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CHA ver.2401 두 번째 이야기
엄마와 단둘이 부산 여행을 왔다.
(지금 이 순간, 엄마는 티브이 속 드라마를 보며 휴식 중이시고
나는 그 옆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가족끼리 부산에 자주 왔던 터라,
부산 여행 때마다 하는 나름의 루틴이 있었다.
그 루틴 중 하나가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영화 보기’였다.
일반 극장에서는 주로 대중영화만 볼 수 있다면,
<부산 영화의 전당>은 대중영화뿐만 아니라
독립영화,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 의미 깊은 영화들을 상영하고 있어서
부산에 올 때마다 한편 이상씩은 보고 가게 되는 게
우리 가족의 자연스러운 루틴으로 형성되었다.
그래서 이번 부산 여행도,
비록 엄마와 나, 둘뿐이었지만
몸에 익숙해져 버린 그 루틴 덕분에
영화 한 편을 예매해두었다.
바로, 오늘 오후에 본
<리빙: 어떤 인생>이라는 영화였다.
영화 속 주인공은,
수십 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해온 한 남자인데
어느 날 병원에서 시한부 통보를 받게 된다.
짧게는 6개월, 길어도 9개월일 것이라고.
40년 동안 묵직하고도 성실하게
공무원 생활을 해왔던 이 남자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함과 동시에,
새로운 만남.. 새로운 경험... 새로운 대화....
그리고 마지막 그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삶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 자신의 생을 스스로 돌아보면서,
너무나 딱딱하고, 단조로운 삶을 살아왔다는 걸
이 상황이 되어서야 알아차렸을 때,
그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하하 호호 웃으며
신나게 놀다가 엄마의 부름이 들려오면
친구들과 더 못 논다는 생각에 참 아쉽잖아요.
그런 아쉬움과 함께 다음을 기약하며
저녁을 먹으러 집에 들어가게 되죠.
반면 집안 구석에서 혼자 노는 아이도 있어요.
그 아이는 부엌에 있는 엄마의 부름이 들려오면
아쉽진 않아 하죠.
원래 혼자 놀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다가
엄마의 부름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아쉽겠죠, 많이 아쉽겠죠.
그래도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았잖아요.
그 순간만큼은 정말 행복하게 시간을 보냈잖아요.
언젠간 저도
신의 부름을 받게 되었을 때,
더 이상 친구들과 신나게 못 논다는 생각에
많이 아쉬워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
.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주르륵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다지 감동적인 장면이 아닌데도..
이유가 불명확한 눈물이 계속 계속.. 흘러내렸다.
영화가 끝나고
엄마한테 눈물 파티했다는 걸 말하자..
엄마는 의아해하셨다.
시한부도 아니고, 인생이 많이 남은 네가
어떤 포인트에서 감정이입이 될 수 있었는지 놀랍다고..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조건으로만 보면, 나보단 엄마가 더 감정이입이 되었을 건데 말이다.
.
.
아무래도, 요즘 내가
놀이터에서 신나게 친구들과 놀고 싶었나 보다.
엄마가 저녁 먹자고 부르면
언제든 아쉽지 않게 후다닥 달려가는 요즘의 내가
참 맘에 안 들었나 보다.
최근 몇 개월 동안 난,
대부분의 시간을
놀이터보단 집에서 보냈다.
그래서..
하루가 가는 것을 아쉬워하기보단
하루가 그냥 빨리 가버렸으면 했고,
나의 할 일을 즐기며 했다기보단
나의 할 일을 의심과 불안의 눈초리로 쳐다보았고,
이루고픈 꿈을 누군가에게 말할 때
설레는, 빛나는 눈빛으로 당당하게 말하기보단
‘혹여나 비웃으면 어쩌지? 얼토당토않는 소리처럼 들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아..
떨리는 목소리와 흔들리는 동공으로 겨우 내뱉었다.
집에서 놀이터로 가는 것이
뭐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집에서 놀이터로 가는 길이
왜 이렇게 힘겨웠을까?
집에서 놀이터로 가는 그 길이
왜 저렇게 멀게만 느껴졌을까?
난 그저 놀이터에 가서
신나게, 행복하게
이 시간을 즐기고 싶었을 뿐인데..
.
.
지금을 즐긴다는 것,
현재를 보낸다는 것은
그 어느 시대에나 그랬듯
참 뻔한 말에 불과했지만
그 어느 시대에나 그랬듯
참 어려운,
어쩌면 가장 어려운 실천사항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그 뻔한 말을 또 되뇌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다.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다가
엄마의 부름을 듣자마자
아쉬울 수 있도록.
아쉬움을 안은 채
엄마에게 달려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