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머리카락을 인정하다
안방과 거실을 오가는 벽 아래쪽에 콘센트가 하나 있고, 그곳에 휴대전화 충전기가 꽂혀있다. 내 휴대전화는 항상 거실 바닥에 놓여 충전된다.
잠깐의 기억을 유추해도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깜빡 잊는 경우가 있다. 사십 분이 넘게 찾아다니고 나서야 휴대전화는 어느 날 냉장고의 냉장실에서 발견되거나 화장대 서랍 안 아이펜슬과 함께 나란히 놓여 있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을 때 항상 거실 바닥에 둔다. 집안에서 휴대전화를 잊지 않고 잘 챙길 수 있는 적당한 장소라 생각했다.
아침을 먹은 후 식탁에 앉아 잘게 깎은 단감을 아삭아삭 씹고 있는데 문자 알림음이 들린다. 느릿하게 일어나 휴대전화로 향했다. 쭈그려 앉아서 충전 중인 휴대전화를 바라보는데, 오트밀 색 거실 바닥에 하얀 실 같은 것이 보인 듯하다.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갸우뚱하며 눈을 가늘게 뜨니 잠깐 뭔가 반짝인 것도 같다. 뭐지? 무심하게 손가락으로 집으니 이십 센티미터 정도의 흰 머리카락이다. 검정을 하나도 혼합하지 않은 완벽한 은빛. 내 머리카락이다.
깨끗한 옷차림과 단정한 머리는 타인과의 관계형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사회생활에서 기본예절에는 머리 염색도 포함되었다.
삼십 대에도 새치는 종종 보였다. 그때는 족집게로 살살 뽑기도 했다. 사십 대가 되니 두 달에 한 번은 새치 염색을 해야 했다. 이제는 새치도 아니고 노화의 과정으로 생긴 흰 머리카락도 많다.
자유지상주의자는 아니지만, 인생의 중반을 넘어서니 타인의 시선뿐 아니라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현실에서 내 몸의 자유의지의 최종은 머리 염색이었다. 염색을 포기하면 진짜 자유의 몸이 될 것 같았다. 홀로, 곧게, 오롯이, 우뚝. 뭐 그런 생각이 있었다.
단발머리를 유지하며 머리 염색을 안 한지 두 해가 지났다. 그간 머리카락 한 가닥에 검정과 하양이 항상 공존했다. 검정과 하양이 섞여 있을 때는 하얀색이 두드러져 보는데 검은색이 사라지니 머리카락은 은빛이 된다.
그래서 어느 시에서 '은빛 머리의 노신사'라는 표현을 썼구나.
"머리 염색 좀 해. 머리가 그게 뭐니!"
"흰머리 너무 많아, 염색 왜 안 하는데!"
그간 무수한 타인의 비난과 질책, 멸시를 들었다.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타인은 참 부당한 간섭을 한다.
오늘 은빛 머리카락을 보니 기분이 몽글몽글하다. 내가 원하는 자유가 내 안에 머문다.
흰머리를 인정하니 온전한 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