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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임 Mar 01. 2022

비탈길 인생

엄마의 등에서 비탈길이 보인다

 아들 녀석이 유치원 다닐 때쯤 축구공을 품 안에 안고만 다녔다. 녀석의 행동이 이상해서 물어보니 “공이 자꾸만 아래로 굴러가니까 그러지.” 아들이 자기 딴에는 진지하게 대답한다. 동네 공터에서 가지고 놀던 공이 대굴대굴 굴러 내려가 힘들게 찾아오거나 잃어버린 적이 있다. 당시 우리가 살던 곳은 평지가 아닌 경사가 진 동네였다. 부산이라는 도시가 산이 많고, 산을 깎아 주거지를 만들다 보니 의외로 비탈길이 예사다. 유년시절부터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을 때까지 반여동과 재송동에서 거주 한 나는 기울어진 길에 길들여져 30년의 시간을 함께 했다. 이 동네에서는 공놀이를 할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조차 인지를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에 우리 동네는 버스가 올라가다 멈추는 경우가 흔하다. 멈춰버린 버스에서 하차해 꾸역꾸역 걸어 올라온 적도 여러 번이다. 어느 날 불의의 사고가 터진다. 딸 넷을 줄줄이 낳은 어느 집에서 귀하게 얻은 막내아들을 교통사고로 잃는다. 초보인 트럭 운전사의 실수로 차가 뒤로 밀리는 바람에 꼬마 아이가 치였다. 정신 줄을 놓아버린 그 가족들은 동네가 싫다며 서둘러 이사를 가버렸다. 언니 동생 하며 지내던 이웃사촌의 슬픔과 이별을 온 동네 아주머니들이 힘들어했다. 문득 소환된 기억에 나는 이사하기로 결심한다. 열심히 저축하고 모아서, 내 아이들이 마음껏 편히 놀 수 있는 평지로 골라서 지금의 아파트로 옮겼다. “엄마, 이제는 공이 안 굴러가요.” 즐거워하는 아들의 모습에 나도 기쁘다. 너무 신나게 공놀이만 한 탓에 공부를 멀리 한 부작용이 있었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자라주어 고맙다.     

 아파트로 이사 온 뒤, 친정엄마가 놀러 오셨다. “길이 어쩜 이리도 바둑판처럼 평평하니 생겼을까? 걸어도 하나도 힘이 안 드네.” 아파트 단지 안과 주변 동네를 둘러보시며 좋아라 하셨다. 엄마에게 여기로 이사 오라고 하니, 평생을 사시던 동네를 뜨는 것이 싫단다. 친구 분들도 많고 본인들 생활하기엔 안성맞춤인 곳을 떠나 갑갑한 아파트로 오시는 걸  한사코 손사래 치신다.     

 친정엄마는 지금 척추 측만증으로 고생을 하신다. 십여 년 전에 수술을 했으나 다시 재발했다. 주사요법과 약물치료만이 최선인지라 통증을 말끔히 덜 수는 없고 악화되는 속도를 늦출 뿐이다. 병원에 약을 처방받기 위해 정기적으로 방문하는데, 우리나라에 암환자도 많겠지만 척추질환 환자도 어마어마하다.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는 게 아니라 나이 들어 질병뿐인 거 같다. 병원 동행할 때마다 나는 젊어서 너무 고생하지 말자며 철딱서니 없게 다짐한다.      

 전라도 시골에서 부산 도시로 시집 온 친정엄마는 살림꾼이셨다. 음식 솜씨도 좋으시고 손놀림이 척척 빠르다 보니 온 시댁 일가 대소사에 불려 다니신다. 시누이, 동서 출산 뒷바라지, 조카들 돌잔치, 이삿짐 싸기 정리하기, 집들이까지 해치우는 슈퍼 울트라 우먼이다. 그 시절에는 남의 일꾼 빌리기보다는 집안사람 손 빌리는 게 다반사라서 엄마는 몇 날 며칠 무보수 출장 노동에 시달리신다. 효자 아들은 좋은 남편이 될 수  없다는 말에 나는 온몸으로 한 표를 던진다. 우리 자식들에겐 태평양보다 넓은 아량을 가진 아버지이지만, 엄마에게만큼은 그러지 못하셨다. 층층시하 어른들 눈치 보며 엄마를 시댁행사에 끊임없이 동원시켰다. 내가 가끔 엄마에게 “엄마, 그 당시 힘들지 않았어?” 물으면, “시어른들과 네 아빠 무서워서 싫단 말도 못 했지. 시키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줄만 알았다. 젊었으니까 힘들다는 생각도 못 했네” 엄마는 한 숨을 내쉬며 답하신다.      

 의사 선생님이 엄마의 상태는 더 이상 수술이 해당 안 되며, 보행의 통증이 심해지면 최악의 경우에는 휠체어 사용뿐이라고 하신다. 약물치료와 평소 가볍게 걷기 운동을 하시면서 근력을 키우라고 추천해 주신다. 엄마는 행여 거동 못해서 자식들에게 폐를 줄까 봐 열심히 매일 걸으신다. 평지를 걸을 땐 통증이 덜한데, 오르막 걸을 땐 아파서 중간에 쉬었다 걷는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한평생을 산동네에 살면서 비탈길을 걸으셨다. 길거리에 바퀴 달린 조립 사각 장바구니가 유행이다. 짐을 실어 끌고 다니기에 편리하다. 더군다나 평지에서는 힘 안 들이고도 사용 가능하다. 엄마는 산동네 가파른 길을 오르락내리락 맨손으로 어찌 버티셨을까? 혹독한 시집살이와 먹고살기 위한 고생길에서, 머리에 이고 지고 비탈길을 걸으신 엄마의 척추는 그 긴 세월 동안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이젠 더 이상 손도 쓰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이사를 하시자고 하니, 어영부영 낼모레 팔십인데 낯선 동네 가서 사는 것도 내키지 않아 하신다.       

 동생들이랑 돈을 모아서 엄마네 김치냉장고를 바꿔드렸다. 서랍식이라서 음식물 꺼내고 넣기에 허리에 무리도 덜하다. 고장도 안 났는데 부단히 돈 쓰지 말라고 하셔서, 미루다 이번에 교체했다. 아이처럼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코끝이 찡하다. 진작 사드릴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비탈길을 걸으면 숨이 차다. 힘도 곱절이 더 든다. 엄마의 뒷모습에서, 그 속에 감춰진 고생의 세월이 보인다. 굽어지는 엄마의 등이 마치 비탈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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