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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임 Sep 03. 2022

회충약

줄지어 서서 회충약 받던 친구들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온다

 버스를 탔는데 속이 편치 않았다. 위장병도 아니고 체한 것도 아닌데 더부룩하면서 매스껍다. 차멀미하듯 찜찜했다. 가방 속을 뒤져 쵸코렛 한 개를 입안으로 넣었다. 조금 가라앉았다. 어릴 적에 유난히 멀미가 심해서 버스를 못 탔고, 지금은 배 멀미로 배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친구가 회충약을 권했다. 내가 화들짝 놀라며 “요즘 세상에 무슨 회충이야?” 반색했다. 쌈 종류 같은 야채를 통해서 회충이 유입된다면서 일 년에 한 번 정도 먹으라고 했다. 의아해하면서 약국에 들러 약을 구매했다. 약사가 복용법과 함께 예방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복용하면 좋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내 뱃속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벌레를 잡기 위해 나는 약을 샀다.     

 내가 초등학교 갓 입학했을 무렵에, 엄마는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방을 두 개 따로 내어서 셋방을 놓으셨다. 근방에 옷 제조공장이 크게 들어와 시골에서 중학교만 졸업하고 올라온 여공들이 많아서 셋방은 인기가 좋았다. 아침이면 우리 집 마당 수돗가 주위는 전쟁이었다. 일찍 출근하시는 아빠는 제일 먼저 씻으셨고 셋방 사는 처녀들은 아침 준비로 쌀을 씻었다. 그 뒤를 이어 내가 세수를 했다. 어느 날 아침은 나의 채변봉투 과제로 더 어수선했다.      

 기생충 검사로 학교에서 변을 가져오라 했는데, 재래식 화장실에서는 변을 받기가 불가능했다. 마당 귀퉁이에 신문지 깔고 엉덩이를 까서 변을 봤다. 힘을 줘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개똥이라도 넣어가라. 오늘 아침엔 대문 앞에 개똥도 없네. 벌써 동네 애들이 들고 갔나 보다” 셋방 이모가 놀렸다.

“담임 선생님이 개똥 넣어오면 혼낸다고 했다.”

“개똥인지 사람 똥인지 모른다.”

가까스로 온 힘을 모아서 변을 보고, 엄마가 성냥개비로 변을 찍어 봉투에 넣어주셨다. 채변봉투 거두는 날은 학교가 변 냄새로 진동을 했다. 울 반 남학생 순길이는 똥을 봉투에 많이 넣었다가 채변봉투가 터져서 책에 똥이 덕지덕지 붙었다. 

“숟가락으로 똥 퍼 담았나? 많이도 담았다... 쯧쯧... 얼른 책 깨끗이 씻어 가지고 와라.” 

순길이는 한 학기 끝날 때까지 냄새나는 교과서를 들고 다녔다. 순길이가 책을 펼치는 순간 주위의 애들은 손으로 코를 막았다. 몇 주 뒤, 변 검사 결과가 나왔고 담임 선생님은 명단 수십 명을 줄줄이 사탕처럼 불렸다. 기생충이 있는 아이들에게 회충약을 한 알씩 나눠주셨다. 내 단짝 혜란이도 호명이 되었다.

“선생님, 그 똥은 제 거 아니고 아버지 똥입니다.” 혜란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벌벌 떨었다.

 혜란이는 똥이 안 나와서 하는 수없이 아버지 똥을 담아 왔다.

“아버지에게 이 약 갖다 드려라. 꼭 드시라고 전해라.” 불호령 하실 줄 알았는데 선생님은 그냥 넘어가셨다. 나도 다음에 똥이 안 나오면, 아침마다 변을 쑥쑥 잘 보는 엄마 똥을 담아 오리라 결심했다. 공짜로 주는 것이라면 무슨 약이든 엄마는 좋아하셨을 것이다.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았던 나의 유년시절에 학교 앞 문방구 불량식품도 감지덕지했다. 60여 명 반 학급의 절반이 배에 회충을 담고 다녔다. 썩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았다. 어떤 경로로 균이 이동되는지에 무식했고 굳이 알려고도 안 했다. 원기소라는 어린이 종합영양제도 귀했던 그 시절에 회충약에 큰 반감 없이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웰빙을 내세워서 유기농 채소다, 건강식 샐러드 하면서 즐겨 먹는다. 먹을 것이 많아서 뭘 먹어야 할지 모르는 풍요한 시대다. 건강을 생각하며 가려먹고 골라 먹는다. 식탁 위엔 온갖 종합 비타민과 건강보조식품 영양제가 가득하다. 기억에서조차 까마득한 회충약을 혹시나 하는 예방으로 한 알 삼킨다. 아이러니하다. 먹을 것이 늘어나고 의학이 발달함에 따라 되려 질병은 더 발생하고 먹어야 할 약은 더 많아졌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균들이 출연하여 독한 백신도 계속 맞아야 한다.      

 휴대폰에 알림 문자가 왔다. 국가검진 대장암 검사 대상자이므로 올해 안에 검사를 재촉하는 내용이다. 대장 내시경 한 지도 벌써 몇 년이 흘렸구나. 하루 전날부터 뿌연 액체 약을 몇 리터 마셔가며 장을 비우는 과정이 떠오르니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병원에 입원해 보면 잘 먹는 거 못지않게 잘 배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잘 먹고 잘 싸는 것이 잘살고 있는 징표이다.     


 한 알 먹고 한 알 남은 회충약을 만지작거린다. 채변봉투 수거하는 담임 선생님의 모습도 떠오르고, 줄지어 서서 회충약 받던 친구들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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