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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임 Feb 15. 2022

색동 고무신

신발 복이 터졌다

 몇 년 전 친구 하나가 이상하게 생긴 신발을 신고 왔다. 외국에서 거주하는데 휴가차 한국에 들어오곤 한다. 고무신처럼 생긴 신발에 구멍이 송송 뚫린 볼품없는 신발이다. “촌스럽게 무슨 이런 신발을 신고 다니니?” 친구들이 한 마디씩 거드니, 일 년 내내 여름이고 우기가 있는 나라에서는 아주 실용적이고 편리하다고 애찬을 한다. 거기다가 소위 이름 있는 브랜드이며 가격 또한 웬만한 운동화보다 비쌌다.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고무신이다.     

 유년시절, 엄마 따라 외가에 놀러 가곤 했다. 전라도 영광군의 버스가 하루에 두 번 다니는 외진 시골마을이다. 부산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면 저녁에나 당도할 만큼 멀고 교통편이 열악하다. 엄마의 집안 문중 사람들이 절반 이상 거주하며, 총 가구 수가 30호도 채 되지 않은 조그마한 촌이었다. 이런 동네에서 부산으로 시집 온 우리 엄마는 개천의 용이었다. 너 댓살 꼬마인 나는 아침에 일어나 마루로 나가 앉아 있는 걸 좋아했다. 마당에서 모이 쫓아먹는 닭이며, 외양간 송아지 보는 재미가 솔솔 하다. 나지막한 담벼락에 박들이 일렬로 주렁주렁 있는데, 이 구경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호박, 조롱박도 아니요. 이건 사람 머리통 박이다. 동네 아이들은 부산에서 아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죄다 몰려와 담벼락에 머리를 쭉 빼서 내가 방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나의 등장과 함께 애들은 쑥덕거린다. “으매, 아그야, 거시기 부산 말 좀 싸게 해 보라니까.” 덩치 큰 사내아이가 한 마디 툭 던지면, “뭐라고 하니, 우리 엄마한테 일러 뿐데.” 하면서 나는 울음보를 터트린다. 부엌에서 외할머니가 부지깽이 들고 나와 귀한 손녀 울린다고 애들을 나무라도, 그들은 꿈쩍 않고 나를 신기해하며 구경만 한다. 그들이 아침 댓바람부터 와서 구경하고 싶은 건 나 말고도 또 하나 더 있다. 토방에 놓인 운동화이다.     

 시골에서는 운동화가 귀했고 운동화를 신는 애들도 없었다. 모두 고무신을 신었다. 도시에서 여자아이가 신고 온 운동화는 신문물이다. 이모 손잡고 마을을 돌아다니다 동네 어귀 당산나무 아래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마주친다. 아이들이 나에게 다가와서는 운동화를 한 번 만져보자고 한다. 나는 선심 쓰듯 허락한다. 애들이 우르르 달러 들어 내 운동화를 요리조리 만진다. 내 또래의 여자아이에게 내가 운동화 신어 봐도 된다고 하니, 치아가 다 드러나도록 웃으며 발을 조심스레 운동화 안에 넣는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신어보라고 했다. 사이즈에 맞지 않는데도 발가락을 최대한 오그리고 모아서 돌아가며 내 운동화를 신어 본다. 이것은 내가 동네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한 일종의 신고식인 셈이다. 논두렁 밭두렁으로 아이들과 놀러 다녔다. 길 가에 매어 둔 염소를 무서워하면, 나를 위해 염소 줄을 당겨 통로를 만들어 준다. 수숫대 꺾어서 제일 맛난 부위를 나에게 내민다. 몰래 참외 따와서 흙을 쓱쓱 옷에 문지른 뒤 먹어보라고도 한다. 진흙 길을 건널 땐, 내 운동화에 흙이 묻을까 봐 나를 교대로 엎기도 했다. 촌아이들과 매일매일이 즐겁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토방에 놓아둔 운동화가 없어졌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외가 식구들은 온 동네를 샅샅이 뒤지고, 아이들은 용의자가 되었다. 어른들이 추궁해도 운동화를 가져간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외할머니가 읍에서 고무신을 사 오셨다. 알록달록 색동 고무신이다. 오목하게 파인 구멍으로 발을 집어넣으니 촉감이 미끄럽다. 맨발로 땅 위에 서 있는 느낌이다. 질퍽한 황톳길을 걸을라치면 고무신에서 발이 훌렁 벗겨진다. 치질환자처럼 처음에는 엉거주춤 걷는다. 신다 보니 조금씩 익숙해지고 흙이 묻어도 개의치 않고 개울물에 씻어서 바로 신는다. 이제야 동네 아이들과 일체가 된 거 같아서 나는 운동화를 잊고 고무신에 맛 들여갔다.     

 어느 이른 아침에 소란스러워 눈이 떠졌다. 외할아버지의 언성이 높다. 뒤뜰 장독대 옆에서 내 운동화를 발견하신 거다. 범인은 다름 아닌 외갓집의 강아지이다. 운동화를 물어다 흙더미에 파묻은 모양이다. 고 녀석 눈에도 운동화가 귀해 보였을까? 외할아버지는 수숫대 빗자루로 강아지를 후려치신다. 깨갱깽 앓는 소리 내는 강아지가 불쌍해서 내가 그러지 말라고 운다. 지금도 ‘개 맞듯이 맞다’라는 표현을 들으면 꼭 그때의 일이 떠오른다. 외할머니가 운동화를 깨끗이 씻어 말려서 주셨다. 나는 운동화보다 색동 고무신에 어느새 익숙해졌다. 부산에 고무신을 들고 와 몇 번 신었다. 시골 흙길에서는 고무신이 착 달라붙는데, 도시의 시멘트 길에서는 발바닥이 아프다. 신발장 안에서 맴돌던 고무신은 집 정리하면서 버려졌고, 나의 추억도 버려진 고무신처럼 희미해졌다.     

 최근 몇 년간 하얀 슬립 온 스타일의 운동화 몇 켤레로 여름을 났다. 절친 한 명이 전화 와서는 “너 신발 사이즈 뭐니?” 본인이 신으려고 주문한 신발인데 사이즈가 맞지 않단다. 반품하기도 뭐해서 나에게 맞으면 주고 싶다나. 내가 신으니 신데렐라 구두처럼 딱 맞다. “이거 너 신발인가 보다.” 친구는 운명이라 생각하고 신으라고 한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끄는 고무신 모양의 구멍 뚫린 바로 그 신발이다. 디자인과 멋을 내기 위해 반짝이는 큐빅까지 박혀있다. 나의 취향은 아니었으나 친구의 성의를 봐서 신는다. 신다 보니 너무 편하고 시원하다. 올여름 이 신발 덕을 톡톡히 봤다. 어릴 때 시골 외가에서 애들과 함께 신었던 고무신 같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고 살고 있는 나에게 그 시절의 기억과 감성은 문득 한 번씩 회상된다. 회색 빛 아스팔트 도시에서 지친 나를 흙으로 적신다. 또 다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를 위해 신발을 샀단다. 색동 고무신 마법처럼 신발 복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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