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청소기를 돌리다가
청소기로 안방과 거실을 슥슥 밀고 다녔다. 삼사 일이 지난 이쯤에서 한 번 바닥 먼지를 쓸어 담아야 할 것 같은 스스로의 묘한 압박. 아무도 뭐라 하지 않지만.
어떤 장면이 떠오른다. 얼마나 오래전 기억인지 가늠할 수 없지만, 무심코 텔레비전 프로그램 채널을 돌리다 멈췄다. 인간극장과 비슷한 류의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 기록을 보여주는 방송이었다. 평범이 맞았을까.
화장실 하나의 16평 정도의 아파트에 다 자란 어른인 딸과 아들, 손자 한 명을 포함하여 네 식구가 사는 중년 어머니의 삶. 그 당시에 나는 그분을 할머니라고 인지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현재 나와 비슷한 연배가 아니었을까 예상한다.
세세한 내용과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일찍 결혼하여 출가했던 딸이 유치원생 남자아이 하나를 데리고 다시 본가 집으로 들어와 살고, 이십 대 후반의 아들은 낮에도 집에 있었다. 경제활동을 하여 돈을 버는 일은 딱 한 사람, 그 어머니만의 담당이었다. 어머니는 자식과 손자의 식사 준비뿐 아니라 모든 살림살이, 생계를 책임지셨다.
"그럼, 어떡해요. 나라도 벌어야지요."
고단한 일상이었지만 어머니는 자식들과 함께 사는 삶을 그저 미약한 등불 하나를 밝히며 지켰다. 방송은 갑자기 어머니의 죽음 이후 한 달이 지난날의 촬영분을 보여준다. 아마 몸이 아픈 분의 생활을 보여주었던 것 같다.
내가 충격받은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여전히 집안에 머물던 아들의 무심한 말이었다. 불편한 점이 무엇인지 묻는 카메라맨의 질문에.
"화장실이 너무 더러워요. 이상해요. 어머니가 화장실 청소를 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나는 그 장면에서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 화면을 껐다. 일을 끝마치고 저녁 찬거리를 사서 집에 도착해 다급하게 화장실에 들어선 그 어머니. 문을 닫고 간단한 볼일을 보며 화장실에 잠시 머물 때조차 매번 청소를 하는 모습이 시커먼 모니터에 비친다.
가슴이 훅 뜨거워지며 안타깝고 씁쓸했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가정을 이루어 살면, 아니 누군가와 함께 사는 생활은 내가 혼자 사는 일상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정리와 청소가 필요하다.
내가 하지 않았는데 화장실이 깨끗하고 방바닥에 나뒹구는 머리카락이 없고, 옷과 침구가 정돈되어 있는 것은 다른 이의 손품이 부지런하게 수고하고 봉사했기 때문이다.
청소기를 돌리다 말고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그래서 대놓고 게으르다.
우렁각시가 되는 것은 내가 사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