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이제 소녀의 집은 부자다
그 여자가 국민학교 3학년을 마칠 즈음, 사글세 집을 떠나 새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 동네에서 내려와, 큰 교회 옆 동네였다.
오래된 계단을 한참 올라가, 오른쪽 첫 번째 골목에 회색 스레트 지붕의 집이었다. 그 시절 집 구조가 다 비슷했는지, 새집 역시 마당을 사이에 두고 주인집과 부엌 딸린 문간채가 마주 보고 있었다.
주인이 사는 안채에는 작은 마루를 사이에 두고 방 두 칸과 부엌이 있었고, 맞은편에는 세를 줄 수 있도록 방 한 칸에 작은 부엌이 딸려 있었다.
소녀의 엄마는 그 집을 샀다고 했다.
“그럼 엄마, 이제 우리가 주인이 되는 거야?”
“맞다. 우리가 안채에 살고 저 문칸 방은 세를 줄끼다.”
새 집의 부엌 바닥은 늘 보던 시멘트가 아니었다. 잔잔한 네모 무늬의 하늘색 타일이 깔려 있었다.
이사 전날, 친할머니는 미리 오셔서 새 집 곳곳에 굵은소금과 붉은팥을 놓아 양밥을 하셨다. 집의 지신께 예를 올리고 잡귀를 막는 의식이라고 했다. 그날 밤, 할머니는 그 집에서 혼자 주무셨다.
“내가 자 보니 편안하드라.
매일 아침, 조왕님께, 부뚜막에 소금 올리는 거 잊지 마래이.”
할머니는 그렇게 당부하셨다.
이제 반쪽짜리 미닫이문으로 나누던 방이 아니라, 언니와 둘만 쓰는 방이 생겼고,
무엇보다 소녀를 가장 벅차게 한 것은 자신의 책상이었다. 이제 더 이상 차가운 방바닥에 엎드려 숙제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처음으로 갖게 된 자신만의 책상 앞에 앉아 보며, 소녀는 이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이사를 하고 나서 엄마는 안방에 자개장롱과 화장대를 새로 들였다. 부엌에는 생선 그릴이 달린 일제 가스레인지와 코끼리표 전기밥솥이 놓였다. 찬장 한쪽에는 깡통에 담긴 미제 코코아 가루와, 서양 아저씨가 커피를 마시고 있는 스티커가 붙은 커피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해 김장철이 되자 소녀네 마당은 김치를 담그는 동네 아주머니들로 북적였다. 그들은 서로를 '성님', '동생'이라 살갑게 부르며 매일같이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4학년이 되자 엄마는 걸스카우트 입단을 권했다. 정확히 어떤 활동을 하는지는 몰랐지만, 단정한 원피스 유니폼과 동그란 모자만큼은 퍽 특별해 보여 마음이 설레었다. 특히 발대식 때 신으라고 엄마가 사주신 '‘꽃분이'운동화는 신기가 아까울 정도로 정말 예뻤다.
소녀는 이제 자신이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부잣집 딸이 된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