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말할 수 없는 비밀, 그 시작

by 모티


규진은 고슬고슬한 밥 한 숟갈을 크게 떠 입 안에 넣고 김을 불어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 위로 젓가락과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쩝쩝거리며 음식을 다 씹지도 않고 꿀떡삼켜버리면서도 다음 반찬에 손을 먼저 뻗는 규진이었다. 배가 반쯤 찰 즈음 말없이 자신의 밥그릇만 빤히 쳐다보는 해진이 눈에 들어왔다. 요란하게 소리를 내던 규진은 그제야 해진의 눈치를 슬쩍씩 살피며 입을 다물었다.


"다.. 당신 무슨일 있어요?" 허기를 다 채우지 못한 규진은 반찬에서 눈을 떼지 않고 해진을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만 해진의 귀에 들릴리 없는 규진의 목소리. 멀뚱히 앉아만 있는 해진이 여간 답답했는지 이내 규진은 오른발을 구르며 깜짝 놀래킬 기세로 목소리를 높였다.

"여보!" 해진은 깜짝 놀라 가슴에 손을 갖다대며 규진을 보았다.

"아, 여보. 불렀어요?"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세 네어번 정도 토닥였다.

"당신... 오늘 이상하네. 통 말도 없고. 무슨 일 있었어요?" 반찬 하나씩은 꼭 규진의 밥 숟갈 위에 얹어주었던 해진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자 규진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 그랬어요? 미안해요. 내 정신좀 봐. 오늘 너무 피곤했는지 계속 정신이 멍하네. 하하"

"당신 그 검지 손가락은 왜 그래요?" 규진은 젓가락을 쥔 오른손을 해진의 검지손가락을 향해 저으며 말했다.

"아 이거 별거 아니예요. 아까 재료 손질하다가 살짝 칼에 베여서 그래요. 피도 거의 안났고 상처가 크지도 않으니 걱정 안해도 되어요." 해진은 상 위에 올려두었던 손을 재빨리 바닥으로 내리며 말했다.

"아니 평소 안전이라면 유난을 떠는 당신인데, 손을 베었다는게 놀라울 정도야. 대체 무슨 생각을 했길래 그 큰 칼에 손을 베이냔 말이야. 진짜 뭔 일 없는거 맞아요?" 규진은 해진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가느다랗게 떨리는 눈동자에 답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동자에 답이 있을 것만 같았다.

"일 없어요. 무슨 일이 있겠어. 정말 아무것도 없으니 걱정 말아요." 해진은 억지로 눈가 주름을 구기며 규진을 향해 웃어보였다.


해진은 테두리 쪽으로 선홍빛 핏기가 스며든 밴드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축축히 젖은 부분이 보이지 않도록 안으로 말아 접으며 규진의 시선을 피했다. 그의 의심스러운 눈빛에 옴짝달싹 못하던 해진은 몇 주전 화제거리였던 가족여행이 떠올리며 급히 말을 꺼냈다.


"여보, 우리 이번 가을에 윤주랑 진성이 데리고 가족 여행 가기로 했던 펜션 정해졌어요? 지난번에 진성이가 링크 보낸 곳이 널찍하고 깔끔해서 좋았는데. 가격이 너무 비싼게 단점이고. 당신이 보낸 숙소는 확인 못해봤는데 거기가 더 나은가?" 해진은 검지로 스크롤을 오르내리며 단체 카톡방을 열었고 그 속에 숨어들어 당황한 자신의 모습을 가리려 들었다.

"당신,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네...? 왜 그래요..?"

"당신 요즘 진짜 이상해. 건망증이 심해진건지 몸이 안 좋은건지. 오늘 특히나 더 이상해. 우리 이번 가족 여행 윤주 해외 출장 일정 때문에 내년 봄에 가기로 했잖아요. 그때 하필 또 연휴도 끼어 있어서 예약 가능한 숙소도 없었고 대부분 다 비싼 편이라 봄 나들이 할겸 하동이나 가자고 얘기했고. 당신도 좋다고 박수치고 그랬잖아요. 기억 안나요?" 규진은 봄 나들이 노래를 하며 김밥에 샌드위치에 다 준비하겠다며 해맑게 웃었던 해진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머, 내 정신좀 봐. 그랬었지 참. 그 때 봤던 숙소가 너무 좋았는지 나도 모르게 계속 생각하고 있었나봐요. 우리 그랬었지, 봄에 여행 가기로. 기억나요 기억나."

