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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임 Aug 23. 2022

비움

그 비워진 자리를 너무 오래 두지 말자


 내가 거주하는 아파트에서는 주 1회 날짜를 지정해서 재활용 분리수거를 하고 있다. 각 동 마다 주차장 옆 공터에 품목별로 분리함을 설치한다. 일주일 동안 모아둔 각 가정의 재활용품들이 쏟아져 나와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악천후, 공휴일 등등의 이유로 수거 일을 한 주 건너뛰기라도 하는 날에는 마치 쓰레기 산을 방불케 한다. 지구를 더럽히는 건 인간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지금의 아파트에서 나는 16년째 살고 있다. 보통 이사를 자주 해야 만이 집 정리가 된다는 말이 있다. 역으로 꿈쩍도 않고 한 곳에서 줄곧 지냈으니 정리가 안 되었을까? 인테리어 등 꾸미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단출한 살림살이다. 얼핏 보기엔 정리정돈 잘 된 듯 보인다. 수납장 곳곳이 쌓인 물건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가감하게 정리정돈의 시기가 온 것이다.     


 옷장을 먼저 열어보았다. 유행 따라 옷을 구매한 것도 아닌데 옷장이 미어터졌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 존재조차 몰랐던 옷들을 가려냈다. 처녀 적에 입었던 원피스도 있었다. 결혼식에 입은 한복은 디자인이 사극에나 나올 법했다. 직장 다닐 때 장만했던 정장 세트 여러 벌 중에서 한 벌만 남겨두고 미련 없이 큰 봉투에 담았다. 강산이 바뀌듯 유행도 한 바퀴 훨씬 지난 옷들을 내렸다. 아깝다고 입지도 않으면서 모셔둔 옷들도 끄집어냈다. 세 개의 커다란 봉투에 옷들이 채워졌다. 빽빽하던 옷장이 이제 숨을 쉬는 듯이 보였다.   

  

 주방으로 이동했다. 수납장이 잘 되어 있어서 겉으로는 깔끔하게 보이는데 문을 열 때마다 놀라웠다. 구석구석에 자리만 차지한 반찬통에서부터 그릇류까지 끄집어내도 줄어들지 않았다. 벌레가 알을 까듯 나의 살림 도구들이 자발적으로 새끼를 친 모양이다. 핵가족화와 경조사 같은 일을 집 밖에서 하다 보니 그릇들이 많이 필요치 않다. 결혼할 때 친정엄마가 장만해 준 식기류 세트는 거의 도자기가 되었다. 사은품으로 받은 포장도 뜯지 않은 접시며, 냄비가 출현했다. 자녀가 넷인 친구에게 전화하니 흔쾌히 그릇을 달라고 했다. 수납장의 컴컴한 구석보다는 쓰임새 있게 사용되는 쪽이 그릇 에게도 좋으리라.     


 학창 시절부터 책 읽기와 책 수집을 나는 좋아했다. 십여 년 전에 거실 양쪽 벽면을 책장으로 채웠다. 책에 파묻혀 사는 거 같다는 가족들의 원성에 정리를 했었다. 마침 지인이 북카페를 창업할 계획이라고 해서 기꺼이 기증을 했다. 아까운 맘도 있었지만 여러 사람들이 읽게 되면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책은 내가 읽은 뒤, 내 손을 떠나면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책상 서랍장을 열었다. 칸칸이 가득했다. 문구류가 넘치다 못해 한 보따리였다. 학교 일을 그만 뒤 이후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는데도 여전히 많았다. 초등학교 시절 연필 한 자루 귀해서 애지중지했던 기억이 아른거린다. 지금 우리는 너무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컴퓨터로 사무업무를 보다 보니 필기도구 사용빈도도 줄어든다. 품목별로 분류해서 유치원생 조카에게 줘야겠다.     

 

 마지막으로 베란다 창고에 손을 대었다. 무슨 박물관처럼 유물이 그대로 앉아있는 모양새다. 라디오, 비디오카메라를 보니 세월이 새삼스럽다. CD 플레이어와 공 CD도 박스째 한 통이다. 구닥다리 노트북도 몇 개나 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진화한다.   

   

 집안을 탈탈 털고 나니 쓰레기와 재활용품이 현관을 가득 채웠다. 나의 아파트에 내가 아닌 쓰레기가 군림하고 있었나 보다. 군살 사이에 끼어 있는 지방이 빠진 듯 집이 가벼워 보인다. 다음 주에 정리하면 나올 것이 또 많으리라. 필터링하듯 주기적으로 집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한국의 미는 여백의 미라는 말이 있듯이 집안 곳곳의 생긴 공간이 좋다.      


 편리함에 쫒아서 필요 이상의 물건에 욕심을 냈다. 돈을 주고 사는 것보다 이젠 돈을 주고 버리는 것이 더 피곤하다. 비워진 자리에는 시간이 지나면 시나브로 무엇이든 채워지겠지. 누군가는 채우기 위해 비워야 한다지만, 나는 이 비움을 좀 길게 유지하고프다. 사실 치우고 버리고 정리하는 것이 꽤 힘이 든다.     


 책꽂이에서 에세이 한 권을 꺼내어 펼쳤다. 

사람의 관계에서 비움을 다룬 내용이 있길래 찬찬히 읽었다. 욕심, 집착으로 인한 마음을 비운다는 것도 짐을 정리하듯 필요해 보인다. 다만, 그 비워진 자리를 너무 오래 두지 말자. 선한 것으로 채워지기를 우리네 마음속의 그 자리는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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