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남에서 깨달음까지>를 읽고..
나는 왜 나의 핵심욕구를 43년 만에 드디어 찾았는데 더 힘들까요? 마음이 편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 주변의 갈등들은 왜 더 부각되는 것일까요?라는 질문에 이 책을 추천받았다. 지금까지 나는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나는 내가 하는 말과 행동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나의 말과 행동들이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생각했다. 항상 위축되고 자신감이 결여된 상태였다. '나는 잘하는 것이 별로 없어', '나는 아는 것도 없어서 부끄러운 존재야' '사람들이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등 부정적인 생각, 인식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하나의 질문을 받았을 때 그 생각이 거짓임을 알게 되었다.
태아가 잘 크기 위해 부모는 무엇을 어떻게 해주어야 할까?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의 상태일 때 무엇을 받으면 잘 자랄 수 있을까?, 내가 부모라면 우리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주면 아이가 잘 성장할까?)
태아가 잘 크기 위해서 '안전', '돌봄', '사랑' 등 필요한 사항은 매우 다양하겠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은 '축하'였다. '축하'라는 나의 핵심 욕구, 기저 욕구를 찾았을 때 나는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며 깨어났다.
깨어남은 어쩌면 최초의 영적 입맞춤. 실상을 처음으로 대면하여 경험하는 진짜 입맞춤, 혹은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인지 드디어 진짜 모습을 알게 되는 진실의 피로연과도 같은 것이다. p37
축하받지 못한 존재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나 자신이 수치스러웠고, 축하받는 존재로 살기 위해 24시간 긴장하며 살았음을 알게 되었다. 40년 동안 사로잡혀 있었던 거짓된 자아관념을 벗어던지고 진짜 나의 모습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 순간 슬픔, 기쁨, 안쓰러움, 분노 등 정말 다양한 여러 가지 감정들이 표출되었고 "너는 이 세상에 정말 잘 태어났고 모두가 너의 탄생을 축하해주고 있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이러한 다양한 감정들을 온전하게 만나고 싶었던 그 시점에 나의 주변엔 일들이 터졌다.
인간 세상을 뒤덮고 있는 무수한 삶의 조건은 좌충우돌하는 우리 존재의 한가운데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는 수많은 상황과 사람들과 연루되어 있으며, 사랑하는 이성과 친구와 아이들 그 밖의 온갖 것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p60
그렇지.. 나는 나 혼자가 아니었지... 나의 주변에 있는 수많은 관계들.. 그 관계들 속에서의 갈등을 잊고 있었다. 수면 아래에 있던 갈등이 수면 밖으로 올라왔다. 내가 깨어남과 동시에...
깨어남에 따르는 지복상태가 있을 수는 있지만 사실 그것은 깨어남의 부산물이지 깨어남 자체는 아니다. 그 부산물을 좇았다니는 동안 우리는 진짜를 잃게 된다. p32
나는 깨어나면 지복상태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상태, 충만한 상태가 곧 깨어남의 상태와 같다고 여겼던 것이다. 나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야 하고 행복하고 편안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나의 에고가 만들어낸 하나의 조건화일 뿐이었고 상상 속의 나일뿐이었다. '나는 편안해야 하는 사람이야. 나는 행복해야 하는 사람이야'라고 하는 내가 나에 대해 만들어낸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나의 에고는 나의 영(진정한 본성)에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깨어남이라는 것은 나를 거짓으로 보지 않고 솔직하게 보는 것이었다.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미혹에 빠뜨리고 있는지, 자신을 어떻게 꿈속 상태의 중력장으로 다시 끌고 들어가는지, 우리 자신을 어떻게 분리시키는지를 기꺼이 직시하고자 하는 태도이다. 깨어남의 관점에서 볼 때는 모든 것이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p65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작가의 말은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깨어남의 과정은 알아차림의 과정 즉 나의 모습, 생각, 행동 모든 것들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엉망진창인 모습을 그냥 바라보는 것.. 그것이 깨어남의 과정인 것이다.