"당신 진짜 별일 없는 거 맞아요?" 규진이 따뜻한 손을 해진의 이마에 갖다댔다.

"진짜 없다니까요, 오늘 하루종일 집안일을 했더니 피곤해서 정신이 오락가락 하나봐요." 해진의 이마 위에 올려진 규진의 손은 해진을 편안하게 하기는 커녕 불편하게 했다. 자신의 복잡한 머릿속이 정확히 읽힐 것만 같아 규진의 손을 잡아 내리며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꼭 나한테 말하고. 혹시 아픈 증상 같은게 있으면 꼭 병원에 가봐요. 무서워서 그러는거면 같이 가고. 우리 나이, 조심하긴 해야해 진짜." 규진의 미간 주름은 짙어지며 더욱 선명해졌다.

"알겠어요. 꼭 말할게요 여보."


해진은 자신을 끔찍이 여기는 규진의 깊은 마음을 알았지만 오늘 일을 꺼내어 말할 수는 없었다. 나긋하고 다정한 성격 뒤에는 자잘하게 따라다니는 걱정이 그를 예민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이가 들며 건강과 관련된 일이라면 기를 쓰고 동네 병원 곳곳을 들쑤시고 다녔기에 선뜻 얘기할 수 없었다. 만약 오늘의 일을 섣불리 얘기했다가는 밤 새도록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드나들며 지금의 상태에 대해 가장 극단적인 진단을 내리고는 다 죽어가는 얼굴로 대학 병원 5군데 쯤 예약할 규진이 선명히 그려졌겠다 생각했다.





메시지가 도착하였습니다.

"얘, 해진아 지금 어디쯤이니?"


오전 11시 30분. 정선의 문자가 해진을 깨웠다. 꼭두새벽부터 산악 동호회에 간 규진의 인기척을 듣지도 못하고 잠들어버린 해진은 베개 맡에서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암막 커튼으로 캄캄해진 방 안, 침대 위를 손으로 더듬으며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손에 집히는 핸드폰을 끄집어내 우측 상단 버튼을 딸깍이며 화면을 열었고 눈을 찌를듯이 환한 불빛에 얼굴을 찡그렸다.


"나? 지금 집이지. 무슨 일이야?"


해진은 일어나 구겨진 이불을 대충 털어 펴 놓고 거실로 나왔따. 눌린 베갯자국이 어제의 일 만큼이나 선명했다. 기지개를 쭉 펴고 뭉친 어깨를 주무르며 소파에 털썩 앉아 습관처럼 TV를 틀었다. 하품을 쩍 하는 그때, 벨소리가 울렸다. 정선이었다.


"얘, 아직 집이라니 무슨 소리야?" 높은 톤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뚫고 나왔다.

"어제 컨디션이 안 좋아서 일찍 잠들었는데, 세상에 지금 일어난거 있지. 집이지 집. 어디가겠어 내가. 무슨 일이야?"

"옴마마. 얘 좀 봐. 너 약속 잊었어?"

"야..약속? 무슨 약속?" 해진의 머리 위로 앞전의 일이 선명히 떠오르며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늘 점심 약속 잊었어? 오랜만에 서울 가니까 그때 그 오리고깃집에서 점심 먹고 네가 괜찮은 카페 있다면서 가기로 했었는데. 12시 30분쯤. 기억 안나?"

"아... 혹시 그게 오늘이었나?" 먼저 나아간 말과 다르게 해진은 정선과의 약속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사실 여부를 묻기엔 정선의 실망한 얼굴이 먼저 눈 앞에 동동 떠다녀 말을 아꼈다.

"얘가 얘가. 나 서운해질라 하네 정말. 얼마만에 서울 오는건데 그걸 잊으면 어떡해!" 특유의 비음 섞인 목소리가 해진을 건드렸다.

