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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임 Sep 14. 2022

명절

나도 명절을 즐기고 싶다

 추석 명절 연휴에 친정 식구들과 함께 경주를 다녀왔다. 부산에서 가깝고 부담 없이 지내기에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다가 몇 달 전에 경주로 숙소를 예약했다. 힐링이라는 주제로 나서는 외출이었기에 짐은 가볍게 마음은 설렘으로 충만했다.   

  

 경주는 천년의 고도라는 수식어에 자랑할 법하다. 매번 갈 때마다 새롭다. 한때는 수학여행과 신혼여행지의 필수코스였다. 나도 친구들과 종종 바람 쐬러 오곤 했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색달랐다. 결혼 이후 처음으로 명절에 휴가를 보냈다.     

 해마다 명절 전후로 해서 매스컴에서는 여러 가지 기사가 쏟아진다. 장바구니 물가부터 도로 정체 등등 소재도 다양하다. 올해는 시대의 흐름인지 제사상 간소화, 셀프 효도라는 단어들이 유독 눈에 띈다. 나를 포함하여 며느리라는 직책의 여자들에게 명절이 반갑지 않다. 남자들은 신성불가침과도 같은 조상을 전면전에 내세우며 며느리들의 불평을 일단락 짓는다, “일 년에 고작 두 번 치르는 명절인데 고것도 못 하나?” 얼핏 들으면 맞는 말이다.      

 매년 다섯 번의 제사를 나는 준비했었다. 정성을 다해 준비하고 모셔야 한다고 세뇌를 당했지만 나는 그러하지 못했다. 기쁨보다 힘듦이 앞서는데 정성이 나오질 않았다. 온전히 부엌에서 무수리가 되어 고군분투했다. 에덴동산의 하와가 금단의 열매 사과를 먹어 그 죗값으로 여자는 출산의 고통을 부여받았다고 전해진다. 며느리는 뭔 죄를 지었길래 명절에 시달리는지 궁금하다.     

 긴 명절 연휴에 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딴 세상 사람으로만 여겼다. 23살에 결혼한 친정엄마와 26살에 결혼한 나는 이번 추석에는 주방에서 탈출하기로 했다. 평생 해 오던 걸 안 하려니 엄마는 자꾸만 허전해하셨다. 음식을 잔득해서 냉장고를 채워야 하는데 그걸 못 하시니 불안하신 듯 보였다. 근심 걱정 내려놓고 우린 출발했다.     

 경주에 사람들이 모두 몰린 듯이 곳곳에 여행자들이 많았다. 우리처럼 부모님을 모시고 온 가족 여행이었다. 한가롭게 야외 공원의 벤치에 앉아 손자 손녀 재롱에 함박웃음 지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런 부모님을 바라보는 자녀들. 그들은 명절 휴가를 온전히 누리는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보문단지 호수를 산책하면서 도란도란 엄마와 여동생과 수다를 떨었다. 엄마는 연신 “세상 참 좋아졌다. 예전에는 명절에 이런 데 나서는 거 꿈도 못 꿨다.” 좀 더 일찍 이런 자리를 못 만들어 아쉬웠다. 포토 스폿 지점에서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사진 속의 나도 엄마도 환하게 웃었다. 

 문득 지난날을 회상해봤다. 교과서에서 배운 명절과 현실에서의 명절은 괴리감이 컸다. 음식 준비과정에서부터 장만하고 지지고 볶고 차리고 치우고 무한 반복 몇 번 하다 보면 빨간 공휴일은 온데간데없고 파김치 되어 귀차니즘이 극도에 달한 내 모습만 남았다. 성균관에서 발표한 표준 차례상이 화제다. 무척이나 검소했다. 상다리 부서질 만큼 차리는 지금의 상차림과는 차이가 있다. 엄마는 음식 만드시면서 늘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오랜만에 모인 식구들 다 같이 먹자고 하는 음식이지. 돌아가신 조상이 뭘 얼마나 드시겠냐?” 그럴듯한 말임에도 나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내가 스트레스를 꽤 받았나 보다.     

 경주의 맛집을 탐방하면서 식사를 했다. 여자는 남이 차려주는 음식이 제일 맛나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달으면서 깨끗이 그릇을 비웠다. 이런 호사가 도대체 얼마 만인가 싶다. 야경이 이쁘다는 안압지로 향했다. 가득 찬 보름달이 환하게 우리를 비췄다. 100년 만에 뜨는 슈퍼문이라더니, 안압지의 조명이 무색하게 달이 훤했다. 감탄사를 뿜어내며 저마다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엄마와 여동생이 무엇을 빌었는지 궁금했으나 질문 대신에 웃음으로 대체했다.     

 세상이 바뀌고 시대가 변했다. 어떤 형태로든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아니,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계속 편함을 대접받은 사람들은 변화를 껄끄러워할 것이고, 불편함을 감당한 사람들은 바꾸고 싶어 한다. 미풍양속인 명절은 누구에게나 즐길 권한이 있다. 누군가의 절대적인 희생 속에 맞이하는 명절을... 그 누군가를 낳은 부모님을 포함한 조상님들은 저 세상에서도 맘이 편치 않을 수 있다. 내리사랑은 시공을 초월한다.   

  

 난 이제 편해지고 싶다. 나도 명절을 즐기고 싶다.

 풍성한 한가위 보름달을 보며 나는 기원했다.

 “내년에는 더 즐거운 명절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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