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작은애 7살에 생긴 일
4월 5일: 작은애 MRI 검사에서 4.5cm 악성 뇌종양이 발견됐다. 울산 의사는 하루빨리 서울로 가라고 했다. 서울에 이름 있는 병원들은 전화 연결조차 어려워 애가 탔다. 병원 문턱이 높았다. 울산 의사한테 이런 사정을 말하자 잠시 기다려보란다. 중간에서 서울아산병원과 연결해 주셨다. 부랴부랴 응급실에서 코로나검사를 받았다. 비용이 17만 원이었지만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 의사는 서울역에 내리면 택시 타고 병원으로 곧장 가라 했다.
4월 6일: KTX 첫차를 탔다. 혹시나 해서 입원 짐을 싸고 아이는 금식시켰다. 배낭을 메고 작은애 손을 굳게 잡았다. 서울역에서 병원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 아이는 아픈 뒤로 계단이 잘 보이지 않아 자주 넘어졌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의사를 만나기까지 몇 가지 관문들이 있었다. 작은애는 진료를 기다리다가도 토했다. 빈 속이라 노란 위액이 나왔다.
작은애를 본 의사가 소아응급실로 안내했다. 뇌압 때문에 토하고 사시가 된 거라고 말했다. 뇌압을 낮추는 수술부터 받아야 했다. 작은애는 전날 한 코로나검사에서 음성이 나온 덕분에 바로 수술 준비를 했다. 작은애가 수술 준비로 여러 검사를 받고 누워있을 때 내게 공황증상이 나타났다. 서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작은애가 응급으로 수술을 받고 나왔다. 의사는 2주 뒤에 종양 제거수술을 받으러 오라 했다. 그전까지는 수술 일정이 차 있어서 어쩔 수 없단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2주를 보낼 생각에 아득했다. 머리에 압박붕대를 감은 작은애는 나에게 손가락 하트를 날린다. 잘 버텨줘서 고맙다.
4월 7일: 아침에 간호사가 수술할 수도 있으니 다시 금식이란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서 정신줄을 꽉 붙들었다. 오후에 예정된 수술이 취소되는 바람에 우리 아이가 들어가게 됐다. 기적 같은 일이다. 의사가 수술로 인한 여러 후유증을 설명하는데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병원 연구에 아이의 뇌종양을 기증하기로 했다.
엄마와 하루 떨어져 자야 한다는 말에 작은애가 울기 시작했다. 작은애는 병원에 오고부터 여태 운 적이 없었다. 엄마랑 헤어지기 싫다고 우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 엄마 마음은 네 옆에 꼭 같이 있을 거라고 말해줬다. "엄마 마음은 나랑 같이 있는 거야?" 두어 번 묻더니 안심한다. 오후 1시에 수술실에 들어갔다. 전신마취로 잠든 모습을 보고 나왔다. 작은애 앞에서 울지 말아야지 다짐했건만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불 꺼진 보호자 대기실에 홀로 남았다. 수술이 예상보다 길어지자 걱정이 됐다. 밤 10시에 수술이 끝났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는 문자를 받았다.
4월 8일: 오전에 작은애는 소아병동 입원실로 올라왔다. 두 눈이 퉁퉁 부어있고 멍도 들었다. 작은애는 엎드린 자세로 머리에 핀을 박아 고정한 채 뒤통수를 열어서 수술했다. 몸 여기저기 줄이 달려있다. 큰 수술을 무사히 받고 나온 작은애가 기특했다. 종양은 다 제거되지 못했다. 뇌간에 붙어있는 종양은 건들면 의식불명이 되기 때문이다.
4월 15일: 일주일이 지났다. 작은애는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했지만 나는 불안한 마음에 병원에 더 있고 싶었다. 10일을 채우고 퇴원했다. 역경의 속성반에 들어온 기분이다. 언제 졸업일지 알 수 없다. 몇 년간은 내 일상을 갈아 넣어야겠지. 다짐과 각오가 뒤섞인다.
4월 20일: 조직검사 결과를 들었다. 예상했던 수모세포종이다. 방사선치료부터 할 건데 울산에서 할지 서울에서 할지 정해야 한다. 서울에서 하고 싶은데 한 달 반 이상 떨어져 지내야 하니 큰애가 마음이 쓰인다. 뭐가 최선일까. 작은애가 아픈 뒤로 자주 고민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