"미안 미안. 내가 요즘 정신이 없어 자꾸 이러네. 미안해. 준비해서 바로 나가면 한시쯤 될 것 같은데 미안해서 어떡하지. 내가 밥 살게 정선아."

"됐어 밥은 뭐하러 사. 괜찮으니까 천천히 와. 그쪽 구경이나 하고 있을게."

"미안해. 요즘 건망증도 심해지고 그러는지. 아, 아니면 기다리기 힘드니까 우리집으로 올래? 규진씨도 지금 산타러가서 집에 없고, 재료 사둔것도 많아서 밥해줄게 내가. 정선이 너만 괜찮으면."

"그래? 음, 오리고기 먹고 싶긴 했는데. 또 오랜만에 해진표 계란말이랑 김치찌개가 또 생각났단 말이지. 그치. 그럼 내가 집으로 갈게! 마침 나 롤케익도 사와서 같이가서 먹지 뭐!" 핸드폰 너머로 롤케익이 담긴 종이봉투가 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무것도 안 사와도 돼. 미안하게 내가. 집에 먹을거 많아. 과일도 있고. 천천히 와."

"알겠어 얘. 천천히 갈테니까 얼른 준비해놔! 맛있겠다."

"집 주소 문자로 찍어줄게."

"오케이! 바로 간다!"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었던 일이 불과 24시간도 채 안된 시간 내 일어나는게 당황스러웠다. 눈 딱 감고 자고 일어나면 나아지겠지 했던 생각이 눈을 떠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었다.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는 모련에서 정선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었지만 해진은 달갑지 않았다. 마음과 다르게 누군가를 당황시키는 자신의 모습이 좀처럼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 마음보다 상대의 마음에 더 많은 신경이 쓰였다.정선의 서운함을 더욱 크게 헤아리며 입을 꾹 다물었고 자꾸만 눈에 띄게 다른 자신의 이상한 증상을 곱씹었다.


'진짜 요즘 나 왜 이러지. 벌써 몇 번째야. 어제 뿐만이 아니야. 부쩍 건망증도 심해지고 깜빡깜빡하고. 기력이 다했는지 보약을 한 첩 짓기라도 해야하나.'


양 손 무겁게 낑낑거리며 들어온 정선은 "와, 이해진 그대로네!" 하며 웃어 보였다. 소식적부터 밝고 쾌활한데다가 뒤 끝이 없어 쿨하기로 이름난 정선의 주위엔 늘 사람이 따랐다. 그대로였다. 주름진 세월은 눈가에서 찾기 어려울만큼 정선은 티없이 맑았다. 한때 자신과는 정반대인 정선이 부담스러운 적도 더러 있었으나 그런 정선의 성격 덕에 자신과 친해질 수 있었던 걸 생각하면 정선이 고마웠다.


"한번 안아보자! 오랜만이야 해진이" 양팔 크게 해진을 꽉 안아 조이고선 그때처럼 해진의 엉덩이를 툭툭 건드렸다.

"아이 왜 이래. 남사스럽게. 오느라 너무 힘들었지, 고생했다. 배고프지? 얼른 손씻고 밥먹으면서 얘기하자."


해진은 정선에게 또다른 실수를 할까봐 겁이나 말을 아끼고 싶었지만 그간의 풀지못한 이야기에 두 사람의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특별할 것 없는 김치찌개를 후 불며 맛있게 먹는 정선의 모습을 보는 것이 해진은 행복했다. 특별해진 느낌이었다. 밥알을 다 씹어 삼키기도 전에 입 속으로 마구 집어넣으며 와구와구 먹는 정선을 보며 웃음을 참을 수 없었고, 그 순간만큼은 해진을 괴롭히던 며칠 사이의 일들은 온데간데 없었다.


정선은 해진을 위해 일본에서 사온 케익이라며 구겨진 쇼핑백을 뒤적였다. 해진은 손사래를 치며 사양의 표시를 비쳤으나 자신을 생각해준다는 사실이 내심 좋았다. 자신의 취향을 찰떡같이 알고 있는 정선의 선물이 반가웠다.

