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진 환자, 검사란 검사는 모조리 다 해주세요.
가느다란 손목 위에 두 손가락을 대어보니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쏟아지듯 퍼붓는 비를 맞으며 도로 한복판에 쓰러진 해진의 체온이 점점 떨어졌다. 보다 못한 경찰관들은 입고 있던 제복의 겉 외투를 벗어 해진의 몸을 덮어 감쌌다. 늦은 퇴근길, 크고 작은 차들이 미끄러운 빗길을 아슬하게 지나다녀 자칫하면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만약 이 상태에서 해진을 잘못 건드리기라도 하면 상태를 악화시킬까 봐 두려웠던 둘은 말없이 구급차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눈앞이 하얘질 만큼 거센 빗줄기를 뚫고 초록 불빛이 번쩍이며 사이렌 소리가 났다. 마치 때를 기다렸다는 듯 가지런히 줄지어선 차들이 양 옆으로 비켜서며 길을 내어 주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구급차가 이들 앞에 멈춰 섰고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뒷 문이 열렸다. 뒷좌석에 타 있던 구급 대원 한 명이 구급 장비를 몇 챙기더니 환자 이송 침대를 내렸고,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해진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된 상황입니까?" 가슴 쪽 주머니에서 동공 펜 라이트를 꺼내며 구급 대원이 물었다.
"횡단보도 가운데 어떤 아주머니가 쓰러져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습니다. 처음 왔을 때 의식은 있었으나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거듭 말씀하시다가 그 뒤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맥박이 미세하게 떨리기는 하는데..."
"일단 환자분 상태 좀 볼게요."
구급 대원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떡이고는 해진을 살폈다. 눈동자를 크게 벌려 펜 라이트 조명을 비추었으나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외투를 덮고 있어 체온은 그나마 유지된 상태였지만 여전히 손과 발엔 찬기가 돌았고 작은 경련 증세도 있어 보였다.
"우선, 지금 환자분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상황이네요. 맥박도 불규칙적이고, 신체 반응으로 보아 저혈압도 있는 듯합니다. 일단 인근 단월대 응급실로 이송하여 대응하겠습니다."
빠른 손놀림으로 응급조치를 취하고는 몇 가지를 가볍게 체크해 보더니 판단이 섰는지, 서둘러 협조를 요청했다.
"김대원이 환자분 머리와 상체 부분 살짝 들어 받고, 제가 하체 쪽을 담당할 테니 두 분께서는 들 것을 환자분 아래로 밀어 넣어 주세요. 큰 움직임을 줄여야 추가 부상을 막을 수 있으니 조심해 주시고요."
노련한 구급 대원의 지시로 해진은 단번에 들 것 위에 놓여 구급차에 오를 수 있었다.
해진은 언젠가 생각했다. 나이가 들고 몸과 마음이 병들어 간다면 이 하얀 구급차를 타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일말의 준비도 없이, 또 이렇게 느닷없이 이런 형태로 이송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차량 뒷문이 쾅 닫히며 가까운 병원으로 향했다. 심부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져 버린 해진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구급 대원은 손잡이를 잡고 있다가 파래진 해진의 입술을 보고 간이 담요를 겹겹이 쌓아 해진을 감쌌고, 산소마스크를 씌웠다. 투명한 마스크가 습기로 가득했다 사라지길 반복하며 해진의 숨을 붙들었다. 구급차 안에 비치된 심전도 모니터는 흐름만 감지될 정도의 작은 파동만 나타내고 있었다. 구급 대원은 응급 장치들을 조금씩 만지더니 해진의 왼팔을 걷어 불룩해진 핏줄 안으로 주삿바늘을 꼽았다. 좁고 가느다란 혈관을 따라 수액과 진정제가 천천히 들어갔고, 하얗게 질린 해진의 얼굴에 옅게나마 혈색이 돌아오는 듯 보였다.
모든 시야와 소리가 차단되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와중에도 해진은 어딘가로 향하고 있음을 알았다. 서늘한 공기와 몸을 바싹 긴장케 하는 기계 소리가 해진을 꽉 붙잡았다. 흐릿하게 들려오는 소리에도 두려움을 느낀 해진은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지만 움직여지지 않는 상황에 무력감을 느끼며 깊은 골짜기로 떨어지듯 아득한 잠에 빠져들었다.
"네, 차량 2359번, 단월 병원 응급실로 가고 있습니다. 병상 여유 확인했으며 환자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로 빠른 대응 부탁드립니다. 맥박 불규칙하며 혈압 90에 60 유지 중입니다. 5분 내 도착 예정입니다."
구급 대원은 운전석에 타 있는 김대원의 수신호에 맞춰 단월 병원에 상황을 알렸다. 미끌거리는 도로를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산소통과 온갖 응급 도구들이 덜덜거렸지만 아슬한 소리를 내며 자리를 지켰다.
