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아내의 과거

by 유미경


아내의 과거




“이 여편네, 오늘 들어오기만 해 봐라.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놓을 테니까.”

일수는 험상궂게 씩씩거리며 아이들에게 사발면을 끓여주기 위해 냄비에 물을 붓고 가스레인지를 켰다.

‘그래, 오늘은 정말 용서 못한다. 봐주는 것도 한도가 있지!’

밤낮없이 나돌아 다니며 아이들 밥도 안 챙겨 주고 여덟 시가 다 되도록 들어오지 않는지 그런 아내를 생각하면 정말 살맛이 나지 않는다. 성질대로 했으면 집안에다 불이라도 싸질러버리고 죽어버렸으면 속이 시원하겠다. 공장에서 뼈 빠지게 일을 해도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고 나면 거기에 한 달 동안 매달릴 처자식의 눈동자가 생각나 사추리 사이로 힘이 쑥 빠지곤 했다. 부모로부터 땡전 한 푼 못 물려받고 굶다시피 모은 돈으로 결혼 4년 만에 십삼 평 아파트 하나 겨우 차지하긴 했지만 남아있는 것은 작은 행복마저 언제나 위협하고 있는 지긋지긋한 가난의 꼬리였다.

“아빠, 배고파 밥 줘.”

오늘따라 아이들은 아비를 말려 죽이려고 작정을 했는지 야근하고 잠 좀 자려고 누워 있는 일수의 발을 짓밟고 까불대다가 다섯 시도 안 됐는데 저녁을 달라고 성화였다.

‘지 새끼들도 제대로 간수 못하면서 배우긴 뭘 배워?’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자존심과 열등감이 일수의 목을 옥죄이며 달려든다.

“아빠, 침 나와 빨리 줘.”

사발면에 끓는 물을 붓고 밥공기로 눌러 놓은 채 멍하니 앉아있는 일수를 재촉하는 아이들의 목구멍 속으로 군침 넘어가는 소리가 안쓰럽다. 일수는 밥공기를 들어내고 반쯤 달라붙은 사발면의 종이 뚜껑을 듣고 젓가락으로 휘휘 저었다. 그리고는 밥 한 덩이씩 말아 아이들 앞에 각각 놓아주었다. 아이들은 사발면 그릇이 놓아지기가 무섭게 누가 빼앗아 먹기라도 하듯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서툰 젓가락으로 꼬물거리는 라면 가락을 입속으로 연신 밀어 넣고 있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참으로 대견하다. 자식들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이 가장 보기 좋다고 하더니만 조막만 한 것들이 언제 저렇게 커서 혼자서들 젓가락질을 하고 있나 생각하니 신기하고 흐뭇했다. 일수는 아이들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 주고는 방으로 들어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잠을 청했다. 하지만 한 번 달아난 잠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이놈의 여편네는 전화도 못하나?”

잠이 오지 않자 가라앉았던 울화통이 또다시 고개를 반짝 치켜든다. 그때 대답이라도 하듯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움직이는 것도 귀찮아 이불로 귀를 틀어막고 돌아누웠다. 하지만 벨 소리는 더욱 크게 일수의 고막을 쥐어 흔든다.

“여보세요, 거기 주인마님 계세요?”

코맹맹이 소리로 목소리를 억지로 꾸미긴 했지만 틀림없는 아내의 음성이다. 순간 일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야! 장난질하지 말고 빨리 집구석에 들어오기나 해라. 도대체 무슨 지랄하느라고 여태까지 안 들어오고 전화질이야 전화질은!”

“…”

“들어오기 싫으면 들어오지 마. 나도 더 이상은 너와 살기 싫다. “

“저-제부, 저예요. 미진이 엄마 어디 갔어요?”

순간 일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수화기 속의 주인공은 처형이었던 것이다. 아내와는 다섯 살 차이인데 얼굴도 비슷한 데다 목소리까지 닮은 처형은 가끔씩 장난 전화를 잘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일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제보라며 끔찍이도 자신을 위해주던 처형에게 모든 치부를 드러낸 것 같아 참으로 씁쓸해졌다. 처형은 같은 시에 살면서 아내가 아이들을 낳을 때마다 힘든 산바라지를 다 해주었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부모처럼 나서서 도와주곤 했던 것이다. 처형에게 미안한 만큼 아내에 대한 분노는 더욱 커져갔다.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일수는 잔뜩 긴장을 한 채 수화기를 들었다.

“거기 김희영 씨 댁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수화기 속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굳은 목소리에 머리끝이 쭈삣 섰다.

“네, 그러면 김희영 씨 부군 되십니까?”

“그런데요?”

“여기 병원인데 급히 좀 와 주셨으면 합니다. 김희영 씨가 교통사고를 당해 좀 다쳤습니 다.”

당황한 일수의 손에서 힘없이 수화기가 떨어졌다.

“이놈의 여편네가 그렇게 싸돌아다니더니 기어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구나.”

