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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창환 Nov 14. 2019

20. 쿠웨이트, 쿠웨이트 시티 (2)

에코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선 각 국이 보유 중인 담수화 시설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렇기 때문에 각 국은 공동 발주를 통해 사하라 동남부 지역에 8개의 담수화 시설을 새로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내륙에 공장이면서 동시에 우물 역할을 할 담수화 시설을 갖춰두고 물을 바닷가에서 끌어와 사막을 적실 계획이었는데 송수관 시설 계획이 문제였다. 장장 1000km에 걸쳐 바닷물을 끌어올릴 송수관 시설 건설을 맡을 사람을 데려와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랍 은행 연맹에서 이 일을 두고 좋은 소식을 주고 싶어 한다는데..."

"정부 출자 사업에 국제 프로젝트인데 민자가 나설 일이 있나? 이건 더군다나 건축업이야."

"알고 있네. 알리 압둘 같은 늙은이들은 하찮은 일엔 관심 없겠지만 그 국제 관계라는 것엔 관심을 보이더구먼."

"석유만 붙잡고 살던 늙은이가 왜..."

"한번 만나 보게나. 지지부진할 때에 새로운 손길이 될 수도 있잖아? 정부 나리라면 공평해야지..."


모하비는 골치가 더 아파지는 느낌이었다. 은행 연맹... 오일 시대가 열리고 나서 서방 세력들이 공손히, 하지만 무자비하게 그들의 석유를 탐내고 달려들었을 무렵 단지 산업 세력만이 서방 세력에게 잠식당한 것은 아니었다. 서방계 에너지 회사들과 함께 '선진 금융'을 앞세운 JP모건과 같은 투자 은행들도 덩달아 자리를 잡고 폐쇄적인 중동 지방의 돈을 말 그대로 퍼 날랐다. 그 결과 인프라스트럭처 관련 투자 및 사업은 서방계 은행들에게 잠식당했고 중동 지역 은행들은 치열한 내수 시장을 두고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


각 국의 이해가 언제나 다르고 산업 전반에 걸쳐 서방의 입김이 강했던 지금 같은 상황에 석유라면 득달같이 달려들던 서방계가 에코 프로젝트엔 신기루 취급을 하며 관심조차 안 보이더니 지금은 빈자리를 노리고 틈만 나면 이렇게 줄을 대려고 노력 중이었다. 모하비로썬 에코 프로젝트만 놓고 본다면 이들이 관심을 가지든 말든 상관없었다. 지금까지 관망하겠다며 정부 사업엔 관심도 안 가졌던 이들이 돈과 인력이 사라지려는 지금 나타난 게 정치가가 아닌 관료의 눈으로 봐도 뻔했기 때문이다.


"자네는 뭔가? 대표? 로비라도 하는 건가?"

"나? 내 이름은 모하메드 알 압둘라 하비브, 마레크 은행 대외협력부의 장으로 있지. 여기 소개하겠네."

"관둬, 관둬, 유들유들한 웃음 지으면서 연극이라도 하는 건가?"

"무조건 외면만 하지 말고 만나 보자고. 나쁜 얘기든 좋은 얘기든 일단 듣는 게 정부 관리의 할 일 이잖아."


돈 되는 일에 탐욕스러운 은행가들이 돈을 통해 권력을 논하는걸 참을 수 없이 싫어하는 모하비 자신이었지만 친구이면서 동시에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나 은행의 세계에서 자라난 하비브에게 많은 의지를 하고 있었다.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는 하비브가 다른 은행가들과는 달리 탐욕을 '지나치게' 부리지 않는다는 점과 그의 은행이 다른 은행들과는 달리 개인 저축률을 높여 사업을 계속 유지하고 키워 간다는 점이었다.


하비브의 은행, 마레크 은행 또한 오일 시대에 서방계 은행과 혹독한 전쟁을 치러야 했고 3대에 걸쳐 유지되어 오던 경영권을 잠식당해야 했었다. 하비브는 주위 은행들이 전염병처럼 투자 은행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서방계 은행들이 하던 방식으로 싸우게 될 경우 자본력에 의해 굴복당할 거라는 걸 깨닫고 전략을 바꿨다. 마레크 은행은 고심 끝에 기업 간 투자와 증권 상품들을 통한 몸집 불리기보다는 중동 지방의 순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지갑에서 꺼낼 돈을 불리기로 결정했다.


