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어디예요?
쩌럭하며 언 땅이 녹는 소리와 함께 작고 연약한 연둣빛 새싹이 고개를 내밀었다. 봄기운이 내려앉으며 밝은 햇살이 살갗에 닿아 간지럽혔다. 하지만 해진의 기억 속에 봄은 늘 추웠다. 서늘한 바람이 일며 아침저녁 기온 변덕이 유독 심해 종잡을 수 없는 그런 계절. 자식이 사시사철 푸르기만을 바랐던 미옥과 상호의 노고는 되려 해진을 더욱 쓸쓸하게만 했다.
숨을 몰아쉬며 잠에서 깬 해진은 기억에서 지우고 살았던 그날 속에서 허우적대다 눈을 떴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교무실에 우두커니 앉아 모두가 손가락질을 하며 마음을 후벼 파는 날카로운 말들을 쏘아대고 있던 모양이었다. 좋지 못한 기억은 더한 악몽이 되어 해진을 가끔 뒤집어 놓았다. 그럴 때마다 해진의 아물어가던 상처 위 딱쟁이는 다시 뜯어져 거듭 살점을 드러냈다.
꿈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 심장 박동이 고스란히 와닿았다. 푹신한 매트리스에 붙어있던 등허리를 살짝 떼어보니 식은땀이 흥건했다. 목주름을 타고 맺힌 땀을 손바닥으로 쓸어 닦아내고 세면대로 간 해진은 가장 차가운 방향으로 수도꼭지를 돌려 얼굴에 끼얹었다. 티셔츠 앞 넥라인이 축축이 젖으며 번져갔지만 정신이 몽롱했다. 거울 속 해진의 모습은 누군가에게 사정없이 두드려 맞아 기운을 차리지 못한 사람처럼 때꾼했다.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증상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멍해진 자신을 응시하며 눈만 끔뻑이고 있는데, 때마침 전화가 울렸다.
"어, 아들. 웬일이야? 이 시간에 웬 전화야. 무슨 일 있니?" 집 나가면 남의 자식이라고들 칭하는 막내아들, 진성이었다.
"엄마 혹시 오늘 시간 되시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타자 소리가 요란한 사무실에서 아들 진성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무슨 말? 부탁할 거 있니? 말해봐." 갑작스러운 아들의 전화에 반가움 보다 걱정이 더 앞섰다.
"아니, 별건 아니고. 요 며칠 회사 프로젝트 기획 준비한다고 11시 12시고 야근만 계속하니까 밥을 제대로 못 챙겨 먹어서. 배달 음식 먹거나 아님 컵라면으로 때우거든. 힘들어서 그런가 엄마 반찬이 계속 생각나네. 오늘 왠지 일찍 끝날 수도 있는데 시간 괜찮으면 집으로 갈까 하고. 근데 확실치는 않아. 알타리 김치랑 잡채랑. 아 두부조림도 진짜 맛있는데. 아무튼 집에 계시죠?"
머리털에 콧수여까지 은은하게 자라 서른을 훌쩍 넘어선 아들이지만 영락없는 막내였다. 그 나이 되도록 제 짝하나 없이 회사에만 줄창 얽매여 있는 진성이 안쓰러웠다. 감정 표현이 서투른 해진에 비해 어울리지 않는 비음을 섞어가며 애교를 떠는 진성이 늘 귀여우면서도 마음이 쓰였다.
"난 또, 무슨 일이라고.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 근데 퇴근하고 모련동까지 오면 시간이 너무 늦으니 엄마가 반찬 싸서 집으로 갈게. 그게 훨씬 낫겠어. 내가 가면 조금 늦은 저녁은 먹을 수 있으니까, 애쓰지 말고 엄마가 갈게." 필요한 부름에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에 해진의 기분은 한층 가벼워졌다.
지글지글, 치익, 탁 타타닥. 활기찬 부엌소리는 저녁 7시가 되어서야 막을 내렸다. 서너 개만 뚝딱 만들어 갖다 주려했던 해진의 마음은 늘 그보다 앞서 있었다. 늘 제 사람들에게는 열 손가락을 다 펴 세어야 할 정도로 푸짐하게만 해주고픈 마음뿐이었다.