"해진아 이리와 봐. 내가 이번에 일본에서 사온건데, 요즘 '도지마롤'이라는게 유행이래."

"도지마롤? 그게 뭐야?"

"이게 롤케익인데 케익 안에 생크림이 잔뜩 들어있는 빵이래. 크림이 들어있어서 더 촉촉하고 부드러운데 먹어보니까 입에서 살살 녹더라. 커피 한 잔 하면서 먹는데 네 생각이 딱 나는거 있지? 너 학생때부터 롤케익 엄청 좋아했잖아.""뭘 또 이런걸 사왔어, 너도 참. 그치 맞아. 내가 롤케익 좋아해서 너한테 나눠주지도 않고 혼자 다먹었었는데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야."

"우리 사이에 뭘 그런걸 생각해. 맛있게 먹기만 해. 잘라서 먹게 접시랑 칼 하나만 갖고와 봐!" 정선은 해진의 등을 부엌으로 밀어냈다.


해진은 정선이 늘 고마웠다. 학교 맨 뒷줄에서 항상 움츠리고만 있었던 자신에게 와 유일하게 말을 걸어준 사람. 학교 안을 누비며 학교의 온갖 소식은 속속들이 꿰고 있던 정선을 보며 이질감을 느꼈다. 쳐다보지 않아도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우당탕탕 소리만 나면 늘 그랬듯 정선이 있었다. 고요 속에 묻혀 말 한번 섞어본 적 없는 해진이었지만 가끔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해진을 세상 밖으로 들여놓을 때도 있어 싫지만은 않았다.


투명한 비닐로 감싸진 롤케익을 조심스레 뜯어 조각조각 잘랐다. 하얀 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인 케익 한 조각을 보며 해진은 생각했다. 차갑게 웅크리고 있는 자신을 너른 팔로 감싸안고 있는 정선의 모습 같다 생각했다. 마음이 따뜻지며 추억에 잠긴 해진의 마음을 느꼈는지 정선 역시 지난 날을 떠올리며 말했다.

"해진아 우리 벌써 만난지 40년이 흘렀다? 시간 참 빨라 그치?"

"지팡이 짚을 때까지 오래 살자 했는데, 벌써 가까워진 듯해."

"얘는 뭐래? 요즘 5060은 나이든것도 아냐. 다들 얼마나 젊게 사는데!"

"그건 맞아. 가늠할 수가 없더라고 요즘은. 젊게 사니까."

"너도 그대로거든? 누가 들으면 욕한다 얘. 말 하니까 생각난건데 우리 앨범 갖고 있지? 꺼내보자!"

"응 있어. 기다려봐 가져올게."


정선은 콧노래를 부르며 쭉뻗은 다리를 흔들며 앨범을 기다렸다. 남편의 서재 구석에 꽂혀있던 앨범을 꺼내든 해진은 그 위에 톡톡히 쌓인 먼지를 후 불어 걷어냈다. 시커먼 먼지를 걷어내자 정선과의 추억이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다. 푸른 바탕에 쥐색 교복을 입고 해진은 뿔테를, 정선은 버건디색의 얇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안으로 굽은 어깨에 눈치를 늘 살폈던 해진은 앨범에서 만큼은 밝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정선은 해진을 손으로 가리키며 추억 속을 헤엄쳤다.

"야 해진아 너 좀 봐봐. 그때는 생각 못했는데 젖살이라 그런지 볼이 포동포동해. 귀엽다."

"나 진짜 어렸다. 앳되다 정말. 그나저나 정선이 너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 늙지도 않고."

"여기 자글자글한 주름 안 보이니? 나도 늙었어! 어렸을 때야 어른들은 밝아서 보기 좋다고 하지만 나이 들어서도 이러니까 좋은 소리 못들을 때도 많아. 신경은 안쓰지만."

"역시 너는 너다. 나였으면 한참 신경쓰여서 계속 걱정했을텐데."

"그래도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거 같은데. 너 그때는 말도 잘 못걸고 눈치 엄청 봐서 담임 선생님이 눈칫밥 먹고 살았냐고 했었잖아."