속마음을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 아랍인들의 특성을 활용해 안전 자산의 마지막 저장고로 자신의 은행을 광고했고 오일 시대에 들어 갑자기 돈을 만지게 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자는 금지되었어도 은행으로써의 진실함과 투명함으로 접근해 철저히 개인, 개인의 돈을 끌어 오려고 노력했다. 주변에서는 사업성과 시류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판과 비난이 쏟아졌지만 그나마 그의 은행은 모든 걸 쏟아붓는 투자 은행으로 전환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았고, 서방 계열 은행의 일부가 되지 않았고 독자적인 이슬람계 은행으로 남을 수 있었다. 마레크 은행은 다른 은행들과는 달리 소액 주주의 주식 비중이 40%에 달했다. 신용협동조합이 아닌 은행으로써는 매우 특이한 경우였고 이는 이 은행이 중동 지방에서 어떤 위상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였다.


"그들이 할 말이야 이미 짐작이 가지만..."

"좋아, 대표님께 전달하지. 저녁에 내가 다시 오겠네."

"응? 이봐. 난..."

"어차피 올 거라고 할 거면서 많은 말들을 아끼세나. 저녁에 보세."


결국엔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웃음 지으며 떠나는 친구 하비브의 뒷모습을 보면서 은행 연합에서 꺼낼 주제들을 생각해 보았다. 몇 가지의 거래될 만한 조건들이 생각났지만 역시나 그들의 말을 듣기 전엔 모르는 법이었다.




은행이 언제부터 탐욕스러워졌을까...? 돈으로 돈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욕심을 언제부터 부렸냐고 묻는 것만큼 어리석은 질문도 없겠지만 모하비는 짧지만 모임까지 남은 시간 동안 그런 물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는 젊은 시절을 미국에서 보낸 '서쪽의 아이'였다. 전통적인 이슬람 주의에 환멸을 느낀 부모님들이 조부모의 간섭과 비난에 자신을 미국으로 보내버렸고 그 와중에 하비브는 반은 이슬람, 반은 서구 문물의 경험을 동시에 받아들여야 했다. 모하비는 미국 본토에서 미국이 치른 2개의 현대전을 지켜보았고 그 파괴력과 논리에 치를 떨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자신이 살았고 자신이 커온 미국에 반감을 품고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국제 정치학을 배운 경험을 되살려 외교관이 되기 위해 공무원의 길을 택했다.