양념이 찰랑거리는 장조림과 노릇 촉촉한 두부조림, 적절히 익은 야채들이 한데 어우러져 윤기를 내는 잡채, 폭익어 아삭한 알타리. 거기에 미나리 무침과 버섯전 그리고 고소한 콩자반까지. 빼곡히 담은 반찬 그릇을 층층이 쌓고 직접 담근 식혜까지 생수 통에 가득 넣었다. 진성의 입맛에 제격인 해진표 반찬 꾸러미가 보냉백 안에 꽉 찼다. 혹시나 타파통 뚜껑 사이로 새어 나올까 싶어 비닐봉지 매듭을 여러 번 묶었고 불룩해진 가방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가방 위에서 진성의 잇몸 만개한 얼굴이 아른거렸다.
생각보다 늦어진 시간이었지만 8시가 조금 넘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진은 여러 번의 칼질로 손목이 얼얼했지만 진성과 밥 한 끼를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다행이라 여겼다. 규진의 차로 이동하면 30분 걸려 도착할 가까운 거리었지만 해진은 운전대 잡을 생각을 일절 하지 않았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운전면허 취득은 필수 코스였던 그 당시 해진은 무려 6번에 걸쳐 합격했다. 덜덜거리는 자동차 엔진음과 사방에서 빵빵대는 경적소리, 시시각각 번쩍번쩍 변하는 신호등에 벌벌 떨며 몇 번이고 시험에서 떨어졌다. 운전면허 시험 날이면 하도 긴장을 해 어깨와 등짝이 결려 묵직했고 여러 번 시도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실력에 좌절감만 늘었다. 하지만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듯, 대충대충이 일상인 강사의 게으름 덕에 아슬하게 합격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어렵게 딴 면허는 장롱 속 어딘가에 잠들어 있지만 도로 위에서 질겁할 것이 뻔해 깨울 생각을 절대로 하지 않았다. 늘 그래왔듯 가만히, 그리고 조용히 있어야 피해를 덜 끼친다는 생각에 자연스레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퇴근길 지하철은 직장인들로 붐볐다. 쩌든 기름 냄새와 큼큼한 냄새로 뒤덮인 그곳에서는 죄다 시커먼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벗어나려 옆 칸으로 이동하려는데 손잡이를 잡고 기대어 선 사람의 가방을 무심결에 건드렸다. 눈치를 살피며 그 사람을 쳐다보는데 인상을 팍 쓰고 '아씨. 짜증 나게 하네'하는 거친 말로 해진을 긴장케 했다. 괜한 움직임으로 또 문제가 생길까 신경 쓰인 해진은 노약자 석 옆 구석에 조용히 기대어 섰다. 보냉백도 한참을 안으로 밀어 넣어 다리로 가리고는 쥐 죽은 듯 조용히 붙어 지하철 문을 지켰다.
창 밖 세상은 바쁘게 흘러갔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을 천천히 음미할 시간조차 없는 듯 보였다. 창문으로 어렴풋이 반사되는 해진의 모습은 바깥 풍경 속에 자유롭고 편안해 보였다. 하늘 위에서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편안할까, 행복할까. 자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규진과 사랑했고, 그 덕에 윤주와 진성이까지 품에 안아 행복하다 여겼지만 어딘가에 자꾸 묶여있는 듯한 무거운 느낌이 해진을 가라앉게 했다.
고요해 보이지만 그 깊은 속에서 빠른 흐름을 만들어 내는 강물. 그리고 그 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윤슬을 그려내는 한강을 스쳐 지났다. 곳곳의 빛이 물결 위로 뛰어들었다가 반사되며 새로운 빛을 내었다. 그 사이를 우직하게 가르는 한강 대교 위에는 빽빽하게 서있는 차들이 또 다른 불빛을 번쩍이며 달렸다. 편안한 아름다움에 한 껏 취해 두 눈을 살포시 감고 이를 만끽하던 그때, 지하철 안내 방송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번 역은 단월, 단월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소산, 영추 방면으로 가실 분께서는 이번 역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시길 바랍니다."