위이잉, 위이잉.
문이 열리며 구급 대원은 고정되어 있던 베드를 풀어 밖으로 내렸고, 마침 병원 안에서도 간호사와 레지던트쯤으로 보이는 의사 하나가 스트레처를 밀며 달려오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의학 용어를 저들끼리 몇 마디 주고받고는 덜컥이는 스트레처 위에 해진을 실었다. 응급실 안으로 뛰어들어서며 닫혀있던 커튼을 홱 젖혔다. 순식간에 해진의 오른 검지 손가락엔 혈중산소센서가 부착되었고, 바늘 카테터로는 또 다른 약물이 주입되며 링거 폴대가 가득 찼다.
"환자분, 환자분. 제 목소리 들리시나요?" 간호사가 해진의 어깨를 흔들며 의식을 확인했다.
하지만 흔들림만 있을 뿐 손길이 느껴질 리 없는 해진은 묵묵부답이었다. 환자의 신원을 알 수 없어 답답했던 간호사는 구급 대원이 전해준 가방을 뒤적였고 핸드폰을 꺼내었다. 데스크에 구비해 둔 보조 배터리를 연결해 전원을 켰고, 해진의 엄지를 살짝 대어 열었다. 그리고는 최근 연락처 목록에서 가장 위에 있는 사람에게 통화 연결을 시도했다.
'막내아들, 진성'
앞서나간 마음과는 다르게 느릿한 신호가 갑갑한 간호사는 덥수룩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씩씩댔다. 반응이 없어 전화를 끄려는 찰나 툭하는 소리와 함께 진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네 혹시 진성님이신가요?"
"네 그런데요, 누구세요?" 해진의 번호로 들려오는 낯선 여자의 목소리에 진성은 경계를 보였다.
"어머님이신 것 같은데 최근 통화 목록에 있어 연락드렸어요. 지금 어머님께서 단월 사거리 횡단보도에 쓰러져계시다가 지금 응급실로 이송되셨습니다. 의식이 없는 상태세요."
"네? 엄마가요? 쓰러졌다고요? 교통사고 나신 건가요? 많이 다치셨나요? 수술해야 하는 상황인가요?" 다급한 진성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넘어 병원까지 닿았다. 간호사는 이에 익숙하다는 듯 귀에서 전화기를 살짝 때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정확한 것은 검사를 해 봐야 아는 상황입니다. 지금 말씀드리긴 어렵고, 일단 환자분 성함과 나이 그리고 평소 지병 여부 알고 계시는 거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이해진이고, 65세입니다. 저혈압이 조금 있으시긴 한데 큰 문제는 없으셨고, 지병도 딱히 없으세요. 복용 중인 약은... 최근에 어떤지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일단 지금 바로 병원으로 가겠습니다."
진성은 핸드폰을 받치고 있던 손을 파르르 떨며 반대 손으로 차 키를 들었다.
"네. 1층 응급실 안쪽으로 오시면 되세요. 일단 지금 상황으로 보아 추가 검사를 진행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동의하시나요?"
"그냥 일단 필요한 건, 아니 검사란 검사는 싹 다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동의하신 걸로 알고, 병원 오셔서 선생님과 말씀 나누시죠."
하얀 바닥과 천장으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 베드 위가 환자들의 신음 소리로 뒤덮였다. 들어본 적 없는 날카로운 기계음의 크기와 링거 폴대에 주렁주렁 달린 약물의 수가 환자의 상태를 대변하는 듯했다. 악을 쓰며 고함을 지르는 환자들로 혼이 쏙 빠진 의사들은 연신 한숨을 내 쉬었고 이들의 발소리는 밤이 늦도록 쉬어갈 줄을 몰랐다. 병원 안을 가득 채운 소리가 해진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지며 더욱더 고요한 잠에 들었다.
빗물에 젖은 검정 구두가 철퍽거리며 단월 병원을 깨웠다. 제맛대로 삐져나와 흐트러진 와이셔츠에 구김 가득한 정장 차림의 진성이었다.
"여..여기 응급실! 응급실 어딘가요?" 거친 숨을 내쉬어 발음이 뭉개졌지만 급박한 진성의 손짓을 얼추 알아들은 안내 데스크 직원이 이를 눈치채고 팔을 뻗어 화살표를 가리켰다.
"여기 이해진씨 입원했다고 해서 왔는데요, 어디로 가야 하나요?" 마침 전화를 받았던 간호사가 '아'하는 표정으로 진성을 해진이 있는 쪽으로 데려갔다.