그 시절에 잠겨 깔깔대다 정선이 무릎을 탁 치며 에피소드 하나를 꺼내어냈다.

"그 때 기억나? 우리 학교 안에 산길 있어서 점심 먹고 산책할 수 있었는데 산속에서 바바리맨 출몰해서 발칵 뒤집혔던거."

"아유, 그 날을 어떻게 잊어. 그래서 그 때 희애가 놀라서 도망치다가 계단에서 나자빠지고 무릎 다 까져서는 구급차 와서 병원가서 치료 받았었잖아."

"희애?"

"그래, 희애. 기억 안나? 한 동안 깁스하고 다녔던, 그 왜 얼굴 하얗고 단발머리애."

"걔는 우리 대학 동기잖아!"


아슬하게 외줄타기를 하던 실수가 정선 앞에 보란듯이 드러났다. 피할 곳이 없었다. 전화나 문자였다면 어물쩍 넘어가기라도 했겠지만 눈 앞에 정선을 두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의 당황한 모습을 보고있을 정선을 생각하니 가슴이 조여왔다. 미처 넘어가지 못한 입 안의 도지마롤은 부드럽게 씹히지 않고 해진의 목을 막히게 했다.


"해진아.. 무섭게 왜 그래. 너 무슨일 있어? 어디 아파?"

"... 아냐 정선아, 아프긴 무슨. 내가 요즘 자꾸 깜빡깜빡해. 자꾸 그래서 미안해 너 걱정되게. 요 며칠 잘 못쉬고 신경좀 썼더니 더 이러나봐."

"그러면 다행인데... 병원은 가봤어?"

"병원까지 갈 일은 아닌 것 같아서. 건망증 정도니까 며칠 푹 쉬면 괜찮을 것 같아."

"그래도 병원 가 봐. 우리 나이에는 없던 병도 막 생기고 그런다더라. 그 소식 들었지? 그 우리 동네 근처 살았던 용건이. 지난달 말에 일 치른거."

"용건이가? 무슨 일?"

"아니 왜, 그 용건이가 길 가다가 넘어졌는데 제대로 짚지도 못하고 그대로 넘어져 버려서 얼굴에 팔 다리를 모두 다쳤더래."

"어머 세상에, 세상에. 많이 다쳤대?"

"당연히 많이 다쳤지. 그런데 문제는 다친게 아니라 병원에서 종합검사를 했는데 파킨슨이라는거야."

"아니 파킨슨? 전혀 모르고 있었대?"

"그간 별다른 증상이 있었던 건 아닌가봐. 그런데 용건이 말로는 그날따라 유독 걸음이 빨라지고 멈춰지지가 않더래. 애써도 잘 안되서 피하려다 보니까 발을 헛디뎌서 넘어졌다 하더라고. 검사해보니까 파킨슨도 진행이 꽤 된 것 같더라고. 나도 놀라서 병문안 가보려 했는데 일정이 안되서 가진 못했고 저저번주에 그.. 이름 뭐지. 아, 명숙이가 다녀와서 얘기해줬는데 말도 어눌해지고 사람하고도 눈을 잘 못마주치나봐."

해진은 마치 비슷한 일이라도 일어난듯 자신을 바라보는 정선의 눈빛을 피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저런. 우리 중에 제일 건강하던 용건이었는데. 어쩌다가.."

"그러니까 해진아 너도 평소랑 뭔가 느낌이 다르면 미루지 말고 꼭 병원부터 가봐. 나도 용건이 소식 듣고 무서워지더라고."

"그래 꼭 그럴게."


반가운 정선은 달갑지 않은 소식과 함께 해진을 찾아왔다. 숨기고 싶은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큼은 절대로 피하고 싶은 해진이었지만 가슴 한 구석에서 울렁거리는 두려움이 해진을 불편하게 했다. 용건의 소식과 요상하리만치 꼬여있는 지금의 상황이 해진의 두통을 더 키웠다. 하지만 그보다도 앞으로 닥칠 상황과 알 수 없는 증상이 누군가를 더 괴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괴로운 마음이 커졌던 해진은 끝까지 자신의 안중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