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2404 선구안이 살아있는 타자가 되고 싶어서

01. 모든 상황엔 정답이 없고, 이 세상은 추상적이잖아

by 마차

아빠는 평소와 다름없이, 저녁 즈음..

등산용 스틱을 가지고 강가를 걸으며

저녁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캠페인을 하고 있는 청년이 아빠에게로 다가오더니,

스티커 하나를 붙여달라고 하더래.

아빠는 단순히 스티커만 붙이고 끝나는 게 아님을 알고 있었던 터라,

정중히 거절하고, 다시 산책에 집중하러 돌아서는 그 순간

그 청년이..

- 아버님 등산하고 오셨나 봐요?

- 아, 아닙니다. 그냥 산책하고 있어요 ㅎㅎ

- 아하 그러시군요! 저녁이 되니 많이 쌀쌀해졌네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 오우 넵 감사합니다 ㅎㅎ

아빠는.. 그 청년과 나눈

그 몇 십 초간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이런 생각이 들더래.

‘아.. 이 청년 뭘 해도 될 사람이구나..’

스티커를 붙여달라는 자신의 제안이 거절되었음에도,

마음에서 따스하게 솟아 나오는 그 청년의 품격과 여유,

그리고 마음의 크기를 보고는.. 아빠는 아주 깜짝 놀랐대..

그 청년에게 커다란 무언가를 배운 듯한 느낌이라면서..

아빠의 이 일화를 듣고..

아빠 못지않게 나 또한 그동안의 나를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어.

특히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손님들에게 음료를 만들어드린다는 걸 넘어서

손님들에게서 직접 주문을 받기도 하고, 어떤 질문을 받기도 하면서

나의 수많은 표정과 말투와 태도가,

손님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될 수밖에 없는 역할이라..

나에게 이 물음을 깊숙이 던져보게 되더라.

‘나는 그때의 손님에게,

마음에서 따스하게 솟아 나오는

표정과 말투와 태도를 가지고 있었을까?’

라는 물음을 말이야.

그동안의 난,

누군가에게 크게 인사를 하고,

살갑게 근황을 물어보고,

단골손님에게 “오! 또 오셨네요?

오늘도 아로마노트 뜨거운 아메리카노 드릴까요?”

라는 말을 건네는 것이..

그저 낯간지럽고, 나대는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제는,

조금 낯간지럽더라도

나대는 연습을 해보려고..!

생각해 보면,

내가 누군가에게 감동받았던, 참 고마웠던 순간은..

누군가가 나에게 크게 인사를 해주고,

누군가가 나에게 살갑게 근황을 물어봐 주고,

나를 그저 지나가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또 와준 고마운 사람이라고 맞이해주는 순간이었거든..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온 마음을 내어줄 사람으로 성장하려면

꽤나 긴 시간이 필요로 하겠지만,

그런 어른을 꿈꾸며..

오늘과 내일의 시간을 켜켜이 밟으며

너에게 작은 안부와 인사를 건네어보려 해

때론 낯간지럽게, 때론 용기 있게, 때론 나대면서 말이야..

모든 것이 그렇듯이,

어느 때와, 어느 상황과, 어느 장소이냐에 따라

나의 다짐이 적절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유독 조심스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는 나로선,

일단 누군가에게 목소리를 내보는,

일단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건네어보는 연습을 해보려고 해.

아빠의 일화를 풀어서 적은 위의 글을,

아빠에게 검토할 겸, 자랑할 겸 보내주었더니..

그 다음 날, 아빠에게 전화가 왔어.

“전체적인 내용은 아주 좋아.

좋은데,

며칠 전에 어떤 기사를 보니까 말이야.

어떤 카페 주인이, 자신의 카페에 자주 오는 단골손님한테

아는 척을 하고 서비스를 줬더니

그 이후로는, 그 단골손님이 오지 않더래.

그러니까..