관료가 된 이래로 모하비는 알력과 견제로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내무부의 의사 결정 방식을 손보고자 했다. 정상적이라면 채택되지 않았을 정책들이 수장들의 좌석에서 도로 정상적인 상태로 변경되어 진행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왜 빈곤 가정 지원 프로그램이 쿠웨이트 시티 22구역 재정비 계획보다 낮은 등급을 지녀야 하는 건가. 자국에서 거래되는 증권에 대한 거래세는 전체 국민의 5%만이 해당되는  안건임에도 불구하고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못했다. 도시 내 노후 구역에 대한 재정비 계획은 상업성과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거부되었다. 모하비에겐 그야말로 예산의 낭비라고 치부될 수많은 일들이 눈앞에서 막을 수도 없이 벌어졌지만 고위 관리직이 이미 가문의 사유화가 진행되어 버려 상부의 압박에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고 결국 그는 지쳐 버렸다. 모하비는 그때의 심정을 하비브에게 토로했다. 탄식과 함께 복잡한 속내가 한 잔의 커피와 함께 허공 속에 뱉어졌다. 잠자코 듣고 있던 그의 조용한 친구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이 나라는, 아니 중동 지역은 국가가 개인을 돌보는 것엔 관심이 없어. 그것은 마땅히 국가가 추구해야 하는 고유 기능이지만 국민에 의해 벼려지고 성장한 나라가 아니라 자연의 산물로 어느 날 갑자기 커져 버린 나라여서 국가의 시스템이 국민을 향하는 것이 아니야. 앞서 말한 자연의 산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왜 빈곤 가정에 대한 임시 지원책이 거부되었냐고 물었지? 그들은 이 나라의 생산 시스템에 올라타지 못하고 도태된 사람들이기 때문이야. 그들은 이 나라에게 도움을 준 적이 없어. 우리 식의 비유라면 사막에 있는 오아시스에 발을 담그지 못한 자들인 셈이야. 거기에 오롯이 있는 것들에 손을 뻗지 못해 잡지 못했고 그것을 얻기 위한  시도도 하지 않은 자들... 자연의 산물을 통해 자신과 국가에 부를 안겨주지 못한 사람들을 모든 것을 이룬 사람들이 어떻게 볼 것 같나? 어쩌면 반대되는 모습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그럴 수 있어. 국가는 지금까지 국민들을 향해 부의 산물을 나누려는 행동들을 여럿 보여주었어.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들로  말이야. 입장료라는 걸 들어봤나? 연 2회 주어지는 상품 쿠폰은? 그래. 우린 그런 정책들을 봐왔지. 그런 식이었네. 일시적  대책들. 아직 우린 저소득층이나 노년층을 위한 국가연금조차 없는 실정이네. 내 분야로 얘기해 볼까? 이 나라에 진출한 서방계  금융회사들은 석유 인프라나 그에 연관된 산업에만 투자를 할 뿐이네. 우린 단지 그들에게 땅을 주고 석유를 퍼달라고 할 뿐이지 우리 손으로 석유를 추출하고 저장하고 운송하는 건 아닐세. 그런 일들은 그쪽의 숙련된 노동자들께서 하지.


돈 받고 원유를 파는 행위 외에 우리가 그 산업에 얼마만큼 관여하고 있겠는가? 노동 고용 계수는 무척이나 낮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거기서 나오는 돈만 보고 허우적 되고 있지. 굉장히 안이하면서 동시에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네. 우리가 통제하는 건 가격과 생산량일 뿐이야. 우린 거기서 이 세계의 룰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결코 아니지. 그들을 통해, 그들에게서 돈을 받고 있는 이상 우린 힘을 낼 수 없네. 돈에 의해 지배를 받을 뿐이지. 아까 왜 국가가 국민들을 살피지 않느냐고 말했지? 통치자와 행정가들이 보지  않기 때문이지만 그들의 눈을 가리는 돈의 지배자들이 그렇게 유도하기 때문이네. 그들은 석유가 필요하고 그 석유를 통해 우리에게 지불하는 비용보다 더 큰 이익을 창출할 수 있어. 그 행위가 유지될 수 있도록 그들 스스로가 돈을 통해 권력을 형성하고 행사하고 있지. 그들에게 유리한, 그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우리를 취한 상태로 놔둬서 가만히 있게 놔두는 것. 국가 권력이 부를 형성할 수 없게끔 조직을 흐트러 뜨리는 것. 그래서 우린 가난한 거네. 돈을 모으고 생산을 하여 투자를 할 수 없지. 쓰기만 할 뿐...'


국가 권력만큼 켜져 버린 경제 주체의 권력... 기업과 국가 간의 파워 게임은 비단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고 쿠웨이트에서만 벌어지는 현상도 아니었다. 모하비는 미국에서도 수많은 사례를 통해 국가와 기업 간의 전쟁을 봐왔다. 국가 권력의 통제를 벗어나 자신들만의 제국을 세우려는 수많은 기업들은 돈을 바탕으로 권력의 뿌리를 이루어 갔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무기 대신 힘을 갖는 도구가 돈이었고 국가와 기업은 서로 돈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집단과 집단이 서로 우위를 가지기 위한 전쟁... 모하비는 그날 밤 친구와 커피잔을 기울이면서 전쟁의 한 복판에 뛰어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아직도 그의 결정이 정확히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자신도 잘 몰랐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삶이 결정되는 것을 참지 못하는 그의 성격에 의해 이끌리듯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다음날 자신의 상관을 만났고 산업부로의 전출을 희망했다. 그에겐 출사표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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