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아준 엄마께

부치지 못할 편지인 줄 알지만 씁니다.

by 공글이

벌써 세 번째네요. 아이를 데려올 때 처음 썼지요. 직원은 편지가 전해질 일은 없을 거라며 난감해했어요. 그럼에도 왜 편지를 맡겼을까요? 혹시나, 만약에, 혹여라도 전해지길 바랐어요. 낳아줘서 고맙다고, 잘 키우겠다고, 안심하라고 인사가 하고 싶었나 봐요.

두 번째 편지는 노트북에 적었어요. 아이가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대자로 드러눕던 때였을 거예요. 책에서 보던 문제아가 내 아이일 줄이야. 진땀이 나는 일상이었어요. 편지가 쓰고 싶더라고요. 편지의 요지는 '내가 이마이 식겁하고 있다'였는데 나는 왜 그 말이 당신께 하고 싶었을까요?

아이는 당신을 '낳아준 엄마'라고 불러요.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호칭부터가 어렵네요. 저는 가끔 마음속으로 '예슬이 엄마'라고 불러봐요. 예쁘고 슬기롭게 자라라고 당신이 지어준 이름. 아이가 자기를 예슬이로 불러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 이름이 마음에 드나 봐요. 저도 마음에 들어요. 애정이 느껴져서요.

우리가 혹시나, 만약에, 혹여라도 만난다면 하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많아요. 묻고 싶은 것도 많고요. 우선은 아이가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해요. 언젠가 한 번은 만나게 될까요?

아이는요 무척 사랑스러워요. 그리고 저를 환장하게 해요. 열불 나게 해요. 제 안에 있는 괴물을 깨우죠.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을 때가 있어요. 아이는 불같이 화를 내요. 우리 집에서 몸은 제일 작은데 공격성과 큰소리로는 1등이에요. 똘똘하고 예민하고 호탕하게 웃어요. 스킨십을 좋아해서 몸에 착 감겨요. 물에 담긴 고기는 먹지 않겠다며 고기에 진심이에요. 튀긴 고기나 구운 고기를 제일 좋아해요. 운동신경이 남다르고 체력도 좋아요. 담대한 편이에요. 낯은 가리는데 사람을 좋아해요. 동물도 좋아해서 꿈이 사육사예요. 바깥놀이나 몸 쓰는 일을 좋아해요. 태릉원에 보내고 싶었는데 소아암 환아가 되어 그건 접었어요. 아프고 나서는 짜증이 늘었어요. 고집을 피울 땐 끝까지 가요. 이럴 때 애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막막해져요.

묻고 싶은 건 아이의 가족력이에요. 건강과 관련해서요. 세네 살 때 독감으로 열경기를 한 적이 있어요. 생애 첫 입원이었죠. 그러고 쭉 건강하게 자라다가 작년에 뇌종양 진단을 받았어요. 수술, 방사선, 항암치료 긴 과정을 마쳤어요. 기본 체력이 있어서 그런지 아이가 잘 버텨줬어요. 치료 협조가 잘 돼서 의료진들이 엄지척을 해줄 정도였죠. 기특해요. 어른보다 나아요.

아이는 수시로 가족의 사랑을 확인해요. 밀물과 썰물 같은 작업이 작은 가슴 안에서 이루어지나 봐요. 낳아준 엄마에 대해서 묻고 보고 싶다고 울기도 해요. 아이 생일에 초를 불면서 어딘가에 있을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도 아이 생일에 싱숭생숭한가요.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는 당신이 아이를 버렸다고 해요. 또 누군가는 당신이 아이를 지켜낸 거라고 해요. 저는 후자예요. 고마워요. 작은 우주를 잘 키워볼게요. 당신이 그랬듯 저도 지켜낼게요.

keyword
이전 19화가족 안에서 소속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