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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둘 다 아빠가 없네"

by 공글이

지난 11월에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

호흡기 달았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날이었다.


아버님은 당뇨로 신장투석을 십 몇 년간 하셨다.

작년 여름부터는 거동이 어려워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다.

병원 신세를 진 후로는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셨다.


올해 추석에 가족들이 다 함께 병원 면회를 갔었다.

이것이 마지막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는지 우리는 가족사진을 찍었다.

그 뒤로 남편이 한 번 더 아버님을 찾아뵙고 눈물로 인사를 나누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날, 저녁에 호흡이 불안정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다시 전화가 왔을 때는 호흡이 괜찮아졌다는 소식이었다.

그러고 한 번 더 전화가 왔을 때 남편은 얼굴을 감싸고 울었다.


시댁은 아들만 둘이고 남편이 맏이다.

교회 다니는 집안인데 분위기는 절간이다.


처음 인사드리러 갔던 날이 기억난다.

아버님이 사진첩을 꺼내 보여주면서 선교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남편이 중고등학생 때 아버님은 일을 정리하고 중국에서 북한 선교를 하셨다고 한다.


남편의 할아버지는 북한에서 온 군의관이었다.

할아버지는 아버님이 국민학교 다닐 적에 돌아가셨다.

생전에 무척 엄하셨기 때문에 아버님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기뻐서 친구들에게 돈을 뿌렸다고 한다.

남편의 할머니는 어렸던 아버님을 친척들 손에 맡기고 혼자 서울에서 간장 장사로 떼돈을 벌었지만

친척들한테 야금야금 돈이 새면서 단칸방 신세가 됐다고 한다.


처음 인사 드리고 나오는데 아버님께서 슬리퍼를 신고 급히 따라 나오셨다.

내 손을 잡으시더니 “너는 우리 집에 며느리가 아니라 딸로 오는 거다”라고 말씀하셨다.

시댁에 갈 때면 아버님은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기억했다가 사놓으셨다.

남편과 주말부부였던 때 출산이 겹쳐서 산후조리가 고민이었는데 시댁에서 하라고 권한 것도 아버님이었다. 입양할 때, “혈연을 보고 싶은 마음이야 있지만 너희 뜻이 그렇다면 존중한다."

작은애가 항암치료받을 때, “00이가 우리 집에 오길 잘했다, 그렇지?” 눈물을 흘리면서 말씀하셨다.


장례를 치르고 와서 남편이 덤덤하게 말한다.

“이제 우리 둘 다 아빠가 없네”.


부부는 하늘 아래 아빠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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