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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창환 Jan 03. 2022

서장

00. 우리는 어떤 적과 싸우고 있는가?

30년… 우리, 지구인은 30년이란 길고 긴 시간 동안 전쟁을 진행 중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30여 년의 기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전쟁을 지속한 적도 있었기에 기간만 놓고 본다면 전쟁이 지속 중이라는 점이 마음 한편에 걸리겠지만 곧 다른 이슈들에 정신이 팔리게 될 것이다. 인류는 또한 인간끼리, 혹은 대자연을 상대로 싸워왔다. 예나 지금이나 그 점은 변함이 없는, 전쟁 또한 인간의 다른 일상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인간 이외의 상대와 전쟁이나 전투, 투쟁을 벌여왔던 건 이미 역사 속에서 현생 인류의 탄생에서 증명된 생존 경쟁의 사례에서 증명된 셈이다.


  30년 전까지는 그 말이 맞았지만 이제 우린, 인간은 전혀 다른 역사를 쓰게 되었다. 인류가 지구가 아닌 우주에서, 지금껏 역사가 진행된 이 땅과 바다, 하늘이 아닌 전혀 다른 공간에서 전쟁을 하고 있다는 점은 과거의 여러 전쟁과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닌 선 굵은 빨간 표시를 긋게 한다. 세계 지도를 펼쳐 전쟁 중인 지역을 찾는 행동조차 의미가 없는 전혀 새로운 전쟁…. 지금도 우리의 아들, 딸, 친구, 부모들이 전장에 있지만 현대인은 잊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존재한다.


 우리의 하늘에 떠 있는 지구의 별, 아르테미스 전진 우주 기지. 그리고 하늘로부터의 침입자, VAX. 그리고 수시로 우리의 스마트 기기를 울리는 궤도 침입 경고들…. 시작은 소규모 정찰기였다. 30년 전, 각국의 우주 경계 감시 체계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지구 표면에 나타난 그들의 존재가 이 전쟁의 시작이었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 의해 자행될 수 있는 우주로부터의 위협을 막기 위해 앞을 다퉈 만들었던 감시 장비들이 있었지만 그것을 비웃듯이 VAX는 갑자기 태평양 상공으로 뚫고 들어왔다. 그렇게 지구에 나타난 단 3대의 정찰기에 인간은 지금껏 쌓아왔던 역사와 현실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영화로, 소설로, 인간이 상상만으로 두려워하던 바로 그 상황이 눈앞의 현실로 찾아온 거니까…. 인류는 이제 지구상의 존재가 아닌 다른 무언가와 싸워야만 했다.


