현 할 수 있는 색으로 여겨집니다. 대상이 가진 본질은 빛과 같은 시간의 영향 때문에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제가 작업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존재,삶,운명’이기에 이런 개념에 접근에 있어서 가장 적합한 재료와 색감이라 생각해서 사용했어요. 운명에 스며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지가 먹에 스며듬으로서 표현한 것이죠.
일단 소재부분에서 살펴보면 작업에 표현된 꽃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꽃이에요. 그 이유는 저의 드로잉을 통한 재해석된 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가지 꽃들을 놓고 시간과 거리를 두고 계속 관찰하면서 재해석해서 그려내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면으로 이루어진 묘사가 아니라 드로잉적인 선표현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또한 한지와 먹작업이 작업의 베이스이기에 먹의 농담에 따른 조형적 완성도를 위해 배채와 아교의 농도조절을 신경쓰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던지는 ‘왜?’라는 물음이 드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작업을 쉬지않고 계속 해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그리고 작업을 지금처럼 사랑하는 것.
윤지원 작가님의 작품은 서촌 '카페 드 벨빌'에서 8월 6일 토요일부터 9월 11일 일요일까지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작품을 직접 보았을 때의 감동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