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곧 올 것이다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보인다.
아파트에 심어놓은 겨울나무 끝, 폭 좁은 대리석 상판 길을 우아하게 밟는다. 긴 다리를 유연하게 거느리는 그 모습은 봄을 기다리는 설레는 풍경이 된다.
문득 고양이가 검은솜뭉치처럼 몸을 웅크리고 앉아 어느 곳을 응시한다. 나의 무심한 눈길도 고양이를 따라 가만히 향한다.
곱슬곱슬한 털이 돌돌 말린 강아지가 목줄을 매고 남자 주인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하얀 푸들은 솜이 든 뽀송한 핑크색 겉옷을 입고 있다. 이 아이는 목줄을 매고 있지만 언뜻 보면 자기가 주인인 듯하다. 걷는 길이 아닌 영산홍과 쥐똥나무 사이를 푸들이 헤집고 들어가도 남자는 자신 쪽으로 강아지를 잡아끌지 않고 그 뒤를 조용히 따른다. 강아지와 남자는 평화롭고 안온한 분위기를 풍긴다.
길고양이는 행복이란 단어를 떠올렸을까?
누가 더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가. 고양이는 목줄 없이 자유롭게 어디든 갈 수 있다. 강아지는 목줄을 하고 있지만 주인과 가고 싶은 곳을 함께 동행한다.
고양이가 보호라는 인연의 끈을 보고 부러운 눈빛으로 강아지를 바라보았는지, 목줄에 매어 있는 모습을 보고 가여운 측은함으로 바라보았는지 나는 모른다. 바깥세상은 아무것도 모른다. 단지 바라보는 행위 자체로 속마음을 알 수 없다. 부러운 감정과 불쌍한 감정은 겉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진실은 깊어서 알 수 없다.
어머니는 생의 마지막에 오십여 년 전 이미 세상을 떠난 자신의 친오빠를 망상(妄想)에서 만났다. 그리고 애원하듯 말했다.
"오빠, 나 부잣집에 시집보내줘."
어머니가 행복하지 않았다고, 내가 팔십 해의 긴 이야기의 끝을 마무리하는 것은 오만인가.
행복에 크게 기여하는 것은 부와 물질적인 풍요, 건강이다. 잠시 잠깐의 토막 난 웃음들은 행복에 못내 미치지 않는 것인가.
어수선한 유예한 생각이 고요한 일상을 나지막이 흔든다.
연륜이나 정신적 성숙은 진실과 사실조차 구분하지 못한다. 이 세상에는 허망한 것이 너무 많아 기대나 소망은 무용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봄을 그윽이 바라본다. 봄은 곧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