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람과 고기> (양종현, 2025)의
주요 내용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다가 언제부터인지 벌어진 틈을 마주한다.
손 쓸 수 없이 틈새는 깊어지고
뭔가 중요한 것들을 떨어뜨렸더라도
찾을 도리가 없다.
<꺼져버린 너>
<사람과 고기>의 그들도 그랬을 것이다.
어느 틈엔가 무엇을 놓쳐 버렸고
독거노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건
첩으로 살며 혼외자를 낳아서일 수도 있고
그 시절 많이들 그랬듯
망나니 쓰레기 남편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결정적으로
아무 짝에도 쓸모없을
시라는 것을 썼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나는 <사람과 고기>를 본 후에는
위와 같이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는 친구 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인생에
불행이 벼락처럼 들이닥칠 때
필연적인 이유가 어디에 있으며
놈이 예고라는 친절이라도 갖추는 것을
본 자가 있을까.
차라리
불행 중 다행인 일을 마주쳤을 때
얼른 그 위에라도 올라가
잠깐 숨이라도 쉬어 보는 것이
불행을 받아들이는 더 뻔뻔한 자세이고
불행이 원하지 않는
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벌어진 일,
너무 쉽게 끝까지 불행해지지는 않는 것이야말로
불행으로 하여금
분하여 이를 갈도록 하는 것일지도.
<이미 벌어진 일>
값 좋은 한 채의 부동산이나마
진작 알차게 마련하고
넉넉한 연금과 저축을 계획대로 준비해 둔 덕에
자녀들과
주말 쇼핑과 생일 외식을 즐길 수 있는
어떤 실버세대에게는
영화 속 이들의 무전취식 행진은
일탈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궤도를 벗어난 열차가
어두운 협곡으로 추락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도 있다.
<탈출, 또는 탈주>
어떤 면에서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추락은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에서다.
삶의 의미를 어쩌다 일탈에서 찾게 된
독거노인들의 이야기라고
한 줄로만 줄여 소개하기에는
<사람과 고기>가 보여준 진한 가난이
나에게 너무 가깝고
소외가 지나치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내가 탄 열차도 이미
탈출, 아니 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사람과 고기>는
"저렇게 (가난하게) 되면 큰일이다."
라는 불안과 공포를 안기는 만큼이나
"최악의 경우는 면할 수도 있겠다"
라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위트와 여운을 남긴다.
이 세상에 가난한 그 누구도
끝까지 외롭지는 않도록
우정과 화해, 배려까지
알차게 여러 장면을 섞어주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고양이까지)
<사람과 고기>의 '사람'이
단지 'Human'이 아니라
'People'인 까닭이 거기에 있나 보다.
<People>
* 뱀발 : 진짜 강력한 스포일러 *
누군가는 그랬다.
장씨가 시인이라는 맥락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진작에 알아차린 나는
매우 가성비 좋은 관객임에 틀림없다.
사건을 주도하는 존재
위험을 전복하는 존재
또 다른 위험을 기꺼이 사랑하는 존재
그 존재가 바로 시인이기 때문이다.
형준이 죽은 아내를 언급하며
'젖탱이에 암'이 생겼다고 할 때
우식은 '유방암'이라고 고쳐주었고
형준과 화진이 무전취식을 들킬까 긴장하며
말 없이 고기만 열심히 먹을 때
우식은 '왜 고기에만 집중하냐'라고 한다.
그 연령에 시인이라면 아마도 배운 사람일 텐데
그토록 빈곤한 독거노인이 된다는 설정 자체가
흔치 않은 케이스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시라는 것을 써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시란 그토록 위험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