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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임 Jun 27. 2022

어촌 마을의 오일장

나는 벌써 다음 장날을 기다리고 있다


 동생네 집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아침에 해안 길로 산책을 했다. 바다 인접한 지역이라 해가 일찍 떴다. 어촌마을의 아침은 조용히 하루를 시작했다. 가끔 배 들어오는 날에 수레로 생선을 나르는 모습을 보는 정도다. 어제 아침에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걷고 있는데 선착장 끄트머리 공터에서 사람들로 인해 왁자지껄했다. 오일장이 섰다.     


 마을 사이즈에 맞는 작은 장터였다. 이른 시간인데도 동네 어르신들이 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모여들었다. 도시의 대형마트에 비하면 소꿉장난 같지만 구경이나 해 볼까 싶어 발길을 재촉했다. 과일, 채소, 생선 등 먹거리 위주의 농수산물이 대부분이다. 밭에서 직접 농사지어 들고 나오신 분도 계셨다. 둘러보며 구경하다가 풋고추를 보니 동생이 생각났다. 여름철엔 유난히 풋고추 먹는 걸 동생은 좋아한다.      

 “이 고추 어떻게 하나요?” 물으니, 할머니가 대답도 안 하시고 봉투에 고추를 담으신다. 그냥 가져가라고 하신다. 마지막 남은 한 소쿠리 분량인데 팔기에는 싱싱 도가 떨어지니 공짜로 주신다. 공으로 얻자니 손이 부끄러워 파프리카를 덤으로 샀다. 그날 저녁 반찬으로 푸짐하게 야채 쌈을 차렸다. 풋고추는 겉보기와는 달리 속이 짱짱했다. 동생도 맛있다며 쌈장에 푹푹 찍어 먹었다.   

  

 마트에서는 상태가 미흡하거든, 빨리 소진해야 할 농산품은 할인 딱지 붙여 판매한다. 나도 간혹 할인된 제품을 고른다. 마트의 상술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득템 한 거 마냥 기분도 살짝 좋아진다. 끼워 팔기는 봤어도 온전히 그냥 주는 것은 없다. 그러나 시골장터에는 있다. 딱히 뭐라고 표현은 못하겠지만 그 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졌다. 손수 지으신 고추인데 돈 받고 팔기엔 찜찜하고, 가져다가 맛나게 먹어주는 것으로 족했으리라.      

 인구가 줄어드는 농어촌 지역의 오일장들이 쇠퇴해 간다. 택배산업의 발달로 전국 어디든 집안에서 먹거리를 편히 받아 볼 수 있다. 굳이 끙끙대며 장바구니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편리의 익숙함에 우리는 아주 쉽게 적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재래시장 나들이 가는 걸 나는 좋아한다. 장을 보고 소머리국밥 한 그릇 먹는 재미도 솔솔 하다. 난전에서 플라스틱 의자에 걸터앉아 먹는 순대는 별미다. 나 어릴 적 외가 시골에서는 오일장 날에는 동네가 떠들썩했다. 마을 어른들이 썰물 빠지듯 읍내로 향했다가 한 짐을 이고 지고 돌아오신다. 아이들은 신작로까지 나가서 목을 빼고 기다린다. 주전부리가 귀했던 시절에는 장날이 명절처럼 반가웠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다음 장날에 사야겠네.” 이 말이 불문율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장날을 기다렸다.      


 저녁을 맛나게 먹고, 동생에게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다음 장날에 사다 줄게.” 말했더니 배시시 웃는다. 그 옛날 어린아이 마냥 나는 벌써 다음 장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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