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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창환 Nov 14. 2019

19. 쿠웨이트, 쿠웨이트 시티 (1)


[ 쿠웨이트, 쿠웨이트 시티 ]



쿠웨이트... 이라크 옆에 위치한 이 나라는 아랍 어느 나라마다 다 특색이 있는 것처럼 고유의 특징이 있었다. 쿠웨이트 시티는 전 세계  금융권의 비밀스러운 돈이 모이는 나라이며 산유국으로써 쌓인 부를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을 때 쿠웨이트는 서구권의 금융 회사를 불러오는데 주의를 기울였다. 아랍권의 창구 역할을 자임하던 계획에 따라 세계 각 국의 투자 은행들은 이곳에 아랍 지부를 두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쿠웨이트에서는 달러와 유럽 경제에 대한 얘기가 아침에 마시는 커피 타임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시민들의 지갑에서도 달러화와 유로화가 같이 들어 있었다. 심지어 유럽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승리팀이 따라 도박이 벌어질 정도였다. 정서적으로 쿠웨이트는 서구권과 가장 밀접한 나라에 속했고 또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고민이 많은 표정이군."


알 하비브는 동료의 표정을 보며 상쾌했던 기분이 사라졌다. 압둘 바자르 모하비. 그의 동료는 아침 커피와 함께 보고 있던 월 스트리트 아랍어 번역판을 거칠게 테이블에 내버려 둔 상태였다. 이마를 문지르며 두통을 잠재우던 모하비는 말하기도 귀찮은 듯 턱으로 신문을 가리켰다. 하비브는 입가에 머물던 미소를 지우고 신문을 훑어봤다.


'유럽 연합, 14개국의 합류 확정.'


"이건 이미 예견된 상황이지 않은가? 모하비, 왜 이게 자네를 거슬리게 한 건가?"

"그렇지. 이것만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지. 기사 말미에 있을 거네. 각 나라에서 폭동 비슷한 게 일어나고 있다고."

"... 부정 때문이지."


표면적인 이유는 부정에 의한 국가 재정 낭비다. 하지만 그런 부정은 어느 나라에나 다 존재했다. EU에 편입되는 나라의 국민들이 들불처럼 일어난 이유는 화폐 절상 때문이었다. 예산 책정 기준과 가치가 자국 화폐에서 유로화로 이동하며 변경된다. 국가 간 화폐를 통일하기 위한 유로화로의 변경은 할 때마다 크고 작은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번 같은 경우는 독자적인 경제 규모를 감당하기 힘든 동유럽 국가들이 EU와의 끈질긴 협상 끝에 가입이 승인되면서 불거진 경우였다.


이른바 '실패한 국가'로 일컬어지던 독립국가연합이 러시아 대신 EU를 경제적 파트너로 삼고 EU의 경제 우산 속에 속하는 조건 대신  제시된 기준이 유로화 전환이었다. EU 측에선 독립국가연합에 뿌리 내려져 있던 러시아의 경제적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우회 책이었으나 이는 동시에 독립국가연합이 지니고 있던 문제들도 한꺼번에 수면 위로 끄집어낸 셈이나 다름없었다. 소련의 지배 속에 있던 나라들이 권력의 독식과 부의 편중이라는 제국의 병을 답습하고 있었다는 것이 만천하에 알려졌으니 아이러니하기만 했다.


"글쎄,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게 있나?"

"이번 협약국 중엔 알바니아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지."

"허, 그래? 총리가 드디어 결정을 내렸나 보군."


작은 쿠웨이트는 아랍권에서는 각 국의 교두보로, 세계적으로는 적지만 끈끈한 종교 네트워크를 구축하려 했다. 알바니아는 종교적으로 맺어진 친교 국가였다. 알바니아도 얼마 안 되는 외교적 채널을 보유하고 있었고 제조업이 약하고 농업에 많이 의존했다. 때문에 경제적으로 외국의 노동 시장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국가는 정체되어 있었다. 종교적으로 가까웠으나 실질적으로는 교역이 별로 없던 두 나라 사이는 유럽의 재정 위기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버블 경제의 끄트머리에서 터진 부채 청산 사태로 EU 각 국이 긴축 재정으로 운영되면서 알바니아인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고 쿠웨이트와 산유국들은 국제 노동 시장에서 이들을 싼 값에 유혹할 수 있었다. 특이하지만 자국민의 60%가 자국이 아닌 해외에서 일자리를 얻고 있는 알바니아만이 맺을 수 있는 특수한 관계였다.