어떤 성격을 가진 손님이냐에 따라서

친한 친구 사이의 인연이 되어야 할 때도 있고,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사이가 되어야 할 때도 있고,

매 번 처음 온 손님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할 때도 있다는 거지.

참.. 인생이 어렵고 복잡하지?

신영이 너도, 카페에서 일 해보면 알겠지만..

손님들과 이런저런 소통을 해보면서 딱 느끼게 되잖아.

이 손님에게는 얼마만큼 다가가야 할지를,

저 손님에게는 어느 정도의 관심을 표현해도 될지를 말이야.

그 센스와 감각을 키우게 되면,

정답 없는 이 복잡한 세상에서..

그나마 정돈된, 그나마 융통성 있는 시간들을

쌓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

.

결론이 정해진 줄 알았던 그 일화에서도,

역시나 결론은 없었어.

정답이 정해진 줄 알았던 그 가르침에서도,

역시나 정답은 없었어.

나의 모든 생각과 글의 끝에는 항상

<정답이 없다는 것>으로 매듭짓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난 이번에도 시간을 조금 두고서야 이 사실로 오게 되었네.

‘이쪽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저쪽을 중요시해야 한다’,

‘여기에 시간을 써야한다’,

‘저기에 에너지를 투자해야 한다’를

배워야하는 게 아니라..

나는,

이쪽이든 저쪽이든 여기든 저기든

그 어떤 곳에서든..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센스와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했어.

센스와 감각...

너무 추상적이지 않아?ㅋㅋㅋㅋㅋ

너무 추상적이지만,

또 지극히 현실적인 말이라..

부정하긴 어렵다.

어쩌면, 센스와 감각이라는 이 말이

너무나 추상적이라서,

더 안심이 되고 위로가 되기도 해

추상적이기에,

나의 무엇이든 정답이 될 수 없으니까.

추상적이기에,

나의 무엇이든 정답이 될 수 있으니까.

.

.

어느 상황이 나에게 최선의 상황인지는.. 나도 모르겠어.

과거의 내가 바라던 나의 모습이

지금 현재의 나일 수도 있지만,

여전히 때로는 현재를 싫어할 때도 있는 것처럼 말이야.

이처럼.. 언제나 지금의 나를 싫어할 가능성이 있는,

그런 하루를 보내고 있을 우리에게는..

어느 상황이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더라.

지금의 삶이 좀 편하고, 좀 괜찮고, 좀 행복할 때 나는..

불안과 걱정을 굳이 굳이 만들고 있었어.

어쩔땐 그 편함, 괜찮음, 행복감에 비례하게 고통을 만들고 있었지.

그러니까.. 현재의 삶이 편하고, 괜찮고, 행복할 때조차 나는

온전히 그 편안함과 괜찮음과 행복감을 누리지 않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난, 내 삶이 편하든 편치 않든 괜찮든 괜찮지 않든

행복하든 행복하지 않든 즉, 매 순간..

내 삶이 싫어질 수 있는 이유를 잔뜩 안고 있었다는 거지.

어두운 색깔을 띠고 있는 이것들을 잔뜩 안고 있는

먹구름을 가지고 있던 나는,

누군가가 그 먹구름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하늘이 울분을 토해내듯 쏟아져 내리는 장마와 같이..

내 마음의 하늘에 떠있던 그 먹구름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렸어.

터져버린 그 마음은,

수습하기에 시간이 참 오래 걸리더라.

다시 꽉 찬 마음으로 회복되기까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더라.

그러니 우리, 먹구름이 터져버리기 전에, 먹구름이 더 커지기 전에..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자.

현재의 편안함을 밀어내고 굳이 고통을 안으려 하지 말고..

나의 삶의 무지개와 빛나는 태양을 바라봐 주자.

먹구름과 무지개와 태양은

그 무엇보다 추상적인 표현이지만,

그 무엇보다 너에게 직접적으로 닿게 될 표현이란 걸 믿기에..

오늘도 그 추상적인 힘을 믿어보며, 이 글을 너에게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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