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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임 Aug 05. 2022

아버지의 러브레터

두 분이 꼼냥꼼냥 다투실 때마다 연애하던 그 시절로

 척추질환으로 몇 년 고생하시던 친정엄마가 수술을 하셨다. 퇴원 후 당분간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어 내가 옆에서 보살펴 드렸다. 한 여름 무더위가 속해 있어서 잘 견디자고 마음먹었다. 예상도 못 한 큰 복병에 직면했다.    

 

 아침 밥상 치우고 돌아서면 점심시간이 금방이다. 삼시 세끼 차리다 보면 하루가 훌쩍이다. 젊은 사람들이야 하루 두 끼가 다반사이지만, 80살 아버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끼니 다 챙겨 드셔야 한다. 부모님의 규칙적인 식습관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두 분의 서로에 대한 잔소리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의 아빠를 향한 일방적인 잔소리다.    

 

 엄마의 성격을 알고는 있지만 세월과 함께 더 심해졌다. 이른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밤새 축적된 엄마의 에너지는 입을 통해 발산되었다.

“아침 운동삼아 동네 한 바퀴 돌고 오세요.”

“옥상 텃밭에 물 주고 오세요.”

“여름에는 땀이 나니 자주 샤워하세요.” 등등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빠가 알아서 하실 일을 엄마는 주야장천 입을 대신다. 상냥한 말투도 아닌 투박한 어조로 아빠의 심기를 건드신다.

“내가 알아서 하니 잔소리 좀 그만해라.” 몇 번 참으시다가 아빠도 반격에 나선다. 두 분의 구시렁 대화에 나는 ‘또 시작이구나’ 하면서 이불 밖으로 나오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나는 과반 이상은 아빠 편에 섰다. 엄마의 잔소리가 과하기도 하나 아빠가 마치 링 위에서의 패자 같았다. 아빠가 경로당에 가신다며 외출하는 틈을 타서 엄마랑 진지한 대화를 했다. 아빠는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시다. 친구분 중에 생을 마감하신 분이 더 많으시다. 우리 인간이 태어나는 때는 얼추 알지만 떠나는 시간은 알 수 없다. 노인은 밤새 안녕이라는 말처럼 한 치 앞을 모른다. 아빠 가시고 나서 울거나 후회하지 말고 계실 때 잘해 드리자고 말했다. 엄마에게 아빠의 무엇이 불만이냐고 물어봤다.

“그냥 다 밉다.”

이렇게 말하는 엄마를 나는 이해한다. 고된 시집살이와 고생고생해가며 살아왔더니 이제 남은 건 병뿐이다. 몸이 아프다 보니 불똥이 아빠에게로 튄다.     


 어쨌거나 50년 넘게 함께 한 지금의 시점에서 미울 것이 무얼까?

호르몬의 변화로 나이 들면 여자의 목소리가 커진다는 말을 나는 친정에서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다. 문득 엄마의 장롱 속에 고이 모셔둔 그것이 떠올랐다.     

 그건 아빠의 러브레터다. 두 분은 결혼 전에 일 년간 장거리 편지 연애를 하셨다. 경상도 총각은 전라도 처녀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와 함께 시골에서는 구경도 못 하는 여성 잡지책이 매달 소포로 배달되었다.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그 처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장성하여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았다. 수국처럼 이쁜 처녀는 이제 백발의 할머니가 되었다. 결혼 패물이며, 애들 돌반지는 기억도 안 나는 오래전에 처분했다. 장롱 깊숙한 그 자리에는 아빠의 편지가 고이 모셔져 있다. 엄마가 보관을 잘해서인지 오십 년이 넘은 편지지는 가장자리가 헤진 몇 장을 제외하고는 양호했다. 글자 번짐도 없다. 엄마에게 그 편지들을 꺼내어 읽어보자고 어린아이처럼 떼를 썼다.     


 엄마가 곱게 싸인 편지 꾸러미를 조심스럽게 꺼내셨다.

“이젠 눈이 어두워 글씨도 안 보인다.”

“걱정 마, 엄마. 내가 읽어줄게.”

타임머신을 타고 1970년으로 거슬러 간 나는 엄마의 처녀 시절을 회상하며 편지를 낭독했다. 총각의 편지는 점잖으면서 다정했다. 처녀의 맘을 얻기 위해 써 내려간 미화적인 수식어구는 마치 세레나데를 듣는 거 같았다. 나는 편지를 읽으면서 웃고 엄마는 들으시면서 웃었다. 아빠의 달달한 구애 표현에 엄마는 쑥스러워하셨다. 편지를 한 매씩 읽을 때마다 엄마는 편지 속에 등장하는 사연에 부연설명까지 하셨다. 자주 만날 수도 없고 오롯이 편지에만 의존하여 두 분은 사랑을 키웠다. 엄마의 표정을 살짝 엿보니 발그스레하다. 꽃다운 처녀의 수줍은 얼굴 같다. 아빠도 이 편지를 쓰던 순간에는 가슴이 콩닥 하셨겠지. 남몰래 러브레터를 쓰던 청년은 이제 허리 구부정하고 벗겨진 백발이 되었다. 두 분이 꼼냥꼼냥 다투실 때마다 연애하던 그 시절로 보내드리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훗날 아빠의 편지를 가보로 달라고 했다. 내가 잘 보관하고 싶다. 그 어떤 귀금속보다도 값진 유산이다.     


 “엄마, 아빠 많이 연로하셨어. 이제 잔소리 좀 그만해.”

“내가 무슨 잔소리를 한다고. 저녁에 조기 생선 몇 마리 꺼내 놔. 아빠는 조기 좋아해.”     

아빠가 밉다는 엄마의 말은 거짓말이다. 미운 사람 조기 준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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