'나는 축하받지 못한 존재이다'라는 신념 속에서 깨어 나왔을 때 남편과 우리 부모님과의 갈등이 터져 나왔고 각각의 사람들이 나에게 하소연을 하고 분노를 표출했다. 그리고 깊은 곳에 덮여 있던 나와 남편과의 갈등.. 그 갈등이 수면 위로 고개를 들었다. 그 갈등들 속에서 나는 분노와 원망과 억울함과 다양한 감정을 느꼈고 그러면서 '나는 도덕적인 인간이어야만 해.', '나는 고상해야만 해' 등의 다른 사람의 시선, 사회의 관습에 사로잡힌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 속의 나는 갈기갈기 찢어져 상처들로 얼룩진 여린 나였다. 타인이 나에게 준 것이 아니라 나와 사회가 만든 신념들이 나에게 준 상처들이었다. 그런 나를 어루만져 주면서 그 신념들로부터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남편에 대해서도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온 세상이 깨어나게끔 허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온 세상이 깨어나게끔 허용하는 길 중 하나는 온 세상이 자유롭다는 것 - 모든 이가 자유롭게 본모습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P91~92
지금까지 나는 남편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해야 했고 그것을 요구했다. 내가 요구한 바를 들어주냐 그렇지 않냐에 따라 내 기분이 달라졌다. 내가 남편보다 상의 위치에 있다 생각했지만 그 반대였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감정은 내가 아닌 남편의 결정에 좌지우지되고 있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나의 감정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그들의 인정, 그들의 결정에 따라 바뀌고 있었다. 목줄을 내가 아닌 타인에게 넘겨주며 살았던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내 말을 들어줘야 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차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상대는 그냥 그 본모습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그들의 자유로운 본모습을 인정해 주는 것이 결국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게 되는 길임을 알게 된다. 남편을 아이를 내 뜻대로 되게 하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 그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고 그것이 나를 솔직하고 진실되게 직면하는 길임을 인식한다.
나만의 깨어남이라는 것은 없다. '나만의'이라는 말은 분리를 내포하고 있다. p18
나는 깨어남을 나만의 깨어남이라 생각했다. 나의 과거로부터 빠져나와 나다움을 찾는 과정에서의 깨어남. 그리고 그 깨어남은 나니까, 나이기 때문에, 내가..... 하는 것이라 여기며 자만에 빠졌다.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뛰어나... 나는 과거를 회피하지 않고 만나는 과정을 치열하게 했기 때문에 이런 통찰과 깨달음이 나에게 온 것이야...라고 하는 교만함, 우월함, 모든 깨어남은 내가 한 것이라 믿었다
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려는 무리를 만났을 때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 여기서 예수님은 나뉨이 없는 경지로부터 말하고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돌을 맞는 여인보다 더 나은 존재로 보지 않았다. P111
예수님을 생각하니 정말 스스로 우월하다고 느낀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생각.. 그것을 믿지도 쫓아버리지도 않고 그냥 바라만 보는 것 또한 수련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임을 알게 된다. 나뉨이 없는 관점으로 행동할 때 우월감이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우월감을 알아차리게 된다면 그냥 그 우월감이 일어나는 것을 그대로 인식하라 말하고 있다.(P110) 깨어남이 일어났을 때 우월감으로 도취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다고... 우월감을 없애려 노력하면 오히려 그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우월감이 느껴질 때에는 그것이 사실이라 믿지 말고 그냥 그 생각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일일 것이다. 사실 나의 에고는 '내가 남편보다 더 뛰어나' '내가 남편보다 더 우월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남편이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오히려 진짜일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남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는 길이 스쳐 지나가는 깨어남에서 머무는 깨어남으로 건너가는 여정이 아닐까 한다.
작가는 깨어남을 세 가지 차원에서 나누고 있다. 마음(생각)의 깨어남, 감정의 깨어남, 그리고 존재의 깨어남이다. 마음 차원에서의 깨어남은 생각, 신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갈등을 일으키는 생각을 품고 있다거나, 마음 한쪽에서는 '이렇게 해야 해'라고 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하는 생각(P159)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 생각들은 아무런 진실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생각이 사실이라 믿지 않고 그냥 완전히 포기해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말한다. 두 번째 감정 차원에서 깨어남은 분노나 두려움, 외로움 등의 감정 자체가 나가 아님을 알게 되고 이해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감정은 보통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생각들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감정 아래에 깔려 있는 세계관을 찾아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두려움이란 감정 자체가 우리 스스로 자신을 한정된 존재, 분리된 존재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감정이다. 그래서 마음 차원과 감정 차원으로부터 깨어난다면 살고 죽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스스로가 생명 그 자체로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아랫배 차원의 깨어남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말한다. 내어 맡김과 내려놓음 그것을 통해 죽음으로부터도 완전히 자유로워지면서 깨어나는 것이다.
2024년 9월의 깨어남은 스쳐 지나가는 깨어남임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나는 축복받지 못한 존재다"라는 하나의 신념으로부터 잠시 깨어난 것이다. 요즘 나는 상대를 여전히 내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나, 상대의 말과 행동에 감정적 상처를 받는 나, 예전과 같은 방식의 공격과 비난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오는 외로움의 감정을 자주 만난다. 또한 그런 나를 알아차리고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은 그 말과 행동, 생각을 알아차리고 그것은 진실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계속 말하며 나의 감정을 추스른다는 점이다. 모든 감정은 그 감정 아래 깔려 있는 세계관에서 온다는 작가의 말을 기억하며 나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엉망진창인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다 보면 언젠가.. 모든 생각, 감정, 존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깨달음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