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를 읽고(10월의 책)

사색적 삶

by 나비진

현재 우리 사회는 면역학적 시대(규율사회)에서 세계화의 시대(성과사회)로 변화했다. 면역학적 시대는 적과 타자가 명확하던 시대이다. 이질적인 대상이 나타나면 제거의 대상이 되어 공격하고 '~해서는 안된다'의 규율이 강했던 시대이다. 이 시대의 자아는 타자의 공격으로 파멸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피하려면 내 편에 서서 타자를 부정해야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적, 타자의 경계가 허물어진 시대이다. 낯선 것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닌 이국적인 것이고 여행객의 즐거움의 대상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수용한다. 타자를 위협이라 느끼지 않기 때문에 같은 것이 넘쳐 흐르게 되고 내 안의 저항력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을 '~ 할 수 있다'로 느끼기에 피로하고 내 몸의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자아는 성과의 주체로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해내어 성과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자기 자신과의 전쟁상태이고 자기 스스로를 착취한다. 이 상황에선 가해자와 피해자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주인 스스로 노동하는 노예가 되는 노동사회를 낳는다. 그 누구도 노동하라 명령하지 않았지만 개개인은 저마다의 노동수용소를 달고 다니고 자아가 포로이자 감독관이고 희생자이자 가해자인 셈이다.(p44) 성과에 대한 압박이 탈진 우울증을 초래하는 것이다.


내가 잘한다고 여겨온 것이 멀티태스킹이다. 자습을 시켜놓고 생기부를 쓰고 그러면서 애들이 뭐하는지 다 체크했기에 스스로 능력자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멀티태스킹이 문명의 진보가 아닌 퇴화이고 동물들에게서 발견되는 습성 즉 야만의 상태라고 이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야만의 상태...즉 긴장의 상태이다. 최근 나는 24시간 긴장상태인 나를 발견했다. 평소 모든 일을 할 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아닌 그 다음 일 또는 다른 일에도 주의가 가고 있는 과잉적 주의 상태인 것이다. 이러한 멀티태스킹 또한 일정한 시간 내에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성과를 내어야만 한다는 스스로의 압박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성과에 대한 압박,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은 것은 없다라고 믿는 이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작가는 '어떤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속도를 늦추고 중단하는 본능을 발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p48)라며 사색적 삶의 부활을 말하고 있다. 외부의 자극에 내맡겨진 시선을 내부로 돌리는 것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말하는 것이다. 잠시 멈춘다는 것은 행동이 노둥수준으로 전락하지 않고 그 행동이 주도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깊은 주의만이 눈의 부산한 움직임을 중단시키고 제멋대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자연의 손을 묶어둘 수 있는 집중상태를 만들어낸다 p35


사색적 삶은 아름다운 것과 완전한 것이 변하지 않고 무상하지도 않으며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다는 존재 경험과 결부되어 있다p43


눈의 부산한 움직임을 중단시키고 지금 현재 나에게 집중하는것이 깊은 주의이고 사색적 삶임을 ... 그리고 그것이 곧 명상이고 이 명상은 경이로움으로 연결됨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시 되어야하는 것이 내 생각. 감정을 모든 순간 순간 알아차리는 것이 아닐까...생각과 몸의 감각은 금세 사라져버리고 잘 눈에 띄지 않는 떠다니는 것이지만 깊이있게 들여다봐야 나의 저 깊은 비밀까지도 알게되는...


성과를 극대화하려는 과정에서 방해가 되는 부정성을 우리는 제거하며 살아왔다. 특히 공포, 불안, 두려움, 슬픔 등의 부정적 감정들도 마찬가지이다. 슬픔이 느껴지면 왜 슬퍼 라며 기쁠 수 있는 자극을 찾는다. 다른 부정적 감정들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부정성이 인간 존재를 생동하는 상태로 지탱해준다 말한다. 부정적 힘은 무엇인가 하지 않을 수 있는 힘,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다. 부정성을 수용한 뒤 잠시 멈추고 사색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이런 피로한 사회에서도 주체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이를 위해 선행될 것이 이완인 것 같다 이완은 내 안의 소리 또는 상대의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상태인 것이다. 내 안의 부정적 감정들까지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상태.. 부정적 감정을 내치지 않고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이완의 상태에서 나올 수 있는 힘이 아닐까 한다.


깊은 피로는 정체성의 조임쇠를 느슨하게 풀어 놓는다. p70


나는 그저 남을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또한 남이고 남이 동시에 나이기도 하다. 그 틈새는 아무도 그 무엇도 지배하지 않고 지배적이지조차 않은 친절한 공간, 무차별적 공간이다. P68


늘 밝에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앉아 있었고 말을 하기도 하고 침묵을 지키기도 하면서 공동의 피로를 즐겼다. p71


피로사회.. 내가 처음 이 책을 접할 때는 부정적 의미의 피로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작가가 말하는 깊은 피로는 이완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완은 혼자서 하는 것이지만 공동체 속에서도 가능하다. 개개인이 이완이 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공동체,,, 그 공동체 속 개인은 개개인 사이의 적당한 거리가 있으면서도 동시에 전체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하나속의 모두가 되는 것이다. 나는 피로하면 혼자 있어야 한다 생각했다. 이는 평소 공동체 속에서 '브레인 도핑' '신경향상' 즉 극도의 긴장상태에 있었개 때문이다. 그렇기에 공동체 속에서 떨어져 나와 타자를 부정하며 개인으로 있으려 한것이다. 각자가 다 이완된 상태라면 그 사이의 공간은 있지만 없는 것. 내가 남이고 남이 나인 상태... 그 상태에선 나 혼자 있어도 남과 함께 있어도 같은 상태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궁극적 도달지점이 아닐까.


코칭...원장님이 코치는 이완하는것이 가장 중요하다 했던말이 다시 한번 떠오른다. 이제는 사색적 주의를 통한 깊은 심심함의 묘미를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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