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 쉼터 거실생활
작은애가 아픈 뒤로 서울에서 지내고 있다. 타지 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낯선 경험이다. 6주간 방사선치료를 받기 위해 소아암 쉼터에 입소했다. 방이 세 개인데 다 차서 거실에서 생활한다. 부엌과 화장실 그리고 세탁기가 공용이라 서로 눈치껏 쓴다. 불편하지만 하루 사용료가 만원이니 이만한 곳이 없다.
주중에는 매일 치료받으러 병원에 간다. 지하철을 두 번 환승하고 셔틀버스를 타면 도착이다. 넉넉잡아 두 시간 전에 숙소에서 나선다. 아이는 방사선치료 첫날부터 토하기 시작했다. 더 힘든 항암치료도 남아있는데 첫날부터 토해서 겁이 났다.
작은애는 재우는 약을 쓰지 않아도 치료 협조가 잘 되는 편이다. 방사선치료를 위해 몸에 지도가 그려졌는데 마치 아이언맨 같다. "레이저 발사"를 외치며 윗옷을 올린다. 하루 1440분 중에 치료는 10분이다. 그 10분을 위해 가족의 일상이 달라졌다. 남편은 출퇴근 시간을 조정했고 버스 대신에 운전을 한다. 큰에도 하교 후 시간표가 촘촘해졌다.
작은애는 갈수록 밥 먹는 걸 힘들어한다. 매 끼니 밥을 짓는다. 쌀을 한 컵만 씻는다. 1.3인분씩 만드는 연습을 하고 있다. 2시간 지난 음식은 버린다. 냉장고도 한 칸씩 나눠 쓰니까 자리가 부족하다. 장을 볼 때 신중해진다. 끼니마다 반찬을 한 가지씩 만든다. 밥 해 먹이고 병원 다녀오면 하루가 꽉 찬다. 처음엔 남는 게 시간이고 새는 게 돈이었다. 시간과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 내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거다.
작은애는 치료 첫날부터 집에 가고 싶어 했다. 나도 집이 무척 그리웠다. 특히 큰애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큰애는 헤어질 때도 울고 기차 안에서도 울고 잠들면서도 울었다. 나도 숙소에서 큰애에게 편지를 쓸 때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큰애 답장을 받고 깜짝 놀랐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을 만큼. 기특하면서도 짠하다.
소아암 쉼터는 항암치료 중이거나 조혈모세포 이식한 집도 있으니 소독과 청소가 중요하다. 위생관리가 철저한 분위기에 처음엔 긴장되고 조심스러웠는데 차츰 발맞춰 가고 있다. 쉼터에서 호중구 수치에 대해 듣는다. 알면 알수록 항암은 고생길이다. 9시간 걸렸던 개두술은 레벨 1단계였다. 난이도로 보자면 방사선은 2단계, 항암은 3단계다.
먼저 쉼터에 들어온 분들이 항암치료 부작용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집에 가기도 어렵다는 말에 많이 놀랐다. 작년 8월에 들어오신 분이 아직 계신다. 우리도 항암치료가 56주인데 앞이 캄캄하다. 큰애가 열 살이다. 내년에 사춘기가 올지도 모른다.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이 생활이 상처로 남지 않을까. 이 지점에 걸리면 마음이 어렵다.
쉼터에 계신 분들은 좋으시다. 밖에서는 유별나 보이는 행동이 쉼터에서는 이해받는다. 병은 다르지만 각종 소아암으로 모인 곳이다. 서로의 병을 걱정해 주고 그간의 고생을 짐작한다. 내 아이의 병이 낫기를 기도할 때 같이 지내는 이들의 이름도 말한다. 도마질을 하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다는 옆 방 엄마 말에 먹먹해진다. 베란다에 쌓여있는 생수 박스의 주인은 하늘로 갔다. 나의 서울 체크인은 삶과 죽음의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