"단일 시장이 구축되면 경제적 축이 어디로 행하겠나? 이걸 준비하려고 협약 전부터 총리가 1년여간 다른 나라를 얼마나 방문하고 다녔는지는 잘 알겠지."

"알바니아나 다른 나라들에겐 도약의 기회일 수밖에 없잖은가? 벌써 출국장엔 유럽 본토로 돌아가려는 가족들이 즐비하지."

"우린 아직 이들이 필요하네. 세우고 키워야 하며 돌려야 할 것들이 아직도 많은데..."

"산업부 차관답군."

"내가 왜 이러는지는 잘 알고 있잖은가."


쿠웨이트를 위시한 산유국들은 최근에 아프리카 전 국토를 위시하는 거대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에코 프로젝트'라 명명된 이 프로젝트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하라 사막 등 아프리카 국토의 반을 넘게 차지하는 사막을 숲으로 바꾸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계획은 누구나 세울 수 있지만 그것을 실행하려면 신의 의지를 꺾을만한 답변을 준비해야 했다. 사막엔 물이 없다. 2000년대까지 지속된 모든 녹지화 계획은 자연을 이길 수 없었고 갈수록 사막은 넓어져 갔다. 이미 중앙아프리카 지역은 사하라 사막에 의해 많이 침식당한 상태였고 넓어진 만큼 사막에 침식당하는 속도도 빨라져 갔다.


UNEP에서는 교토 의정서만큼이나 아프리카의 사막화가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었지만 서방 세계는 사막화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산성비나 온난화엔 그럭저럭 노력을 기울였으나 언제나 가난했던 아프리카에서 사막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자연현상의 한 부분처럼 당연한 거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결국 행동에 나선건 아프리카에 붙어있는 중동 아랍국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부유했던 산유국들이 먼저 나섰다. UNEP에서는 항상 아프리카 지역의 문제에 미국이나 유럽이 나서길 바라면서 돈 많은 산유국들은 가만있는지 묻는 나라가 많았다. 에코 프로젝트는 그런 물음에 대한 공동의 답이었다.


에코 프로젝트의 착안은 신의 섭리에 대한 답변을 꺼내는 식으로 시작되었다. 사막에 주어지지 않은 물을 만들어 낸다. 이미 중동 지방에서 없는 물을 만들기 위한 담수화 시설은 차고 넘쳤다. 아부다비나 쿠웨이트와 같은 도시지역에서는 냉수, 온수, 얼음은 유럽 어느 가정처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공유 자원이었다. 1970년대부터 산유국은 넘쳐나는 기름만큼이나 물을 넘쳐나게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당연히 에코 프로젝트라고 명명된 이 계획도 역사 속에서 수많은 다른 이름으로 행해졌고 그럴 때마다 점점 규모가 커져서 지금에 이르렀다. 각각의 제후국으로 뭉쳐 있었지만 서로 분리되어 있었던 중동은 에코 프로젝트로써 점점 뭉치기 시작했다. 페르시아 제국을 꿈꾸던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과거의 유산을 간직하고 있었고 서구의 위기를 보며 평형추의 무게를 다시 맞추려는 시도를 꾸준히 세웠다.


에코 프로젝트는 그런 의지의 발현이기도 했다. 각각의 목적은 달랐으나 하나는 같았고 자신들의 땅을 풍요롭게 하고 그 땅을 다시 가꾼다는 건 사막에서 태어나 죽는 중동 사람들의 꿈이었다. 사막은 그들에겐 고향이었고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바람과 모래의 섭리에 귀의하며 유목했던 터전이었지만 그 섭리에 사막 위에 세운 도시를 빼앗길 수는 없었다. 바다에 인공섬을 세우고 사막을 피해봤자 결국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지는 마침내 한 자리에서 물밀듯이 터졌고 합쳐졌다. 에코 프로젝트를 처음으로 논의했던 이곳 쿠웨이트에서 산업부 차관으로 그 회의에 참여했던 모하비는 나시르 알 사함 아랍 연합의회장이 제창했던 이 프로젝트의 당위성에 대한 연설을 했을 때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회의실은 현대적인 호텔에 있었지만 그들은 사막의 밤에 유목하던 대상단의 가문 대표처럼 한자리에 모였고 사막을 숲으로 만들 수 있는 당위성을 찾으면서 흥분해 밤새도록 토의를 계속했었다.


