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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임 Sep 18. 2022

자격증

자격증은 지금 고이 장롱 속에 모셔져 있다


 뉴스 (news)의 어원을 보면 새로운 집합체이다. 희망을 기대하며 기다리던 소식은 전무하고 스트레스 치수만 올린다. 채널을 돌렸다. 부동산 거래 절벽이라는 앵커의 하이톤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소장님, 잘 지내시죠?”

 “오랜만이에요. 요즘 다들 힘들어 죽을 맛이죠. 저는 다음 달에 사무실 닫기로 했어요.”

갑작스러운 폐업 소식에 당황했다. 박 소장과는 2년 전에 함께 일한 인연으로 가끔 안부를 묻곤 했다. 작년에 사무실을 오픈하여 힘겹게 끌고 오다가 내린 결정 같았다. 세계적인 불경기인데 누굴 탓하리라.     

 옷장 문을 열었다. 내 사무실을 갖게 되면 걸어둘 셈으로 액자에 넣어 고이 모셔 둔 자격증. 중년의 고시라 불리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은 장롱면허가 될 조짐이 보인다. 몇 해 전 부동산 사무실을 창업한 동창의 추천으로 두 해 걸쳐서 시험공부를 하여 자격증을 획득했다.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할 것이다. 액자를 만지작거리며 그때를 떠올려봤다.    

 

 근로계약을 일 년 남겨두고 나는 초조했다. 재계약 보장은 희박했고 애매한 나이라서 새로운 일터를 찾기도 만만치 않았다. 노후를 위한답시고 안전핀으로 비교적 개업이 용이한 공인중개사 자격증에 도전했다. 생뚱맞은 법 관련 공부를 하려니 용어부터 익숙지 않아 고전했다. 인터넷 강의로 주경야독하여 1차는 통과했다. 해가 바뀌어 직장에서 계약 종료로 백수가 되었다. 2달 정도 고민하다가 재취업을 접고 2차 시험 준비를 했다. 수험생의 처지로 돌아가 나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다이어트와 시험은 몰래 하면 실패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온 동네방네 소문을 내었다. 시끌벅적 공지를 했으니 남의눈이 무서워서라도 나는 책과 씨름을 했다. 수개월간 방에 칩거하면서 고3 이후로 처음으로 열공했다. 몽고 티베트 지방의 여인네와 같은 말총머리 스타일로 고무줄 질끈 동여매고 벽에 붙여놓은 시간표대로 일과를 보냈다. 체력은 국력이 아니라 엉덩이 힘이다.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것은 에너지 소모가 컸으며 온 삭신이 쑤셨다. 교도소의 수감자보다도 일조량이 부족했던 나는 시험일 막바지에 시름시름 아팠다. 

“자신을 학대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사서 고생을 왜 하냐?” 가족과 친구의 질타도 이어졌다. 칼을 뽑았으니 호박이라도 찔러보자 심정으로 매달렸다.     

 어김없이 시험 날은 도래했고 바닥인 컨디션을 안고 시험장에 갔다. 응시생의 수가 기록을 경신할 만큼 해마다 증가하더니, 시험장의 응시생들은 나이도 다양했고 직업도 가지가지였다. 결코 만만한 시험이 아닌데 이 자리에 와 있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감독관의 지시에 따라 1교시 두 과목 문제를 풀었다.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블랙홀과도 같은 공법 과목의 문항들이 다행스럽게도 눈에 익었다. 문제 푸는 속도에 스피드가 붙어 시간도 몇 분이 남았다. 이 기세라면 나머지 과목들도 자신이 있었다. 2교시 시험지를 받고 1번 문제에서 흐름이 깨져버렸다. 아리송한 문제에서 허우적거리다가 평정을 잃어버렸다. 운동선수가 한 번의 실수로 남은 시간의 경기에 집중 못 하듯이 나의 펜은 다음 문제를 넘어가지 못했다. 생각지도 못한 난코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아, 이렇게 무너지는구나. 2년의 시간이 물거품 되는 건가.’ 옆 사람은 다음 장 페이지를 넘기는데 나는 아직도 첫 장에서 숨 몰이를 했다. 허벅지를 마구 꼬집으며 요동치는 심장박동 수를 진정시키고 시험 종료 종소리에 맞춰 마지막 문제를 답안지에 마킹했다. 썰물처럼 응시생들이 빠져나간 강의실에서 홀로 맥없이 있다가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나왔다. 울고 싶은데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켰다.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채점을 하면서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이시여...’ 모든 신을 다 불렀다. 동그라미와 엑스가 표시될 때마다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했다. 채점 결과 합격점을 넘었다. 참았던 눈물이 봇물 터지듯 흘렸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자격증은 지금 고이 장롱 속에 모셔져 있다. 고금리로 부동산 가격 하락과 거래시장은 얼어붙었다. 잘 나가는 베테랑 소장들도 버티기 힘든 시기다. 나이 들어 머리는 굳고 몸도 안 따라주는 열악한 환경에서 어렵사리 딴 자격증을 묵힌다고 지인들은 한 마디씩 거든다. 저 자격증을 언젠가는 써먹을 날이 올지도, 아니면 영영 아니 올 수도 있다. 후회는 없다. 힘든 고통의 수험생활이었지만 나에겐 또 다른 하나의 도전이었다. 도전할 수 있었던 뜨거운 열정이 오히려 이젠 희미해졌다. 머리 아프지 않고 단순하게 살고 싶어 진다.    

  

 자격증 액자를 조심스레 꺼냈다. 한낱 종이 한 장에 불가하지만 나는 말할 수 있다. 

“어디에 틀어박혀 있든, 사무실에 걸려 있든 간에 그건 중요치 않아. 나의 지난 시간 속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해.”

내가 살아가면서 어떠한 난관에 직면하고 용기와 도전을 필요로 할 때가 올 것이다. 중년의 수험생 시간을 회고한다면 힘이 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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