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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임 Aug 17. 2022

용돈

또다시 손주 용돈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만남을 갖는 3인방 모임이 있다. 교육 쪽에 종사하는 분들 이어서 개학 전에 얼굴 보자는 구실을 만들어 더위를 무시하고 모였다. 한 선생님이 몰고 온 차를 타고 우린 송정 바닷가로 달렸다.   

  

 탁 트인 해변가에 자리 잡은 어느 식당 앞에 멈췄다. 맛집으로 소문난 집이라서 평일인데도 대기줄이 길었다. 어떤 맛이길래 하는 호기심에 우리도 대기자 명단을 올리고 기다렸다. 무려 1시간 남짓 기다림 끝에 마주한 식사는 퀄리티가 기대 이상이었으나 가격은 약간 부담스러웠다. 오늘 점심을 사겠다고 한 선생님이 호탕하게 “지난주가 내 생일이었어요. 애들이 맛난 거 먹으라고 용돈 두둑하게 줬어요.”     

 

 자녀들이 초등학생일 때부터 우리는 만남을 이어 왔다. 그 아이들의 진학과 졸업을 함께 기뻐해 주었고, 취준생 시절에는 내 자식의 일처럼 응원을 해 주었다. 이젠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사회초년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부모님의 생일에 아낌없이 두둑한 용돈까지 준다. 다 같이 부모의 심정으로 대견해했다.      

 “우리 딸이 첫 월급 달부터 매달 얼마씩 나에게 용돈을 줘요.”

그 선생님의 딸은 졸업 후 몇 년을 준비하다가 작년에 공무원이 되었다. 학원비에 책값 등등 뒷바라지를 한 엄마에게 고마워서 기특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그런 생각을 하더라도 실천하기는 쉽지 않을 터인데 그 아이를 다시금 보게 되었다.


 “그런데 딸이 주는 돈이 불편해. 맘껏 쓰지를 못 하겠어.” 하시는 선생님은 딸이 주는 용돈을 고스란히 통장 하나 만들어서 저금을 하고 계셨다. 훗날 그 딸이 결혼하게 되면 돌려주시겠단다. 50대 중반을 넘긴 다른 선생님은 몇 년째 80대이신 친정어머니 통장으로 매달 용돈을 부쳐드리고 있다. 그 어머니 또한 용돈을 빼 쓰지 않으시고 차곡차곡 모으신다. 우린 그 마음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문득 오래전에 본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평생 백수인 아버지 때문에 고생만 한 어머니에게 아들은 첫 월급부터 생활비와 용돈을 꾸준히 드렸다. 어느 날 아들이 어머니에게 소원이 뭐냐고 물었다. 그 어머니의 소원이 남편에게 돈을 받아보는 거란다. 아들은 의아해하며 본인이 드리는 돈이 부족하냐고 물었다. 어머니 하시는 말씀이 “남편이 주는 돈은 앉아서 받고, 자식이 주는 돈은 서서 받는단다.” 자식을 향한 미안함을 어머니는 그렇게 표현하셨다. 이상하게도 이 대사가 잊히지 않는다.    

 

 내리사랑이 무섭구나. 우리네 부모님이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는 자식의 용돈을 그대로 우리들도  답습하고 있다. 우리 세대는 다소 이기적이지 않을까 했는데 아니었다. 우리도 영락없이 부모였다.   

   

 캥거루족이라고 칭하면서 성년의 자녀가 부모에게 의지하며 독립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타인의 입장이 되어서는 쓴소리도 하며 단호할 수 있는데, 나 역시 졸업과 취업을 앞둔 아들 녀석이 걱정스럽다. 아직 학생 신분을 내세우며 당당히 뒷바라지를 요구하는 아들에게 서운도 하다. 어디까지 지원해주고 무엇을 끊어야 할지 망설여지기도 한다. ‘그래, 조금만 참자. 졸업하고 나면 국물도 없다.’ 하면서 나 혼자 벼른다. 자식에게 들이는 돈을 아까워하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다만 꿀인지 독인지 분간 못하고 아들이 자립을 못 할까 싶은 노파심이다. 나 또한 자식을 내려놓지 못하고 품 안에 두려는 게 문제이다.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묻고 반성도 한다. 마치 외줄 타기 마냥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중심을 잡으려고 안간힘 쓴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다른 한 선생님의 자녀가 올 시월에 결혼 날을 잡았다. 이야기의 주제는 어느새 용돈에서 자녀의 결혼으로 갈아탔다. 결혼은 딸이 하는데 오히려 선생님의 모습이 설레어 보였다. 상견례 체험담과 자녀 결혼 준비 과정을 듣고 있자니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우리가 이제 이런 이야기 할 나이를 먹었네.” 까르르 웃었다. 머지않아 결혼한 자녀의 출산과 손주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자식보다 손주가 더 이쁘다고들 말한다. 용돈 잘 주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인기가 많다. 또다시 손주 용돈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카페 통유리 창으로 어느새 노을이 졌다.

자녀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우리들은 늙는 것이 아닌 서서히 가을 사과처럼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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