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interview
삶은 한 권의 책이다. 이 책은 날마다 새로운 내용으로, 계속해서 채워지고 있다. 책의 755쪽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 현지너리 작가 노트 中
2년 전,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 예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여의나루 역 안에 작은 포토부스가 하나 있거든요, 여권사진이나 증명사진 찍는 기계인데... 네, 거기가 처음 뽀뽀했던 장소예요. 그래서 그림의 제목이 ‘여의나루’예요.(웃음) 1주년에도 뽀뽀사진을 찍었고 올해 기념일에도 또 다시 뽀뽀사진을 찍었어요. 물론 우리 둘만 보는 사진으로 간직하려고요. 그 날 집에 돌아와서 작년 사진이랑 같이 봤는데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거예요. 예뻐서 그림으로도 그리고 싶었어요. 앞으로 남자친구랑 같이 있을 때까지 매년 같은 곳에서 이렇게 사진을 찍어 남겨놓을 생각이에요. 그림 사이에서는 토코투칸 새 두 마리가 입을 맞추고 있는데 그냥 입술이 닿은 걸 직접적으로 그리기 보단 대신 새 두 마리가 입맞추고 있는 모습으로 대신 표현하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때 영어 모의고사 문제집에서 ‘토코투칸’에 대해 설명을 한 문제가 나왔어요. 글의 맥락에서 어색한 부분을 찾아라! 이런 문제였는데 지문을 읽으면서 ‘후르트링에 그 새가 토코투칸이었구나!’하고 투칸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새를 그리고, 찾아보고, 찾아가고 하다 보니까 알게 된 건데, 얘는 부리가 자기 몸집만큼큰데 속은 텅 비어있어서 가볍대요. 화려한 색깔에 커다란 모양이 뭔가 꽉 차있을 것 같고 무거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부리가 저하고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용감하고 넉살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저는 그 반대거든요. 낯도 많이 가리고 소심하고 겁도 많아요. 일부러 안 그래 보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갓 사귀기 시작할 때 그린 그림이에요. 삶에서 영원한 건 없잖아요, 지금 나는 너무너무 행복한데 이 행복이 언젠가는 끝이 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극도로 행복한 와중에 그만큼 불안해했어요.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말이에요. 끝이 나버리기 전에 지금 딱 세상이 폭발해버려서 이대로 다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뭐 이런 생각을 자주 했어요. ‘화산폭발’ 과 ‘빙하기’ 둘 다 그런 마음을 담은 그림이에요. 그래서 작품 제목이 ‘행복한 결말’이구요. 밝으면서도 어두운 그림이죠.
수익을 내려는 계획은 아직 없어요. 그림으로 올해 말에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 계획도 있고 옷에 프린트해서 입거나 핸드폰 케이스로 제작해서 쓸 계획도 있지만 아직 이렇게 만든 물건으로 수익을 낼 계획은 없어요. 하지만 기회가 생겨 ‘홍규’시리즈로 굿즈를 만들게 된다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계속 머리를 길러 동그랗게 올려 묶고 다니는 남자친구를 그리다 보니까 이걸 저만의 캐릭터로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앞으로 토코투칸을 그리듯 홍규를 많이 그리게 될 것 같아요.
지금 ‘키스’를 소재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2014년에 그린, 지금 전시장에 걸려있는 ‘행복한 결말 : 화산폭발’이라는 작품을 또 활용하여 그리고 있어요. 또 위의 작품 ‘월하정인’을 한 번 그리고 나니까 명화 속 연인들의 모습에 저희 모습을 넣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일단은 그렇게 작업을 하려고요. 이번 전시가 끝나면 남자친구 그림은 조금 자제하려고 했는데 그리고 싶은게 계속 생겨나네요.(웃음) 아마 앞으로 계속하게 될 것 같아요.
표현하고 싶은 건 표현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에게 그 방법중 대표적인 것이 그림인 것 같아요. 그냥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 재미를 추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이것뿐이지 궁극적인 지향점이나 목표는 따로 없다고 생각해요. 찾고 찾고 찾다보면 마음 속 어딘가에는 있겠지만. 네, 일단은 그래요.
현지너리 작가님의 작품은 합정 복합문화공간 'BBOX'에서 10월 11일 화요일부터 11월 7일 월요일까지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작품을 직접 보았을 때의 감동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