 VAX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은 이 전쟁이 시작된 이래 30년 내내 우리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의문이었다. 분명히 실제로 적으로써 맞서 싸우고 있지만 서로가 공격하고 반격할 뿐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없이 그저 싸우기만을 반복하는 이 현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래서 혹자는 지구 너머의 저 하늘 위에서 지금도 벌어지는 전투와 VAX라는 것들이 사실은 현실이 아니라는 기가 막힌 억측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스마트 기기에 울려 퍼지는 지구 궤도 침입 경고에서 그들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요컨대 길어진 전쟁의 일상이 이어지지만 눈앞이 아닌,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 전쟁을 더 이상 인식하지 않으려는 심리 때문에 보이는 현상일 것이다. 이러한 심리와 현실 부정은 분명 이 전쟁에서, 승리가 아닌 인간의 생존을 놓고 보더라고 전혀 도움 되지 않는 헛된 생각이다. 게다가 지구 위 아르테미스 기지, 그리고 이 전쟁의 최전방, 달 궤도에 배치된 그들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분명 이 전쟁의 초기엔 지구 표면에서, 하늘에서 VAX와 전투를 치렀다. 그리고 차츰차츰 더 먼 전장으로 멀어졌을 뿐 VAX의 존재는 스마트 기기의 경고처럼 확실하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VAX의 존재는 확실히 존재한다라는 것 외엔 밝혀진 것이 별로 없다는 것도 맞다. 아직 많은 수수께끼를 감추고 있다. 우주의 어떤 성계에 속해 있는지, 생리와 생태계의 연구도 그다지 진전되지 않았다. 다만 반복된 전투 과정 중 수집된 VAX의 병기들을 통해 이들이 탄소 기반의 구조를 바탕으로 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형상은 마치 상상 속의 기계로 보이고 우리의 무기가 이들에게 통한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이 전쟁은 수행되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서야 관측된 사례에선 VAX가 화성에서부터 어떤 인공적인 방식으로 병력 다수가 ‘넘어온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 사실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들이 어쩌면 공간 너머 이동 기술을 알고 있는 고도의 문명일 수도 있다는 가정과 그걸 토대로 이 태양계 내에 적의 근거지가 없다는 가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술로 만든 무기로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점 등…. 환상적인가? 하지만 VAX는 환상이 아니다. 인간은 VAX와 싸웠으며 지금도 싸우고 있다. 다만 전쟁이 지구 표면에서 저 하늘로, 그리고 달 궤도까지 멀어진 것뿐이다. VAX의 위협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VAX와 싸우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한때는 지구에 도래한 이 재앙 속에서 어떤 인간이라도 그 이름을 잊지 않았던 그들, 지구연합대응군이 바로 그들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이자 목적인 바로 그들. 30년간 가장 극적으로 평가와 위상이 바뀐 집단이기도 한 VAX와 맞서 싸우는 유일한 집단…. 이 전쟁이 끝나지 않았지만 우리가 과연 그들에게 공정하고 일관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돌이켜 보자. 과거 우린 그들의 창설을 온 지구에서 요구하고 필요한 자원과 인력을 지원하는데 아낌이 없었다. 하지만 인간이 처음으로 지구 밖의 존재와 전쟁을 벌이는 이 상황에서도 역사 속에 있던 장기화된 전쟁을 겪는 나라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구 표면에서 지구 궤도로, 궤도에서 달 근처로 전장이 멀어진 만큼 이들의 존재감과 지원은 나날이 감소되어 왔다. 30여 년 만에 인간은 또다시 마치 이 전쟁이 여느 다른 전쟁과 같은 것처럼 지원의 한계성과 전쟁의 규모, 심지어 목적마저 논쟁의 책상에 올려놓고 대립하고 있다. 공통의 적에 맞서기 위해 창설된 대응군에 대한 현실이 그렇다.

 

 외부, 지구에서의 시각과는 달리 지구연합대응군의 현실은 하루가 다르게 첨예하게 변하고 있다. 현재 대응군은 내부적으로 지구 표면과 궤도에서 싸우던 때와는 구조적으로 변화가 있다. 우선 전투 환경이 변함에 따라 전투를 수행하는 병력이 지상 방어 군단, 우주 방어 군단으로 나뉘어 발전했다. 각국의 공군과 육군이 전투 지역에 따라 지휘와 통제하는 영역에서 복잡한 문제가 있었기에 그 문제로부터 비롯된 연합군의 창설, 나아가 지구 전 지역을 포괄하는 VAX 전쟁을 담당할 지구연합대응군으로의 창설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구라는 곳이 아닌 우주에서, 그리고 달에서 전투를 하는 중에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지원하며 지금까지 전투를 이어오고 있다. 우주군단과 지상군단은 서로를 보완한다는 표현은 비유가 아니다. 애초에 군수 보급이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달 궤도의 우주군단은 달 표면의 거점 기지와 달 궤도를 선회하는 이동형 기지, 오르카를 제외하면 활동 영역이 극히 제한된다. 그중에서도 달 표면의 거점 기지, 앵커 전진 기지는 지구-아르테미스-달로 이어지는 이 전장의 하나뿐인 인간의 최전선 기지이다. 지구연합대응군은 바로 그 앵커 전진 기지를 최종 방어선으로 삼고 있고 최종 방어선이 곧 최전선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VAX가 화성에서 출현하여 달까지, 그리고 지구까지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우리 인간은 달 궤도로부터 불과 몇백 킬로미터 밖에 이동할 수 없는 병기의 성능 한계 차이 때문에 생겨난 치명적인 약점이다. 지구와 달 기지 간의 군수 지원도 담당하는 우주군단에서 장거리 이동과 독자적인 전투 능력을 갖춘 함선의 개발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지구에 있는 각국은 외려 그 점을 지구 침공과 대응군의 반란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극구 반대했다. 앵커 기지, 달을 더 이상 방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지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전략 무기를 통해 지구 궤도로 오기 전에 격퇴한다 라는 비현실적이고 한가한 주장을 각국의 대표들은 자랑스럽게 부르짖었다. 그리고는 최전선에서 전투를 수행 중인 대응군에게 가는 지원은 아르테미스-앵커 기지 간의 가느다란 매스 드라이버에 의지하고 있다. 기초 물자를 대포에 넣어 쏘아주는 그 기구 말이다. 이게 우주군단 내면에 도사린 절름발이 같은 문제라고 한다면 지상군단은 어떨까...?


