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우임 Feb 16. 2022

시어머니의 대구탕

이런 날씨엔 뜨끈한 대구탕이 생각난다

 텔레비전을 켜니 어느 프로그램에서 대구 잡이가 한창이다. 대구가 올 해는 만선이다. 시원한 대구탕이 입맛을 다신다.

 스무여섯 살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고작 라면밖에 끓일 줄 모르는 어설픈 새색시는 시어머니가 음식을 만드시면 옆에서 보조역할만 했다. 자유로운 친정집과는 달리 시댁은 전형적인 유교 보수적인 집안이었다. 남자 밥상을 따로 차렸다. 어머니는 늘 손수 국을 뜨셨다. 

 그해 겨울은 추웠고 예년과 달리 대구 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구가 품귀였다. 귀한 만큼이나 대구 가격도 상당했다. 출가한 시누이 네를 포함하여 객지에 있는 자식들이 시댁에 모였다. 시어머니는 비싸더라도 커다란 대구 한 마리를 사시는데 지갑을 여셨다. 냄비 솥에 무, 대파, 갖은양념을 넣고 통통한 대구를 살포시 얹었다. 국물이 뽀얗게 우려 나면서 냄새가 기가 막혔다. 여느 때처럼 시어머니께서 손수 국을 대접에다가 퍼셨다. 거실로 큰 상을 내다 놓았다. 큰 시누이가 “올케도 같이 먹게 밥이랑 국 들고 와라.” 나의 대접에 국을 퍼기 위해 냄비 뚜껑을 열었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냄비 속에는 대구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고 무 몇 조각만 둥둥 떠 있었다. 시어머니가 사람 인원수를 헷갈리어 국 대접의 수를 잘못 세었다고 여겼다. 나는 조용히 밥그릇만 퍼 담아 비좁은 상의 모퉁이에 앉았다. “야야, 국은 와 안 떠 오노? 대구탕은 원래 국물이 시원하고 좋은 거다. 냄비에 한 그릇 남아 있으니 떠 와서 먹어라.” 시어머니의 실수가 아니라는 걸 안 순간 나는 설움이 밀러 와서 간신히 참으려고 밥숟갈을 입안에 밀어 넣었다. 대구탕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어린 마음에 나는 맘을 다쳤다. 며느리를 딸로 여기신다는 시어머니의 말씀에 이중성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하나가 틀어지기 시작하니 내 눈엔 시댁의 문화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남자 여자 밥상 따로 차리는 것에 대해 건의를 했고, 어렵게 겸상의 허락을 받았다. 시어머니는 여전히 국은 본인이 직접 뜨셨다. 건더기 없이 국물만 출렁이는 국에 나는 더 이상 토 달지 않았다. 

 작년에 시어머니께서 별세하셨다. 고령의 나이에 담석증 수술 후 패혈증 쇼크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시어머니를 선산에 모시고 내려와 우리들은 어머니 집을 정리했다. 방 한쪽에는 벗어 놓으신 버선도 그대로 놓여 있었고, 드시다 남은 된장찌개도 가스레인지 위에 고스란히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생선들이 까만 봉지에 종류별로 가득했다. 시어머니는 이 많은 생선들을 왜 이렇게 넣어두신 걸까? 혼자서 잘해 드시지도 않으셨으면서. 그러고 보니 시어머니는 자식들이 왔다가 올라갈 때, 빈손으로 보내신 적이 없으셨다. 큰 아들네, 작은 아들네, 시집간 큰딸, 작은딸 주려고 평소에 집 앞 어판장에서 산 생선들을 봉지에 나눠 담아 보관하셨다. 

 시어머니에게 나는 착한 며느리가 아니었다. 마누라가 예쁘면 처가 말뚝 보고도 절을 한다고 했다. 여자도 마찬 가지다. 남편이 잘해야 시댁에 전화를 한 통 더 한다. 신혼 초부터 가정적이지 못 한 남편 탓에 맘고생 한 나는 시댁 어른들이 편치 못 했다. 친정과 너무 다른 분위기 탓에 시댁에서는 속의 말도 하지 못하고 살았다. 시댁 부모님들이 잘해주셨지만 나는 맘을 온전히 열지 못 했다. 시어머니의 냉장고를 정리하면서 무언가 목구멍에서 밀러 왔다. 대구탕의 그날과는 다른 울음이었다. 내가 어리석었다. 그날 시어머니의 국 대접에도 대구 생선 건더기는 없었다. 나는 시어머니의 국 대접은 볼 생각도 못했다. 대구 살 조각을 시아버지, 큰아들, 작은아들, 백년손님 사위, 출가한 큰딸의 대접에 담아내시고 나니 어느새 밑바닥을 드러낸 솥만 남았을 것이다. 며느리에게 미안해서 아마도 대구탕은 국물이 맛나다고 운운하셨을 것이다. 시어머니의 본심이 무엇이었든 간에 나는 지금 시어머니가 고부관계가 아닌, 같은 여자로서 애잔하다. 아들 녀석이 군 제대 후 인사차 할머니 집에 간 적이 있었다. 치킨을 한 마리 주문해서 먹는데 시어머니가 맛나게 몇 조각을 드셨다고 했다. 아들이 놀라운 표정을 지으니, 시어머니께서 “할머니가 사실은 육고기를 좋아한다. 너희 할아버지가 평생 육고기를 멀리 하시는 바람에 먹을 일이 없었다.” 시어머니도 이 집안에 시집 온 며느리가 아니었던가. 나는 시어머니의 고단함 삶은 보지 못 했다. 시어머니의 평생 살아오신 그 길을 나는 왜 이해하지 못했을까 반성해본다. 시댁에서 내가 하고픈 말을 삼키듯, 시어머니도 분명 며느리인 나에게 하고픈 말을 삼키셨을지도 모른다.

 시장에 가서 대구 한 마리 사서 대구탕을 넉넉히 끓여야겠다. 시어머니가 계셨다면 양푼에 한 대접 떠 드리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색동 고무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