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모련초 입학식

by 모티


해진이 모련에 온 것은 8살 때였다. 그때도 그랬던 것이 좋은 학군지가 아이들 성적은 물론 4년제 대학 진학까지 보장한다는 말에 이사 열풍이 불었다. 학교는 물론이고 아파트 단지와 학원가까지 잘 갖춰진 곳에 보내야만 한다는 부모들의 과학 욕심은 나날이 당연한 것이 되어갔다. 미옥 역시 그랬다. 해진에게 좋은 환경만 만들어 준다면 '사'자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인재쯤은 충분히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모련에는 초중고가 하나의 부지에 나란히 붙어있는 사립학교가 있어 입학하기만 하면 그 후부터는 성공가도를 달릴 거라고들 했다.


이름난대로 모련동에서 제일가는 학교였기 때문에 교사들 역시 그러했다. 아이비리그나 스탠퍼드 같이 유명한 해외 대학 출신, 특목고 출신 등의 우수한 배경을 가진 자들만이 자격을 가질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소문대로 모련고 출신 학생들의 상위 10위권 대학 진학률은 89% 이상을 웃돌았고 각 반에서 한참 뒤처지는 성적이라 하더라도 서울 중상위권 대학은 충분히 갈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미옥은 해진의 입학시기에 맞춰 모련으로 이사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미옥의 철두철미한 계획 속에 해진의 의견은 하나도 없었다. 한적하고 고요한 연호동을 벗어난다는 사실이 여간 불편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연호 토박이'라 불릴 만큼 어린 시절부터 줄곧 그 동네를 전전하고 있어 또래 아이들 혹은 동네 사람들과도 꽤나 편안해진 사이였다. 무엇보다 모련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 앞으로 끊이지 않을 미옥의 간섭이 더더욱 두려웠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모련으로 이사 갈 계획에 들떠 종일 콧노래를 부르는 미옥을 보며 해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칫 싫은 내색이라도 비추었다간 미옥의 표정이 굳으며 다 저를 위하는 말인데 왜 몰라주냐는 둥, 나중에 고마워하게 될 거라는 둥 잔소리를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진의 마음속에 담긴 말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해진은 모련초에 입학했다.





가지 위로 연초록 새싹 잎이 봉긋이 솟은 어느 봄날, 모련초의 입학식. 무려 한 달 전부터 입학 준비에 몰두한 미옥은 이에 완전히 미쳐있었다. 가끔 지나치게 억척스러운 미옥을 보며 상호는 혀를 끌끌 차면서도 또 해진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좋은 선택이라 수긍하며 말을 아꼈다. 미옥은 모련초 아이들이 입는 옷 브랜드, 소재가 탄탄하고 깔끔한 책가방, 방과 후 수업 목록 등을 꼼꼼히 조사했다. 해진 보다 더 애를 쓰고 있었다. 자신이 혹여나 놓친 정보는 없을지, 학급 선생님들한테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발품 팔아 귀한 정보를 차곡차곡 모았다. 저 자신이 피우지 못한 꽃을 해진에게만큼은 보리라는 다짐이 만들어낸 열정이었다.


어느 날은 자신의 집에서 낯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미옥이 하는 말을 받아 적으면서 열띤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가입조차 어렵다던 맘카페 사람들이었다. 해진이 모르는 사이에 미옥은 맘카페 부반장까지 되어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콧날을 우뚝 세우며 사람들에게 줄줄 정보를 흘리는 미옥을 보며 해진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자신이 앞으로 마주하게 될 미래가 점점 더 두려워지기만 했다.


찬 기운이 남은 3월, 해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모련초로 향했다. 딸자식보다 저들 복장에 더 큰 힘을 준 부모들이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내며 모련초 정문으로 들어섰다. 미옥 역시 베이지색 캐시미어 코트 하나를 장만했고 불편하다며 손에도 대지 않는 모직 스커트와 하얀 목폴라를 입었다. 물려받은 진주 목걸이와 빛에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반지와 귀걸이도 얹었다. 아침부터 열심히 셋팅기를 말아 볼륨에 힘준 미옥은 부반장이라는 타이틀을 안고 자신 있게 모련초로 들어섰다.


해진은 그런 미옥이 곁에 따라다니는 것이 부끄러웠다. 정작 집에서 보는 미옥의 모습과는 딴판이었으며 어색하고도 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널찍한 강당을 채우는 시끄러운 소리,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해진은 숨이 막혀 나가고만 싶었다. 당장에라도 이곳을 벗어나고만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저도 모르게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오른 다리를 덜덜 떨며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맘카페 사람들과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고 돌아온 미옥은 해진의 모습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라 말했다.

"어머, 얘 이해진! 지금 뭐 하는 자세니 이게?" 미옥은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해진을 보며 자지러졌다.

"사람들이 이러고 있는 거 보면 어쩌려고 그래? 여자애나 돼서 다리를 오므리지도 않고 그렇게 상스럽게 앉아있으면 어떡하니 너는"

"아 의자에 기댔는데 미끄러졌어. 다시 바로 앉을 거예요." 무안한 해진은 곁눈질로 미옥의 표정을 살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 중요한 입학식 날 넌 꼭 그래야겠니? 내가 항시 뭐라고 했니. 단정하고 조용하게 앉아있기만 해도 반은 간다고 하질 않았니. 누가 볼까 봐 부끄럽다 정말." 미옥은 강당 안을 두리번거리며 노심초사하며 말했다.

"알겠어요."

