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텅구리 아빠

by 모티


아빠는 멍텅구리입니다.


유미의 구겨진 일기장을 몰래 들추어보다 눈에 걸린 문장이었다. 한글을 다 떼지도 못한 유미가 삐뚤빼뚤 그것도 꾹 눌러 제대로 쓴 문장이 하필 멍텅구리라니. 좀처럼 마음을 알 수 없는 글자 옆에 선명히 새겨진 보라색 '참 잘했어요' 도장이 은근히 신경을 긁는다. 쳇, 뭐가 문제야 대체.


아빠 소리에 껌뻑 죽던 어린 유미는 여섯 살이 되었고, 나의 똥고집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아무리 성격이 형성될 나이라고 하지만 꺾으래야 꺾을 수 없는 단단한 고집불퉁이다.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유미 엄마는 신세대답게 유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패셔너블하게 꾸몄는데, 이 무렵 유미와 '스타일'에 관해 자주 충돌이 일곤 했다. 도트무늬 가디건에 흰색 프릴 스커트, 그레이 타이즈에 메리제인 슈즈를 들이미는 유미 엄마라면, 유미는 도트무늬 가디건에 내복 바지를 입고 양말을 힘껏 끌어올려 신곤 했다.


아기자기하게 꾸민 유미의 사진을 SNS에 올려야 하는 유미 엄마는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화를 덜컥 덜컥 냈고, 그럴 때마다 유미는 악을 쓰며 바닥에 드러눕곤 했다. 도대체 넌 누굴 닮아 이러냐고 핀잔을 줄 때마다 뒤통수가 따가웠지만 이 전쟁통에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유미 엄마의 편에 서는 것이 유일했다. 서러움에 닭똥 같은 눈물을 짜내는 유미에게 귓속말로 '엄마 말을 잘 들으면, 아빠가 이따가 재미있는 거 해줄게'하며 속삭였다. 그러면 유미는 넘어갈 듯 헐떡이던 숨을 멈추어 쉬며 고분고분 영락없는 아이가 되었다.


나와 유미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유미를 만난 건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유일무이한 행복과도 같았다. 그 사건이 있기 전 까지는.






첫 문장 출처: 가시고기 / 조창인

"당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살포시 두고 가시면, 이어가보려 합니다."

#가시고기 #조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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