교통사고를 당해 고통받고 있을 아내에 대한 염려보다 울화통이 먼저 잽싸게 자리를 차지한다. 그렇지만 남편 된 입장에서 안 가 볼 수도 없고 해서 아이들을 대충 씻겨 자리를 해주고는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며 돌아다니다가 교통사고까지 당했는지 생각만 해도 욕지끼가 올라온다. 요즘 불륜의 관계를 맺은 것들이 남의눈을 피해 밀회를 즐기다가 사고를 당해 죽은 것을 일수는 뉴스로도 듣고 주위에서도 많이 보아왔다.

‘아예 콱 죽어버리기나 하지. 그래도 목숨은 살아있는 모양이지.’

일수의 머릿속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아내의 불륜 현장을 부채질한다.

작년 여름부터 아내의 해동이 수상했다. 결혼 6년이 넘도록 화장 한 번 하지 않고, 부부동반 회식 때도 방구들만 지키고 있던 아내가 외출을 자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핑계는 자신의 내적 성장을 위해 취미생활도 하고 못다 한 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보지 않은 일수로선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나돌아 다니던 아내가 석 달 전부턴 더욱 이상해진 것이었다. 외출도 잦아지고 외출 시간도 길어지고 또 혼자서 한숨을 내쉬며 가끔씩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일수는 가슴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차리고 나가면 그 미모에다 어디로 보나 처녀 같은 아내에게 다른 남자의 관심이 없을 리 만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요즘따라 일수가 받을 때마다 끊기는 전화가 이틀이 멀다 하고 걸려오고 있는 터였다. 일수는 아내에게 남자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더구나 결혼한 후 지금까지 처형을 제외하고는 장인 장모는커녕 처갓집 식구들은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그것은 모두 아내가 자신을 업신여긴 처사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게 되었다.

‘얼마나 나를 무시했으면!’

불같은 일수의 가슴속에 비수 하나가 번득였다. 그리고 자신이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새끼들이 불쌍하고 소문이라도 퍼지면 회사에 가서 동료들한테 마누라 간수도 못한 병신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 고통스러웠다. 이런저런 생각에 분노가 극에 달한 일수는 택시에서 내려 단걸음에 왈칵 병실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섰다. 병실 안에는 어느새 연락을 받고 달려왔는지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을 한 처형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결혼식장에서 딱 한 번 보았던 장인도 눈시울이 붉어진 채 서 있었다.

“아니, 장인어른 그 먼 곳에서 어떻게 이처럼 빨리 오셨습니까?”

“비행기 타고 왔네, 이 사람아.”

씁쓸하게 웃는 장인어른의 모습이 석연치가 않았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아내는 다리에 깁스를 한 채 잠이 들어 있었다. 그 곁에는 초등학교 3~4 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애 둘이 어깨를 들썩이며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제가 전화를 드렸습니다.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지만 한 달 정도 입원하면 괜찮아질 것입니다.”

두 눈에 새파란 불꽃이 번득이는 일수를 바라보며 젊은 의사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때 울고 있던 아이들이 고개를 반짝 치켜들며 일수를 쳐다본다. 검고 큰 눈, 귀염성 있는 얼굴들이 퉁퉁 부어 있었고, 쌍둥이처럼 닮은 두 얼굴에선 아직도 눈물이 샘처럼 솟아나고 있었다. 순간 일수의 가슴이 훅 막혀왔다. 아이들의 눈빛이 아내를 닮고 있었던 것이다.

“희영 씨와는 어릴 때부터 한집에서 살았습니다.”

일수의 의혹에 선풍기를 들이대면 의사가 침묵을 깼다.

“뭐, 뭐라고요?”

일수는 소리치며 의사를 바라보았다.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의 의사는 울고 있는 자매의 눈빛과 흡사했다.

‘그럼, 내 추측이 틀림없단 말인가? 저 아이들과 아내와 그리고 이 의사와의 관계는?’

일수는 구원을 요청하듯 창문 곁에 서 있는 장인어른과 눈물만 찍어내고 있는 처형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보았지만 자신만 더욱 비참해짐을 느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열 살짜리 언니의 손을 잡고 희영인 천사의 집 문을 들어섰습니다.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한날한시에 돌아가시고 피붙이라곤 세상에 딱 둘 뿐이었던 자매가 갈 곳은 고아원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난히 자존심이 강했던 희영인 고아라는 사실을 숨기길 원했고 우리 모두 그런 희영이의 안타까운 소원에 공범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석 달 전에 천사의 집엔 새로운 자매가 나타났습니다. 그 아이들에게서 희영인 25 년 전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그들의 후원자가 된 것입니다. 저 애들이 그 자매들이고 오늘이 바로 동생 경진이의 생일입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아이들과 보내고 천사의 집으로 향하다 음주 운전자의 차에 치였던 것입니다. 너무 신이 났던 경진이가 차가 오는 것도 모르고 건너려는 것을 희영이가 재빨리 감싸 안고 대신 다친 것입니다. 참, 그리고 저분께서 우리들을 보살펴주신 원장님이십니다.”

그때까지 창밖만 내다보고 있던 장인어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물기를 머금은 장인어른의 눈빛도 젊은 의사의 시린 눈빛을 닮고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짧은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