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은 실제로 푸른 것보다 묘사할 때 더 푸르게 된다”는 명대사를 남긴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대신 우린 버스로 세비야에서 6시간을 달려 포르투갈 국경을 넘었다.
이베리아 반도 서쪽 끝을 향해 달리는 속도만큼 뒤로 스치는 올리브 나무들이 차량의 번호판을 떼어버릴 듯쫓아와 포르투갈의 대중 음식 <바칼라우> 옆에 병으로 서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 아마데우 푸라도가 연인 스테파니에게 실연을 당하고 새벽 동이 트기 전에 도착한 절벽이 아마도까보다로까 절벽이 아니었을까?
땅끝 마을로 유명한 이곳엔 포르투갈 대표 서사 詩人 <루이스 드카몽이스>가 노래한 “땅이 끝나고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우리나라 섭지코지와 비슷한 화강암 절별엔 슬프도록 파란 바다와 슬픔을 집어삼킬 듯 휘몰아치는 강풍이 관광객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마치 스테파니가 아마데우 푸라드를 밀어낸 것처럼.
난간을 잡고 파도의 끄트머리를 쫒으니 주인공이 탔던 승용차가 140미터 절벽아래로 떨어지는 장면과 오버랲 되었다.
“우리가 지나온 생의 특정한 장소로 갈때 우리자신을 향한여행도 시작된다”는 명대사를 기억하며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을 따라 멍 때리고 있는데 동상이몽. 딸은 남자 친구와 영상통화를 마치고 다음 목적지로 가자고 성화다. 넌 220 볼트, 난 100 볼트. 우린 서로 감성의 코드가 맞지 않는 콘센트다.
여심을 사로잡는 포르투갈 소도시 <오비두스>
EBS 테마기행에 자주 나오는 오비두스(성체) 소도시 마을은 1210년 아폰소 왕이 결혼 선물로 이 성벽에 빨간 리본을 달아 왕비에게 선물했다. 그 후로 16세기까지 많은 왕들이 청혼할 때 도시를 선물로 주는 전통이 이어졌고 왕비들은 선물 받은 도시들을 소중하게 관리했다고 한다.
다양한 특산품들로 즐비한 좁은 골목을 따라가면 산티아고 성당을 개조해 만든 서점이 보인다. 가톡릭 신자보다 더 많은 양서들이 2층까지 들어찬 모습이 왠지 씁쓸하게 느껴졌지만 그 텍스트의 향기가 포도주와 성체처럼 영혼을 치유해 주는 공간이 되길 기도했다.
꽃화분을 내건 가게에서 파는 에그타르트를 보니 오래전 마카오에서 시식만 하고 < すみません>하면서 사지않고 나왔던 기억이 떠올라 새어 나오는 웃음을 초콜릿 잔에 담긴 체리 와인으로 입을 막았다.
중세 모습을 간직한 골목엔 오고 가는 마차들이 시간을 이동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바닥을 성체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보도블록은 많은 인파들로 마모되 갤러리들을 자주 미끄러 뜨렷다.
선물로 닭모양의 와인 코르크 마개를 산 후, 집시들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우린 파티마 성지로 발길을 돌렸다.
가톨릭의 성지, 파티마 대성당
에피파니!
파티마는 프랑스 루르드와 함께 3대 성모발현 성지로 매년 400만 명의 순례자들이 찾아오는 세계적인 성지다.
광장 왼쪽에 보이는 하얀 대리석 바닥은 “순례의 길”로 끝까지 완주하면 아픈 곳이 낫는다고 믿어간절함을 안고 온 이들이 고통을 참으며 무릎을 끌고 가는 모습에 성호를 그었다.
대형 십자가를 비친 석양이 제대에 봉헌된초에 불을 댕기면 파이프 오르간을 따라 부르는 성가 소리로 저녁 미사가 시작된다.
봉헌초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나에게 성체를 나누듯 촛불을 건네준 금발머리 노인과,언어가 통하지 않는 흑인과백인은 모두 하나가 되었다.
성스럽다는 뜻의 산타마리아 호텔
광장옆에 위치한 4성급 산타마리아 호텔은 성지답게 횡당보도 앞에 철사로 구부려 놓은 조형물도 가톨릭의 메타포임을 느낀다.
호텔문을 열면 가운데를 둥글게 중정으로 만든 로비에 성화들이 가득해 유명 미술관에 온 느낌이다.
조용히 흐르는 칸타타 또한 이곳이 파티마 성지임을 알렸고, 식당 앞 빨간 수탉 조각상이 퀄리티 높은 조식을 기대하라며 잡고 있는 케리어를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어 넣었다. 컨디션 높은 룸에는 광장뷰로 커피포트가 있어 4유로의 컵라면물을 아낄 수 있었고 피곤한 몸을 담글 수 있는 욕조가 있어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