 지상군단은 앵커 전진 기지를 방어한다는 목적이 있다. 이는 우리가 가끔 받게 되는 궤도 침입 경고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를 지상군단이 안고 있다는 반증이다. VAX 전쟁의 초창기, 지구 침공 시기엔 VAX의 병기는 우주선의 모습으로만 나타났었다. 우주 공간을 뚫고 지구 궤도로 침범하는 VAX의 병기가 대기권, 지상에서 둘 다 역할을 할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금도 지구까지 도달한 VAX는 하늘에서만 싸울 수 있는 전투기의 모습으로 나타났었고 지구 표면에 VAX의 병기나 병력이 투하되어 전투가 벌어진 적은 없었다. 이것이 우리가 기억하는 VAX 전쟁의 모습이다. 본인 또한 하늘 가득히 검은 새떼를 연상시키는 대규모의 VAX 전투기들을 본 적이 있었지만 두 발, 혹은 네 발, 아니면 아예 다른 무언가의 형태로 지상에서 공격을 하는 VAX는 기억 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병기는 이곳 달에 와서 목격하였다. 앵커 전진 기지는 VAX에 의한 물리적인 점령 상황을 실제 하는 위협으로 대비하고 있다. 그렇게 실제 하는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지상군단이 편성된 것이다. 지상군단이 맞닥뜨리는 이 상황을 지구인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지구와 달 간에 VAX 전쟁을 담당하는 사람들과 겪고 있는 인간들의 이해가 어긋나는 부분이다. VAX는 달의 지표에 직접 침공한다. 달 궤도의 침입을 우주군단이 막지 못하면 앵커 전진 기지는 VAX의 지상군에 의해 점령된다. 우주군단의 보호가 없는 지상군단은 지상과 우주 상공으로부터의 공격에 의해 분쇄된다. 거점을 잃은 지구연합대응군은 지구로의 이동 수단이 애초에 없으므로 섬멸당하거나 소수의 병력만이 탈출 가능해진다. 앞서 언급한 지상군단과 우주군단은 서로 보완한다는 의미는 바로 이를 뜻하는 것이다. 아무리 최첨단의 전력을 자랑하는 우주 시대의 군사력이지만 사정을 들여다보면 아슬아슬한 상황에 처해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VAX 전쟁의 가장 중요하고 극적인 변화인데 정작 인간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본인은 대응군의 창설 시점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응군의 최전선에서의 모습과 병사들의 삶을 기록하고 전하기 위해 그들을 취재해 왔고 그들과 함께 했지만 동시에 그들처럼 맞서 싸우는 게 일상이 아닌 지구의 전달자로서의 삶을 살아왔기에 외부자로서 이 변화를 목격하고 기록할 수 있었다. 양측면의 삶을 동시에 살아갈 수 있었지만 이 장기간의 전쟁에서 얻은 현재의 결론은 인간이 패배한다라는 것이다. 인간은 패배할 수 없다. 아니, 패배해서는 안된다. 화성 저편에서 넘어오는 VAX와 달리 우리 인류는 지구라는 거점에 뿌리 박혀 있는, 달리 말하면 지구가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멸망 아니면 생존뿐이 없는 이 전쟁에서 지금 지구인이 갖는 이 전쟁에 대한 인식은 한없이 위험하다. 당장 지구에 있는 인간이 아르테미스 전진 기지가 아닌 달 궤도 방면에서 싸우는 대응군을 마치 다른 인류, 혹은 외계인으로 취급하는 현실을 보라.


 인간은 이대로면 패배한다. 멸망한다. 이 관점은 곧 현실이 된다. 본인은 그 현실을 직접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인식의 전환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대응군이 싸우는 달 궤도로 향했다. 그리고 변화한 상황을 좀 더 세세하게 알아내고 지구에 있는 인간을 위해 알려야겠다고 판단했다. 이 글은 패배해서는 안 되는 전쟁에 임하는 대응군과 그 중요성을 점점 잊고 있는 지구인을 위한 절규다.


종군기자 제시카 잭슨의 저서 ‘더 인베이더’ 3차 개정판 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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