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언니만 낳고 나는 안 낳았어?"
둘째를 내가 낳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둘째의 바람이 나의 바람이다.
친자녀라면 많은 것들이 명쾌하고 단순해졌을 텐데.
최근 나의 양육지침을 재정비했다.
'아이의 욕구와 감정은 헤아리되 경계는 분명히 가르치기'
그저께는 저녁에 상담이 있어 나가야 했다.
둘째는 짜증과 화를 쏟아냈다.
아파트 정문까지 소리가 들릴만큼 요란했다.
"엄마는 바보 멍청이야.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마. 나는 엄마 얼굴 보기 싫으니까!"
평소라면 "이게 진짜!!!" 맞불을 놓았을 거다.
초인적 힘을 발휘하여 둘째의 욕구와 감정이 뭘까 관찰했다.
엄마랑 같이 저녁을 먹고 싶었구나.
그런데 표현은 왜 저렇게 하지?
같이 있고 싶은데 엄마가 간다니까 화가 났던 거다.
욕구와 감정을 알고 나니 아이를 대하는 내 마음이 전보다 나았다.
바보 멍청이라고 욕할 때 나를 향한 비난으로 받지 않고 아이의 상태로 봤다.
여태까지 아이가 분노를 쏟아낼 때 상종하기 싫은 마음에 무시해 왔다.
아마 그런 나의 반응이 아이를 치닫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매번 어렵다.
상담자 엄마도 자녀양육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