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로 가는 길

제5화 치열했던 나의 항암 일지

by 나비진

의무를 다하십시오. 그러나 그 결과는

당신에게 그 의무를 지은 분께 맡기십시오.

-탈무드


항암 하는 동안 내가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어준 글귀다. 항암과 방사... 를 견뎠던 그 6개월 동안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의무를 최선을 다해 이행하고 있었다. 그 이후의 결과까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그냥 내게 주어진 그 의무를 얼마나 잘 수행할지에 대해서만 고민하던 시기였다.


수술을 하고 2주 뒤 결과를 들으러 갔을 때 나의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호르몬 양성이기를 그리고 온코 검사를 통해 항암만은 피하길 기도하고 기대했다. 하지만 나의 기대와는 달리 교수는 유방암 중에 가장 악성인 삼중음성 유방암임을 말하며 항암을 위한 종양내과 예약을 잡아 주셨다. 삼중음성은 크기가 작더라도 세포 독성 항암을 무조건 해야 하는 성질의 암이었다.


2021년 6월 2일 첫 항암을 시작했다. 첫 항암을 잊을 수 없다.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글을 유방암 카페에서 읽고 물 1.5리터를 준비해 갔다. 4시간 동안 항암약과 수액 2리터를 맞으면서 물을 계속 마셨다. 맞는 동안에도 뭔가 힘들었었고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 있었다. 물 4리터를 몸에 넣었는데도 소변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배가 빵빵해지며 온몸이 붓고 짓누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녁이 되자 몸이 너무 많이 붓고 숨을 쉬기가 힘들어 결국 응급실로 가게 되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소변이 많이 나왔고 확 괜찮아진 느낌이 들었지만 응급실에 갔기에 또 수액과 위진정제를 맞고 12시 넘어 집에 도착했다. 나의 첫 항암은 정말 공포에 가까웠다. 이러다가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3주에 한 번씩 4회를 했다. 항암하고 일주일 힘들고 일주일 좀 괜찮아지고 일주일 이제 회복이 되었다 싶으면 다시 가서 항암을 하고 그 루틴을 반복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만보를 걸으려고 노력했다. 그때를 돌아보면 몸이 조금만 괜찮으면 항암을 안 할 때만큼 걷고 다니고 했던 것 같다. 항암을 하면서도 잘 먹고 열심히 걷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의무를 다하고 결과는 내려놓으라는 말을 계속 되뇌었지만 사실 불안과 두려움에 갇혀 살았다. 물이 말라 가는 곳에 있는 물고기처럼 곧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곳을 나가려고 팔딱팔딱 뛰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어느 한 곳이 아프면 전이라는 걱정과 불안에 휩싸여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나.. 내 마음속에 죽음이라는 번뇌의 화살이 박혀 불안과 걱정이란 동굴 속에 갇혀 울고 있는 무기력한 내 모습이 어리석여 보였다. 암인데... 당연히 걱정하고 불안할 수 있는데 그런 나를 보면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럴 시간에 책을 읽고 걷고 명상을 하며 불안을 낮춰야지 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싶었고 현재의 삶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고 싶었고, 돈에 대한 욕심도 내려놓고 싶었고 집착에서도 내려놓고 싶었다. 그래야지 내가 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슴으로 감사함과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 하니 머리로 방법을 열심히 찾았다. 그 방법이 항암과 방사를 하면서도 열심히 걷고 아이와 함께 가까운 곳에 놀러도 가고, 책을 읽으며 와닿은 구절을 적는 것이었고 그렇지 못하고 휴대폰만 한 날에는 하루를 반성하며 마무리했다.


나는 아픈 나를 수용하고 있었을까? 지금 이 시간은 나에게 어떤 시간일까? 항암 방사가 끝나면 편안해질까?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장석주 <대추 한 알>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많은 의문을 든 이 시기에 마주한 장석주의 <대추 한 알>이란 시는 나에게 어느 정도 답을 주었다. 나의 불안, 두려운 마음, 병든 내 모습을 스스로 안아주며 태풍, 천둥, 벼락의 시간을 견디고 나면 대추가 붉어지듯 나 또한 성장해 있을 거라고.... 태풍과 같은 이 시간을 견디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나를 칭찬하고 싶다. 장하다.. 그 긴 시간 견뎌온 나.. 잘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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