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아버지를 만나다

by 모티


고등학생 시절, 공부가 잘되지 않으면 문고판 책이 많았던 아버지의 서가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책이나 뽑아 뒤적이는 버릇이 있었다. 어떤 책을 읽어볼까 하고 눈을 감고 손으로 훑다 보면 그날의 느낌에 꽂히는 책들이 하나씩 걸려들었다. 책을 꺼내어 아버지의 의자에 올라앉으면 그때서부터 그 속의 세상으로 푹 빠져들었다.


빛바랜 까만 가죽 의자에 앉으면 낡은 가죽 부스러기들이 흘러가는 시간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낡은 책 냄새가 진득이 배어있는 서재 안에는 늘 따스한 햇살이 들이쳤고, 창 너머로 살랑이는 울창한 나무가 여유로움을 한층 더해주었다. 짜증과 불안, 걱정과 혼돈 속에서 허우적대다가도 그의 서재로 발을 들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아버지가 곁에 있는 듯한 기분 때문일까, 아니면 그를 향한 깊은 그리움이 이들을 이겨서일까.


아버지는 항상 내게 말씀하셨다. 언제나 책 속에 답이 있다고. 어린 나는 그 시절 무겁고 두꺼운, 그리고 어려운 말이 잔뜩 늘어진 책을 읽어야만 하는 것이 늘 싫었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 항상 입을 삐죽이게 만들었다. 언젠가 하던 일이 맘대로 되지 않아 씩씩대며 아버지한테 달려갔던 날엔, 따스한 포옹 대신 내 품 안에 한 권의 책을 안겨주셨다.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그런 아버지가 미웠던 만큼 그가 건넨 책 역시 한쪽에서 켜켜이 쌓여만 가고 있었다.






첫 문장 출처: 청춘의 독서 / 유시민

"당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살포시 두고 가시면, 이어가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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