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예감은 결국 현실로 닥쳐왔다.
정말 이대로 내 곁을 떠나버릴까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토록 좋아하던 소고기 캔과 오리고기도 입에 대지 않았다. 며칠 째 밥을 먹지 않아 비쩍 곯은 모습에 나의 마음 역시 바싹 메말라만 갔다. 밥심으로 버텨야 한다는 어른들 말에 어떻게 해서든 밥을 먹여야만 할 것 같았다. 혹시나 씹는 것조차 힘들까 봐, 말없이 밥그릇을 들어 사료를 잘게 부수고 물에 불렸다. 좋아하는 소고기 캔과 간식도 올렸다. 온몸을 찌르는 듯한 고통스러운 통증에 한 껏 예민해져 내 손가락을 무는 한이 있더라도 밥을 먹이려는 집념으로 한 움큼 집어 입가에 갖다 댔다.
하지만 코코는 고갯짓 한번 하지 않았다. 사경을 헤매는 와중에도 제 주인이라는 건 끔찍이 알았는지 물기는커녕 안쓰러운 웃음만 보였다. 냄새로 세상을 탐색하는 까맣고 촉촉한 코는 빛을 잃어가며 말라있었다. 그래도 주인의 노력을 가상히 여기는지 콧구멍을 애써 움직여 보였다. 말할 수 없는 아픔과 미안함을 축축한 눈가로 대신했고, 그 눈길은 계속해서 젖어만 가며 지워지지 않는 깊은 자국을 내었다.
조금이라도 먹자, 조금만 먹자 제발 코코야.
네가 좋아하는 소고기와 참치캔도 있고 오리고기 간식도 얼마든지 줄 수 있는데.
먹고 싶다고 얘기하면 엄마가 다 줄 수 있는데, 왜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축 늘어져 누워만 있어, 속상하게.
입 밖으로 차마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가족이 되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서로의 가장 애틋한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아픔은 곧 코코의 아픔이었고, 그의 아픔은 곧 내 전부가 무너져 내려가는 것과 같은 슬픔이었다. 혹여나 속상함을 내비친 표정과 말투가 코코의 마음을 건드리는 날엔, 나의 진실된 마음이 오히려 그를 더욱 아프게 하는 것만 같아 표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원치 않는 때가 가까워질수록 이성의 끈은 심하게 출렁이며 불안이 점점 드리워져 갔고, 이를 달랠 방법 따위는 찾을 수 없어 보였다.
엄마 그만 속 썩이자, 잘 먹어야 힘나지.
엄마가 우리 코코 좋아하는 산책도 더 자주 시켜줄 거고 좋은데 더 많이 데려갈게.
얼른 일어나서 엄마랑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여행도 가자. 엄마가 꼭 안 아프게 낫게 해 줄게.
가느다란 목소리 속 잔잔한 떨림을 느꼈는지, 그는 바닥에 축 늘어져 있으면서도 눈을 위로 올려다 뜨며 나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숨을 쌕쌕이며 잔기침을 했고, 아슬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반복했다.
코코를 만난 건 약 5년 전, 동네 푸름 동물병원에서였다.
치열하게 몸을 던져야만 성공할 수 있었던 대학 입시에의 실패로 삶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여겼다. 3-5등급 사이를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하는 별 볼 일 없는 성적으로 시험을 치러야만 했다. 죽도록 해도 나오지 않는 성적에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돌았지만, 우습게도 비슷한 수준의 지연이가 있어 쓸데없이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엇비슷한 성적으로 줄타기를 했던 지연이는 수능 당일 찍신이 강림한 덕에 평소 성적보다 2등급이나 높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야, 대박 나 붙었어! 정시 합격했대!
그 덕에 지연이는 그리 가기 어렵다던 서울권 대학 '정시' 전형에 보란 듯이 합격했고 난 마지못해 소리 없는 박수를 쳐야만 했다. 가장 가까이서 붙어 다녔던 친구의 좋은 결과를 축하할 수 없었다. 아니, 축하하기 싫었다. 왜 나에게는 이런 운이 없냐며 화가 치밀었고, 저 자식도 나랑 비슷했는데 저렇게 성적이 잘 나온 건 모두 다 운빨이라며 동네방네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소리를 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남은 것은 입학을 앞두고 있는 지연이와 또다시 지독한 재수 생활을 견뎌야 하는 처량한 나 밖에는. 씁쓸한 표정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쟤 진짜 대박이라며, 축하의 말들이 나돌았고 한 순간의 무대의 주인공이 된 지연이 뒤에 나는 검은 그림자가 될 뿐이었다. 비겁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 애써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리며 지연이에게 향했다.
지연아, 이번에 소식 들었어. 진짜 축하해. 대박이다.
가식적인 호들갑과 억지스러운 웃음으로 겨우 짜낸 말이었다.
야, 진짜 고마워.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나도 신기할 정도라니깐.
그러게.. 축하해. 나도 이번에 같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좋겠다. 부러워.
뭐래. 나도 운빨이지 뭐. 그래도 야, 솔직히 합격하니까 좋긴 좋다 진짜. 너도 내년엔 꼭 될 거야~
그래야지, 공부 머리도 없는데 그만하고 싶다 진짜 ㅎㅎ 대학 가더라도 자주 연락하자.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나 수업 끝나고 맨날 부른다. 나와서 떡볶이 먹고 또 만화방 가고 그러자.
그래. 꼭 그러자! 다시 한번 축하해.
환희에 찬 지연이의 목소리는 나의 가슴을 더욱 후벼 팠다. 보이지 않는 상처는 동급생들의 입학 소식이 들릴 때면 아물 줄 모르고 더 깊게 파여갔다. 고등학교 3학년을 지나 다시 재수 1학년으로 입학하는 기분은 새롭고 신선하기보단 실패의 낙인이 찍히는 공장의 부품짝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첫 문장 출처: 급류 / 정대건
"당신이 오늘 읽은 첫 문장은 무엇인가요? 살포시 두고 가시면, 이어가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