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사였던 아버지는 여름마다 아들의 사진을 찍어 사진관 쇼윈도에 걸어두었다. 가게 앞에 대문짝만 하게 걸린 사진이 못내 부담스러웠던 아들 훈식이었지만 아버지를 막을 길은 없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늠름해지는 아들의 모습을 사진관에 걸어 먼지를 쓸고 닦으며 바라보는 것이 그이의 유일한 낙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시내로 가기 위해서는 사진관 옆을 지나야 만 했으며 볼 것이라고는 폐업 신고로 먼지만 쌓인 가게들 사이 멀끔하게 자리한 사진관뿐이었다. 때문에 올곡리에서는 사진사의 유일한 핏줄 '준규'를 모르는 법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고놈 참 복스럽게 잘 컸네, 지 아비를 똑 닮았네 한 마디씩 얹으며 사진관을 지나다녔다.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한 마디가 차곡차곡 쌓인 사진관에서 준규는 무럭무럭 자랐다.
바른 사진관을 30년째 운영해 온 훈식은 동네에서 유일하게 오래 일한 사람이다. 사진과는 거리가 멀 정도로 넉넉지 못한 형편에다가 여의치 못한 사정으로 중학교 마저 중퇴했다. 그런 훈식을 두고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참으로 안타깝다 혀를 찼지만 훈식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만약 학교에 진학하겠다 때를 썼더라면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할 것이 뻔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진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볼펜마저 만져본 적이 전무한 훈식은 어두운 가정에서 자란 소극적이고도 내성적인 아이였다.
어린 훈식은 때를 쓰는 법이 없었다. 제 어미의 가슴에 못 박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1년 후면 국민학교에 입학할 즈음, 훈식은 늦은 밤 잠에서 깼다. 그날따라 반쯤 열려있는 방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불빛이 훈식의 눈가를 건드려서였다. 두 눈을 다 뜨지 못한 채 비비적거리며 빛을 따라갔다. 불빛을 따라 닿은 곳은 부엌이었다. 작은 초롱불을 바닥에 두고 싱크대 옆 찬장에 기대어 쭈그려 앉아있는 혜진이었다. 고개를 푹 숙여 소리 없이 숨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엄마는 혹여나 훈식이 깰세라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어린 훈식은 그런 혜진의 모습을 본 것이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혜진의 말 못다 한 사연을 가늠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다. 그저 두통이 잦다는 혜진의 말을 떠올리며 통증에 아파했던 것이라고만 여겼다. 훈식 앞에서는 절망을 내비친적이 일절 없던 혜진이었기에 섣불리 아는 척을 할 수는 없었다. 모른 척을 하는 것이야말로 훈식이 혜진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배려일 뿐이었다.
혹시나 혜진을 방해할까 봐서 까치발을 들고 살금살금 움직이려 하는 그때, 엄마의 흐느끼는 목소리에서 가슴을 후벼 파는 낯선 단어가 들려왔다. 어릴 때 말고는 혜진과 살면서 들어본 적 없는 말이다. 오랜만에 들려온 그 단어는 훈식의 마음속 깊은 곳을 뚫고 들어와 가장 아픈 가시로 박혔다.
"창기씨...나 혼자 어떡하라고. 당신 없이 나는 그리고 우리 훈식이 어떡하라고. 왜 나를 혼자 두고.."
듣기만 해도 뭄이 부르르 떨리는 그 이름. 창기, 아버지였다.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아빠의 얼굴이 어땠는지는. 어렴풋한 기억에 아마 그때가 마지막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빛바랜 군청색 양복, 촌스러운 패턴의 넥타이를 두르고 매일 밤 훈식의 방문을 열었던 그. 곤히 잠들어있는 줄 알면서도 한 번이라도 눈에 담기 위해 방으로 들어섰던 그. 세상모르고 잠들어있는 훈식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으면 미간을 찌푸렸던 훈식이었지만, 그렇게라도 간질여 실눈 뜬 훈식과 인사하고팠던 다정한 창기였다. 벽시계가 12를 가리키는 시간이면 침대 맡에서는 늘 땀에 절은 냄새가 풍겨왔다. 코를 찌르는 냄새에 훈식은 작은 두 손으로 코를 막아 '아이 냄새!' 했지만, 그 모습마저 귀엽다 웃으며 거무죽죽한 땟국물이 마른 얼굴을 훈식의 볼에 비벼댔다.
하지만 유독 케케묵은 쉰내가 진동을 하던 그날이 창기의 마지막이었다. 그로부터 훈식의 침대 맡에는 딱딱히 굳어버려 먼지만 옅게 쌓인 양초의 잔향만이 감돌았다. 더 이상 창기의 그림자진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창기는 영원히 훈식과 혜진의 곁을 지킬 수 없었다.
첫 문장 출처: 두고 온 여름 / 성해나
"당신이 오늘 읽은 첫 문장은 무엇인가요? 살포시 두고 가시면, 이어가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