산업부 차관이던 모하비 자신은 발표를 맡았었지만 밤새 이어지는 회의에서는 호텔 식당을 왔다 갔다 하며 시종처럼 차와 고기를 쉴 새 없이 날라야 했다. 찻잔에 차를 채우면서 모하비는 대표들의 의문에 공손히 답변을 반복했다. 신기했지만 그렇기 시간이 흐르면서 목적과 열의가 결여된 이 회의에서 점점 방법과 수단이 구체화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마침내는 구체적인 액수와 역할까지 접근하게 되었다. 대표들은 스스로에게 놀랐다. 사막의 신기루 같았던 에코 프로젝트는 그렇게 모습이 잡혔다. 이젠 단순한 기후 관련 사업이 아니라 중동 지방이 하나의 공동된 정치, 경제 구역으로 거듭나기 위해 벌이는 국제 프로젝트가 된 셈이었다.


"우린 사람, 땅을 가꿀 사람들이 필요해. 아시아 인들은 철제 빔 위에는 올라가려고 해도 사막은 못 견뎌하지 않는가?"

"아직 발표만 난 거야. 지금 빠져나가는 사람들은 그럴 마음을 애초부터 품고 있던 사람 일거라고."

"유럽의 정체 상황이 시장을 삐걱거리게 하고 있지만... 글쎄. 부채 문제보다는 시장이 열렸다는 게 더 걱정되는군."


사막 위에 신기루처럼 솟아나는 유리의 첨탑을 세우던 2000년대 초반, 중동의 각국에서 아랍인 대신 건축을 했던 장본인들은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에서 건너온 저임금 노동자들이었다. 건축의 시대가 끝나자 이들은 그 건물에서 요리사, 재단사, 호텔 종업원 등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도시에 흡수되어 버렸다. 뿌리를 내린 그들이 다시 에코 프로젝트의 대사를 이뤄줄리는 만무했다. 에코 프로젝트를 위해선 대규모의 인력이 필요했고 그 인력들은 사막에서 송수관과 연계 펌프를 놔줘야 했다. 그 일을 위해 아시아 대신 동유럽, 알바니아를 위시한 이슬람 국가에 추파를 보냈지만 EU는 그것마저 이번 협약으로 힘들게 만들었다. 일을 만들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계속 치닫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중동 각 국은 쿠웨이트를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해 보라는 메시지를 계속 날리고 있었다.


"없어. 방법이... 당분간은 관망이네."


실제로 그랬다. EU에서 이번 협약의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 시점부터 쿠웨이트의 산업부 차관인 모하비는 정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물망 같은 쿠웨이트의 관료 조직에서 알바니아 인들을 위시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혜택을 강화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만도 25개에 달했다. 다급함이 고스란히 드러난 정책들은 당연히 다른 부서의 먹잇감이 되었고 모하비는 바로 어제까지 이민 정착금의 특별 배정에 대한 타당성과 예산 편성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아야 했다. 사우디만큼은 아니었지만 쿠웨이트 또한  '귀족'들이 지배하는 나라였기에 무언가를 잘하기는 어려워도 무언가가 잘못되도록 만드는 건 쉬웠다. 까고, 파헤쳐서, 비웃어 버리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니까.


"하비브, 난 어제 자정을 기해 항복했다네. 이제 난 다른 나라에게 전달할 유감의 말씀들을 생각하고 있지..."

"하하하, 거기까지 내려앉은 건가? 정부 쪽에서 아주 호되게 당한 모양이군."

"사람이 몽땅 말라 버리려는데 어쩔 방법이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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