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가입할 때 들었다.
"3명 중 1명이 암에 걸립니다"
남의 일인 줄 알았다.
생각지도 못한 소아암 세계에 등 떠밀려 들어왔을 때
나는 못하겠다고 대자로 누워 울었다.
일곱 살에 소아암 환아가 된 둘째한테
"너 치료받을 거야?"라고 말도 안 되게 물었다.
새롭게 알게 됐다.
혈액종양 진료과가 있다는 거
암환자는 대머리가 되고 햇빛에 피부가 쉽게 탄다는 거
암세포는 뼈나 혀 같이 우리 몸 어디서든 생길 수 있다는 거
우리나라 소아암 의료체계가 부실하다는 거
심지어 수서역 가는 SRT 기차가 있다는 걸 2022년에서야 알았다.
새로운 지경이 열렸다기보다 나의 지경이 마구마구 찢어졌다.
나는 소아암 프로수발러로 거듭났다.
둘째는 짜증 반 씩씩함 반으로 치료받았고
첫째는 동생이 불쌍하다가도 엄마를 뺏긴 것 같아 미워했다.
남편은 자기라도 정신 차려야 한다며 힘든 티를 안 냈다.
나는 시시콜콜 말하기 어려운 상실감, 낙담이 순간순간 찾아왔고 하루살이로 살았다.
그럼에도 터널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 친절한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친절을 경험하며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고 느꼈다.
그들은 돕는 손길과 피할 길로 우리를 도왔다.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줬고 기꺼이 품어주었다.
우주가 응원했다.
또 어떤 터널을 만날지 알 수 없지만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 참 다행이다.
나도 친절한 사람이 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