"이쪽입니다. 아까 전화 통화로 말씀드렸듯이 기본 채혈, 심전도 검사, CT는 찍었어요. 환자분 지병은 없으시다고 했지만 경찰 소견으로 인지 기능 혹은 기억력 저하가 있으신 것 같아 추가 검사까지 진행했고요." 절차상 상황을 알려야 하는 간호사는 무심하게 차트에 동그라미 표시를 거듭하며 진성에게 말했다.
"네, 다 해주세요. 쓰러지시면서 머리 다치신 건 아닌지 걱정되는데, MRI도 찍어 봐주세요."
"MRI는 30분 정도 후에 찍을 수 있어서 잠깐 대기하셔야 하고요. 뇌기능 저하가 조금 의심돼서 MRI 하면서 뇌영상 및 신경 심리검사 같이 진행될 거예요."
"네, 해주세요. 싹 다요." 베드에 누워 창백해진 해진을 보며 진성은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듯 울먹거렸다.
"다행히도 맥박이랑 혈압은 정상 수치에 가까워졌고 안정제 투여한 상황이라 괜찮으실 거예요. 혹시나 환자분 깨어나시면 바로 알려주세요."
진성은 차가워진 해진의 손을 쓰다듬었다. 핏기 없이 하얘진 손등 위로 짙은 주름이 늘어 있었다. 손가락 마디 사이로 딱딱하게 잡힌 굳은살이 해진의 세월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이를 어루만지던 진성은 아까 전의 전화에 괜시리 죄책감이 들었다. 꾹 참아왔던 눈물이 쥐도 새도 모르게 흘러나왔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편안해 보이는 해진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근래 들어 불면증이 잦았다고 했던 해진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곤히 잠들기를 바라며 잡았던 손을 이불속으로 넣어 꼭 덮어주었다.
해진의 연약한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옆자리를 지키고 섰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이.. 이해진! 이해진이라는 사람 어디에 있습니까!" 잔뜩 겁에 질린 상호와 윤주였다. 마스카라와 파운데이션이 죄다 뭉개진 상태로 눈물 바람을 한 윤주 역시 어쩔 줄 몰라 손을 벌벌 떨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상호의 옷자락을 붙잡고 두리번거리던 윤주는 안쪽에 앉아있던 진성과 눈이 마주쳤다. 진성은 벌떡 일어나 엉거주춤 뛰어오는 상호를 껴안았고 윤주 역시 끌어안았다. 일그러진 입모양과 멈추지 않는 눈물이 이들 일가의 절망적인 하루를 나타냈다.
하도 손이 떨려 운전대를 잡지 못하겠다던 상호는 연락을 받자마자 집에서 뛰쳐나왔다. 미처 챙겨 신지도 못한 신발 한 짝은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알 수 없었고, 추리닝 바지 끝단은 흙탕물에 젖어 축 늘어져 있었다. 외부 일정이 있어 근처에 들렀던 윤주 역시 진성의 전화를 받고 소리를 지르며 택시에 올라탔다. 여태까지 받아본 적 없는 가장 충격적인 소식에 셋은 혼비백산하며 한 자리에 모여들었다. 해진을 둘러싸고 눈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이들은 불안함에 자꾸만 다리를 떨었다.
자정 즈음일까, 은색 테두리 안경에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하나가 해진 쪽으로 걸어왔다. 담당 간호사가 의사에게 차트를 들이밀고 좀 전의 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가벼워 보이지 않는 표정에 묵직한 걸음으로 뒷짐을 지고 걸어오던 의사는 이들 앞에 서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이해진 환자분 보호자 되시죠? 저는 신경과 교수 정찬우입니다. 우선 우리 송간호사가 말씀드렸듯 기본적인 거 말고도 추가 검사를 진행했고, 자세한 결과는 다음날 알 수 있겠지만..."
기본 검사가 아니라 추가 검사까지 진행했다는 말에 윤주와 상호의 눈은 동시에 진성으로 향했고 당황한 이들의 상황을 빠르게 간파한 의사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정확한 검사 결과로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지만 송간호사께 계속 물어보신다고 하셔서 직접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이해진 환자분, 뇌에 이상 소견이 발견되었습니다. 신경 세포 손상도 꽤 진행된 것 같고요." 의사는 쓸데없는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신경의 손상, 그것도 뇌신경의 손상. 단단하게 얼어붙은 얼음에 큰 충격으로 균열이 생기듯 끈끈하게 달라붙은 이들의 믿음에 찌거덕하며 굵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수만 가지 질병 중 뇌 손상으로 미루어볼 만한 병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절망적인 소식은 우레와 같은 천둥 번개와 함께 몰아치며 이들 세상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무너진 더미 속에 옴짝달싹 못하며 멍한 표정만 짓고 있던 이들은 말없이 해진만 바라보았다. 해진이, 해진의 기억이, 해진과의 추억이 사라져 간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