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를 상상하다
수필은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을 생각나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 하였다.
어느 날 나의 일상을 그려본다. 아침에 눈 뜨고 다시 잠들기까지의 하루. 반복되는 그 시간을 어떻게, 무엇을 하며 보낼 것인가. 지금 나는 중년에서 노년으로 걸어가고 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지역으로 이사하고 일을 그만두었다. 멀리 지방으로 이사 와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업무를 의뢰하는 사람과 나는 안다. 일은 대면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컴퓨터나 노트북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는다. 상대는 뻔한 핑계로 보이니 양해바란 다며 거듭 부탁한다. 이번에 승인하면 삼 년 이상은 계속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또 돈 욕심이 내 안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히며 일의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돈을 버는 것은 몸을 쓰는 일이든 아니든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경력이 쌓여 익숙한 일이라도 남의 돈을 받아 내 주머니에 넣으려면 그 돈의 크기만큼 마음의 수고를 해야 한다. 시간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살기 싫었다.
"하루 종일 뭐 할 건데? 심심하지 않겠어?"
타인은 나를 모른다. 나는 혼자 아주 잘 노는 사람이다.
아침에 일어나고 싶을 때 침대에서 일어난다. 가지런히 깎은 사과 반쪽이나 단감 하나, 아몬드 여섯 개와 요플레, 이따금 오이나 데친 브로콜리.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아무 시간이나 생각나면 먹는다.
필사하는 것을 좋아한다. 책장에 있는 단편 소설집 중 하나를 꺼내 느리게 읽으며 따라 쓴다. 해가 머리 위에 있을 때 커피를 담은 텀블러, 얇은 수필 한 권, 손수건. 그것들을 작은 손가방에 넣어 산책을 나간다. 공원을 걷다가 나무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하늘과 나무, 그저 지나가는 사람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눈부시게 빛나던 주홍의 해가 산 너머로 숨기 전에 집으로 향한다. 돌아오는 길. 작은 도서관에 들러 미리 신청한 책을 받아오거나, 어느 날은 슈퍼마켓에서 저녁 찬거리로 정한 두부나 감자 등을 산다. 이미 냉장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 머릿속 지도가 훤하니 필요한 것만 가볍게 들고 온다.
돈을 새롭게 벌지 않으니 생활은 단순하고 검소해야 한다. 독서와 산책, 필사를 할 것이고 가끔 일기나 글을 쓰는 생활일 것이다.
지금 그대로 노년으로 가는 일상을 꿈꾼다.
가급적 천천히 고요하게, 나를 위한 삶.
내가 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