단월역에 내려 3호선을 타면 진성의 집과 가까워지는데 어딘가 모르게 낯선 느낌이 들었다. 해진은 갈팡질팡하며 지하철이 속도를 늦추어 갈 때까지 고민했다. 이곳에 내려야 했었나. 문 위의 지하철 노선도를 봐도 기억이 떠오르긴커녕 생소한 느낌에 자꾸만 초조해졌다. 지하철 문이 빠르게 열리고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넓은 간격을 보고 있으니 그곳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가슴이 답답해져 어쩔 줄을 모르다 그곳을 폴짝 뛰어넘어 내렸다.
퇴근길 환승 구간은 많은 인파로 지옥과도 같았다. 출구는 물론이고 환승 방향 표지판을 찾아보기 힘들었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밀고 밀리는 움직임에 해진 역시 떠밀려 사람들이 움직이는 곳으로 향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저도 모르게 이끌려 도착한 곳은 개찰구 앞이었다. 가만히 서서 찍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다 해진 뒤편에서 시비조로 성을 내는 사람들의 말에 또 떠밀려 저도 모르게 카드를 찍었다. 여러 방면으로 나 있는 출구를 보며 해진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벽에 붙은 지도를 살펴도 죄다 낯선 것들 뿐이었다. 핸드폰 배터리는 10%도 채 남지 않았고 오른손에는 무거운 보냉 가방만 들려 있었다.
"여기에 왜 왔더라."
생기 없이 무표정으로 핸드폰을 보며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그들 역시 자신들을 빤히 바라만 보고 있는 해진을 이상하게 여겼다. 역사 한가운데서 방향을 잃고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던 해진은 어딘가 정신이 좀 나간 사람 같았다.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자꾸만 저를 흘끔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눈앞에 보이는 출구로 생각 없이 몸을 움직였다. 8시가 다 되어가는 어둑한 저녁시간 예보에 없던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우산 없는데, 어떡하지. 어디로 가야 하지."
캄캄해진 저녁 무렵 비까지 내리니 하늘은 더욱더 검었다. 눈앞으로 나 있는 거리에도 일찍 문을 닫아 불 꺼진 가게들이 나란히 서 있었으며 작은 가로등 불빛만이 비추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했는지, 어디로 가야만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 해진은 일단 비를 피해야겠다 생각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니 맞은편 편의점 외부 가판대 옆에 '우산 4,000원'이라 크게 써진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일단 저기로 가야겠어."
살짝 뛰어가면 횡단보도가 있었고 거기서 건너면 편의점은 금방이었다. 세차게 내리는 비는 해진의 얼굴을 내려치며 자꾸만 눈앞을 가렸고 가방 안의 반찬통은 저들끼리 부딪히며 덜그럭 소리를 냈다. 보도 앞 그늘막에 서 비를 피하면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렸다. 이미 빗물에 흠뻑 젖어 우스운 골을 하고 있었고 보냉백 안에도 물이 첨벙이고 있었다.
정지를 알리는 빨간 불빛이 금세 초록색을 띠었다. 편의점으로 갈 생각에 걸음을 재촉하던 해진은 그만 왼 손에서 핸드폰을 놓치고 말았다. 턱. 시멘트 바닥 위에 퍽하며 깨지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하얀 보도블록 위에 핸드폰이 엎드려 있었다. 자꾸만 해진 쪽으로 거세게 몰아치는 빗물이 해진의 시야를 더욱 흐리게 했다. 떨어진 핸드폰을 주우려 무릎과 허리를 굽혀 앉았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혀왔다. 온몸의 피가 제멋대로 돌아다니듯 심장이 두근거렸고 굵은 빗소리를 뚫고 나올 만큼 큰 소리를 내었다. 쭈그려 앉아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차량 여러 대의 환한 불빛이 자신을 크게 비추고 있었다.