"아직까지 이렇게도 철이 안 든 것 같아서 걱정이다 정말. 남들이 보면 뭐라 하겠니? 지금 저쪽 엄마들 사이에서는 해진이 네가 싹싹하고 인사성 바르다면서 칭찬이 자자해. 나에 대한 기대도 큰데 네가 자꾸 그렇게 행동하면 내가 뭘 어떻게 도와줄 수 있겠니. 다 너를 위해서 이렇게 고생하면서 하는 건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미옥은 해진을 나무라면서도 자신이 딸아이를 나무라는 모습을 볼까 봐서 숨죽여 말했다.


''내가 여기 오고 싶다고 했던 것도 아닌데...' 옆에서 쏘아대는 미옥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떨군 해진은 입을 삐죽거렸다. 마음속의 소리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해진 안에서만 맴돌았다.

"엄마 말 들어서 나쁠 거 하나도 없어. 어른 말을 들으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야. 다 네 나이 들면 나한테 고마워할 거다 정말." 옅은 한숨을 내쉬며 미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

"참,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학교에서는 절대 까불지 말고 나서지 말고. 알겠지? 무엇보다 남한테 폐 끼치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라. 그랬다가는 정말 내가 모련에서 창피해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겠어. 다 되어가는 밥상에 재 뿌리지 말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알겠니?" 사회생활 선배를 자처한 미옥은 해진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신신당부했다. 해진에게 도움 되는 것은 없어 보였으며 미옥은 되려 해진보다는 저 자신의 평판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듯했다.


"부럽다 이해진, 엄마가 이런 것도 해주고 말이야. 엄마는 이렇게 하고 싶어도 하지도 못했어. 나 때 좋은 학교 나와서 대학까지 잘만 갔어도 더 편히 살 텐데 말이지, 여행도 다니고.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교육 체계도 좋아졌고. 복 받은 세상에서 태어난 거야. 엄마 아빠 같은 사람도 없다 너?“ 미옥의 왼쪽 팔꿈치가 해진의 오른팔을 자꾸만 건드렸다.

“알겠으니까 저 입학식에 집중할게요.”

”아 참, 그래그래. 앞에 보고 집중하면서 들어. 조신하게 앉고.“

미옥의 입은 쉬는 법을 몰랐다. 남들의 말과 행동에 따라 들쑥날쑥 움직이는 미옥은 자신에 대한 아쉬움을 해진을 통해 해소하려 했다. 과연 미옥 역시 그런 삶을 꿈꿔왔는지는 미지수지만.




“오늘 입학식은 잘했는가?” 늦게 들어온 상호가 넥타이 목을 풀어헤치며 해진을 바라봤다.

“뭐, 그냥저냥 잘했어요.” 이미 끝나버린 일에 별 관심을 두지 않은 해진은 핸드폰만 만지작 거렸다.

“그냥저냥? 뭐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본데?” 상호는 무표정으로 손가락만 까딱이는 해진의 눈치를 살폈다.

“아녜요. 입학식이 뭐 입학식이죠. 별 거 없었어요.”

“그나저나 해진이 너는 몇 반이니? 담임 선생님은 성함은 어떻게 되고?”

“저는 3반이요. 권준철이래요. 선생님 이름은 왜요?” 해진의 일에 큰 관심을 두지 않던 상호가 던지는 질문에 의아해하며 핸드폰 스크롤링을 멈추었다.

“아, 별건 아니고 내 친구 중에 모련초에 이번에 발령받은 애가 하나 있어서 그 사람 어떤지나 하고 물어볼까 해서.” 해진의 심기를 건드릴 질문이라고는 예상했으나 생각보다 어두워지는 해진의 표정에 상호는 시선을 피했다. 그 옆에서 조용히 아이크림을 두텁게 눈가에 올려 약지 손가락으로 마사지를 하던 미옥이 한 술 뜨며 거실로 나왔다.

“여보 아는 사람 있었어요? 진작 좀 말해주지. 미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아. 그래서 그 권준철이란 선생님, 당신 친구가 아는 사람이래요?“

시종일관 호들갑을 떠는 미옥이 연약한 눈가를 세게 문지르며 상호를 빤히 응시했다.

“모르지, 내일 물어봐야 알지. 그래도 일단 모련초 들어가긴 했으니 이왕 간 거 좀 잘해야 할 거 아냐. 제대로 된 선생도 만나면 얼마나 좋아. 그래서 한번 물어볼까 했지. 내가 내일 물어볼 테니 또 먼저 설레발치지 말고 조용히 있어 당신은. 괜히 이런 얘기 나돌면 교사들은 오히려 해진이 색안경 끼고 볼 수도 있으니까. 알겠지?”

원리 원칙과 규율이라면 꼼짝 못 하는 상호는 미옥의 가벼운 입이 일을 그르칠까 신신당부했다.

“당신은 참, 내가 그 정도 눈치도 없을까 봐. “

자신을 못 미더워하는 상호에게 못내 알랑거리는 미옥은 그녀의 계획이 일사천리로 흘러가는 모양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항상 말이 많을수록 탈이 나는 법이야. 감정을 표현해서도 안되고.”

상호는 무거운 기침을 큼큼하며 소파에 기대어 발을 까딱거렸다.


상호만큼은 비교적 제 편에 서있다 생각했던 해진이었지만 자신이 크면 클수록 멀어만가는 느낌에 마음 한 구석이 쓰렸다. 해진의 삶에는 이유가 있어야 했으며 그 근거는 미옥과 상호에서 비롯된 것이야만 했다. 그들이 갖춘 어항 속 작은 물고기는 그렇게 미옥과 상호의 말을 먹고 자랐다.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