거대하고 강렬한 불빛은 해진을 한 순간에 압도했고 '팍' 하고 터진 대형 카메라 셔터음이 자신을 세게 찌르는 듯한 느낌에 얼어버리고 말았다. 빗물이 철철 흐르는 아스팔트 도로 위로 그 불빛들이 반사되어 해진을 더욱 강하게 짓눌렀다. 횡단보도의 하얀 블록 선은 점점 희미해지며 그 모양을 잃어갔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사방의 조명이 해진을 향해 쏟아지며 목을 조르는 듯하며 해진의 입과 눈가가 떨리기 시작했다. 보냉 가방을 꽉 쥐고 있던 손 근육마저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온 세상이 물에 잠긴 필름처럼 온통 흔들거렸다.
그 자리에 웅크려 앉은 해진은 시끄러운 경적소리에 귀를 막았다. 이미 빨간불로 바뀌어 버렸지만 물에 잠겨 한참이나 무거워진 가방과 젖은 신발이 제 발목을 잡고 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 성미가 급한 운전자가 창문을 열어 비키라 소리쳤지만 해진에게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횡단보도 건너편에서는 차들의 비정상적인 경적 소리에 밖으로 나와 수군거렸다. 저 사람 어떡해, 어디 아픈 거 아냐? 저러다 사고 나는 거 아냐? 하며 제자리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차량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며 차들은 해진이 있는 작은 한 구역만 피해 쌩쌩 달렸다. 지나가는 차들의 바퀴가 빠르게 구르며 온갖 구정물을 해진에게 튀겼다. 겁에 질린 해진을 보며 한 운전자는 '아줌마, 여기 있으면 다쳐요. 빨리 일어나서 건너가요!' 했지만 인정사정없는 클랙슨 소리에 그 이후의 대화를 이어갈 순 없었다. 건너편에선 위험천만한 장면을 목격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인근 경찰서로 전화를 걸었고, 그 덕에 빠른 시간 내에 경찰이 도착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다행이라며 우산을 들고 걱정 어린 시선으로 현장을 지켜보았고 중년의 경찰 두 명은 해진에게로 뛰어가 우산을 씌우며 어깨를 흔들었다.
"아주머니 괜찮으세요? 여기 있으시면 위험해요. 빨리 일어나세요."
하지만 몸을 파르르 떨며 겁에 질린 해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축축하게 젖은 제 손만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달달 떨고 있었다.
"여기 어딘지 기억나세요? 불편한 데 있으시면 부축해 드릴 테니 어서 일어나서 저쪽으로 가셔야 해요. 여기 있으면 위험합니다."
경찰의 다급한 말에 고개를 들은 해진의 양 볼에는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흐르고 있었다. 해진은 숨을 가쁘게 내몰아 쉬며 말했다.
"여기...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어요. 여기 어디.."
가까스로 뱉은 말과 해진의 호흡이 부조화를 이루며 경찰의 모습이 눈앞에 아득해졌다. 대차게 옆으로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경찰들 역시 시끄러운 소리에 해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는지 큰 소리를 내어 다시 물었다.
"네? 뭐라고요 아주머니? 어디인지 모르시겠어요?"
"...어디...여기 어디예요. 나 어디에 있어요 지.." 아슬아슬하게 말을 이어가던 해진은 그 끝을 내지 못하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눈 두 덩이에 굵게 떨어지는 빗방울의 느낌이 톡톡하고 축축했다. 해진이 쥐고 있던 비닐봉지가 스르르 풀리며 진성을 위한 반찬들이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따뜻하게 담겼던 반찬들은 차가운 도로 위에 널브러지며 온기를 잃어갔다. 차게 식어가는 냄비처럼 해진 역시 기억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정신 차리세요!!!"
길 위에 당황한 경찰 두 명은 잡고 있던 우산을 내팽개쳤다. 쓰러진 해진을 흔들며 인중에 귀를 갖다 대었지만 그 가느다란 숨소리는 들리듯 들리지 않는 듯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경찰들은 재빨리 119 구조 요청을 했고 해진이 정신을 잃지 않도록 계속해서 볼과 어깨를 두드렸다. 10% 밖에 남지 않았던 배터리는 빨간 경고등과 함께 1%를 알렸고 이내 번쩍이다 해진과 함께 그 위에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